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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05: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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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설계의 과학적 위상 (S.C.Meyer): 서문 및 1부 구획논증의 일반적인 실패
지적 설계의 과학적 위상
자연주의적 기원 이론과 비자연주의적 기원 이론의 방법론적 동등성

Stephen C. Meyer
(번역 김영식)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전반에 걸쳐서 다윈은 당시에 받아들여지고 있던 “창조에 대한 이론”의 과학적 위상에 반대하는 논증을 계속해서 전개하였다. 다윈은 종종 자신을 반대하는 창조론자들을 비판할 때, 그들이 단지 어떤 생물학 데이터에 대한 설명을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비판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은 과학적 설명 자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들면서 비판을 했다. 실제로 ‘수정된 상속’(descent with modification)에 대한 다윈의 몇 가지 논증은 특수 창조론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새롭게 알려진 사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론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지도 당황하게 만들지도 않았던 화석의 변화, 상동, 그리고 생물지리학적 분포에 근거하였다. 이런 것들은 다윈의 관점에서는 창조론자들이 적절한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할 없는 것들이었다.[2] 다윈이 창조론을 공격하면서 제기하고 싶던 문제는 현대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현재의 창조론자들의 이론의 “경험적 타당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론자들이 갖고 있는 프로그램 자체의 방법론적 (그래서 과학적) 적법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윈은 예를 들어서 상동에 대한 창조론자들의 설명을 “그것은 과학적 설명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던 것이다.[3]

창조론자들의 적법성에 대한 다윈의 거절의 밑바탕에는 그 이전 시대의 초창기 박물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과학에 대한 개념이 깔려 있다.[4] 자신을 반대하는 창조론자들과 이상주의자들에 대한 다윈의 공격에서는 “신적 의지의 활동”이나 “창조의 계획”과 같은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단순히 언급하는 것은 그 이론을 과학으로 볼 수 없도록 만들었던 새롭게 등장한 실증주의적[5] “지식”(episteme)의 개념이 부분적으로 표현되고 있거나 부분적으로는 확립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과학으로부터 신학을 분리하고 이에 전제된 과학의 정의를 바꾸는 것은 논증에 의해서 정당화되기보다는 모든 과학 이론들이 갖춘 특성들에---아마도 환영받지 못하는 형이상학이나 신학적인 의지처(mooring)와 관련된 이론으로부터 적절한 과학적 (즉, 실증주의적) 편향성으로부터 나온 이론을 구분해 낼 수 있는 특성들에---대한 암묵적인 가정에 근거해서 정당화되었다. 그래서 「종의 기원」과 그 후에 쓴 편지들 모두에서 다윈이 창조론자들의 이론을 본성상 “비과학적”인 것으로 규정하기 위해서 무엇이 과학적 설명을 이루는지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윈에게 있어서 자연 법칙에 근거해서 설명하는데 실패하고[6] 관찰 불가능한 원인과 마음, 목적, 또는 “창조의 계획”과 [7] 같은 설명적 요소를 가정하는 것과 같은 창조론의 탐구 방법에서 발견된 결함들을 통해서 창조론의 원리적 위법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다윈주의를 방어하는 후대의 사람들은 이 전략을 확대시켰다.[8] 20세기 동안에 자연주의적 진화론을 비자연주의적 기원 이론의 도전으로부터 방어하려 시도하던 사람들은 과학적 관례에 대한 다양한 규범(norm)을 사용해 왔다. 이러한 규범들은 보통 과학 철학으로부터 유도되었고 대부분은 논리 실증주의와 신실증주의(neo-positivist)로부터 유도되었다. (칼 포퍼 경(Sir Karl Popper)과 칼 헴펠(Carl Hempel)과 같은 사람들) 증명가능성에 대한 실증주의적인 기준과 반증가능성 및 법칙과 같은 설명에 대한 신실증주의적 기준들은 모두 창조에 대한 모든 이론들 내지는 심지어 지적 설계에 대한 모든 이론들을 측정하고 결함을 발견하기 위한 방법론적 척도 내지는 “구획 기준”(demarcation criteria)으로서의 기능을 해 오고 있다. 이런 이론들은 수많은 철학적 그리고 방법론적 기반에 근거해서 “정의에 의해 비과학적”인 것으로 선언되어 오고 있다.

진화 생물학자들이 사용하는 소위 구획 논증은---즉 의사과학(擬似科學; pseudo-science), 형이상학 내지는 종교로부터 과학을 구분하려 시도하는 논증들은--- 모두 과학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이러니하고 문제가 많은 것들이다. 이런 논증들이 아이러니한 이유는 비자연적인 기원 이론을 반대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많은 구획 기준들은 엄격한 자연주의적인 진화론을 반대하는데도 동일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특하게 확률적인 차원과 역사적인 차원을 갖는 신다윈주의를 과학에 대한 다양한 개념들에 비춰서 측정했을 때 과학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평가해 보기 위한 수많은 문헌들이 존재한다.[9] 어떤 이들은 진화 생물학에서 서술적(narrative) 설명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 법칙에 엄격하게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다른 이들은 신다윈주의가 반증가능한지, 내지는 신다윈주의가 참되거나 위험한 예측을 제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1974년에 칼 포퍼 경은 신다윈주의 진화론은 “검증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하나로 선언하였다. 후에 포퍼는 자신의 판결을 고치기는 했지만 반증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개념이 과학적 위상에 대한 지표로 간주되도록 하기 위해 “원리적 반증가능성”이라는 좀 더 약한 개념으로 제약을 느슨하게 한 후에서야 그렇게 하였다.

또한 기원 논쟁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구획 논증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많은 이유는 구획이라는 전체적인 기획 자체가 현재 평판이 나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의사과학으로부터 진정한 과학을 구분해 내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을 제공해 주는 방법론적 “불변량”(invariant)들을 설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실패하였다.[10] 이제 대부분의 과학 철학자들은 검증가능하지도 않고, 시험가능하지도 않으며 (또는 반증가능하지도 않고) 법칙과 같은 설명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우든(Larry Laudan)이 말한 것처럼 “만일 우리가 이성의 편에 설 수 있다면, 우리는 ‘의사과학’과 같은 단어들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그런 용어들은 단지 감정적인 역할만 수행할 뿐이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이 과학이고 어떤 것이 과학이 아닌지에 대한 철학적인 논증들은 생물학자들이 생명의 형태와 구조에 대한 대안적인 과학적 설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비자연주의적이거나 비물질적인 설명의 경우는)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설득하는데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구획 기준들은 생물학적 기원에 대한 이론 중 하나로 지적 설계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근거로 현대 생물학자들에게 계속해서 인용되고 있다.[12]

이 글은 원리적으로 지적 설계의 과학적 위상에 반대하는 예들을 시험해 볼 것이다. 또한 지적 설계와 특수 창조, 그리고 점진적 창조 그리고 유신론적 진화와 같은 비자연주의적 이론들로부터 자연주의적 진화론의 과학적 위상을 구분해 내는 수단으로서 발전해 온 여러 가지 방법론적 기준들을 검사해 볼 것이다. 나는 방법론적 근거로 선험적인 과학적 위상을 구분하려는 모든 시도는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그 대신에 기원에 대한 두 가지의 크게 경쟁하는 접근들 사이에 일반적인 방법적 동등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나는 지적 설계라는 과학 이론이 만들어 질 수 있는지, 또는 루즈(Ruse), 스텐트(Stent), 굴드(Gould) 그리고 다른 이들이 (적어도 과학적 창조론에 관해서) 주장하는 것처럼 방법론적 반대들이, 영원히 그리고 원리적으로, 이런 가능성을 실제로 “자기 모순적인 난센스”로 만들어 버리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려 시도할 것이다.[13] 이 논문을 통해서 나는 (a) 생물학적 형태와 복잡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일환으로 (신이든 아니든 간에) 지적인 작인의 실질적인 인과적 활동에 의존하는 이론들을 (b) 생물학적 형태와 복잡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윈의 “수정된 상속”이론처럼) 자연주의적 설명에만 배타적으로 의존하는 이론들을 구분하기 위한 편리한 방법의 하나로 축약형으로서 “설계”(design)와 “상속”(descent)이라는 두운(頭韻)을 사용할 것이다.[14]

주장의 범위를 명확히 하자면 이 논문에서는 지적 설계의 방법론적이며 과학적 적법성을 변호하는 것을 통해서 19세기의 많은 창조론자들의 경험적으로 부적당한 생물학이나 절대적인 종의 고정이라는 그들의 믿음을 다시 구축할 방법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현대의 젊은 지구 창조론을 뒷받침해 주려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만 할 것이다. 다음의 분석은 위에서 정의된 원리적인 “설계”의 방법론적 적법성에 관한 것이지, 다른 경험적인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지적 설계를 끌어들이려 하는 특정한 이론들의 경험적 적법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지적 설계와 자연주의적 상속 이론의 방법론적 동등성은 세 가지 형태의 논증을 통해 세 단계로 제시될 것이다. 첫 째는 과학 철학 안에서 일반적으로 구획 논증이 실패한 이유를 살펴보고 요약할 것이다. 이런 분석은 설계와 상속에 대한 과학적 위상을 선험적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들은 철학적 근거를 잃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두 번째로 설계에 반대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구체적인 구획 논증들을 시험해 볼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런 논증들이 실패할 뿐만 아니라 근거 없이 주장된 적합한 과학적 행위의 여러 가지 특징들에 비춰봤을 때 설계와 상속 사이에는 동등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게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즉, 이런 표준들을 공평하게 적용했을 때 지적 설계와 자연주의적 상속은 서로 다른 구획 기준들을 똑같이 만족시킬 수도 있거나 똑같이 만족시킬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세 번째로, 설계와 상속을 역사적 탐구의 논리적이며 방법론적 특징들에 관한 최근의 연구에 비춰서 비교해볼 것이다. 이 분석은 설계와 상속 각각의 지지자들이 사용하는 탐구의 양상이 다른 특징적인 역사학 분야들에서 사용하는 것들을 밀접하게 따라간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그래서 역사 과학에 대한 방법론적 분석의 결과로서 설계와 상속 사이의 좀 더 근본적인 방법론적 동등성이 도출될 것이다.

제1부: 구획 논증의 일반적인 실패

설계가 “과학적 활동으로 결코 볼 수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15] 생물학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설계가 과학적 방법 내지는 과학적 활동에 대한 어떤 객관적인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주장해 왔다. 간단히 말해 생물학자들은 근거 없이 주장된 비과학적 접근(설계)으로부터 기원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상속) 분리하기 위해서 소위 구획 논증을 사용해 왔다. 이런 논증에 사용된 구체적인 기준을 시험해 보는 것은 제1부의 목적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구획 문제에 대해서는 살펴볼 것이다.

과학철학적 입장에서 구획 문제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문제가 많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의사과학으로부터 진정한 과학을 구분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들의 집합을 제공하기 위한 방법론적 “불변량”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실패하였다.[16] 게다가 대부분의 현재의 구획 논증들은 과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논리 실증주의로 알려진 과학철학의 영향을 반영하는 이해들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1950년대 이래로 과학 철학자들은 매우 좋은 수많은 이유들로 인해서 (아래를 참조) 논리 실증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해 왔다. 그 결과 구획이라는 기획은 일반적으로 과학 철학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안 좋아지게 되었다.

과학철학자인 래리 라우든은 “구획 문제의 몰락”이라는 글에서 비과학으로부터 과학을 구분하기 위해서 과학의 역사에서 발전되어 온 서로 다른 기준들을 짧지만 빈틈없이 살펴보았다.[17] 그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첫 번째 근거가 과학적 지식과 관련된 확실성의 정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과학은 확실성을 만들어 내지만 철학과 같은 다른 형태의 탐구는 의견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비과학으로부터 과학을 구분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구획에 대한 이런 접근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점차로 과학이라는 학문과 이론이 가지고 있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본성을 알게 되면서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수학자들과는 달리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엄격한 논리적인 논증을 (연역적 증명을) 제공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 대신에 과학의 논증은 종종 어떠한 확실성도 만들어 너지 않는 귀납적 추론과 예측적인 검증을 사용하였다. 오웬 깅그리치(Owen Gingerich)가 주장한 바와 같이 갈릴레오와 바티칸이 충돌한 대부분의 이유는 갈리레오가 연역적 확실성이라는 스콜라적 표준을 맞출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갈릴레오는 연역적 확실성이 과학적 사고에서는 적절하지도 않으며 도달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겼다.[18] 그 이후에 일어난 유사한 에피소드들이 과학이 상위의 지적인 위상을 점유할 필요가 없으며 과학적 지식은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불확실성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만들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비과학으로부터 과학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변화하였다. 구획주의자들은 더 이상 과학적 이론의 우월적 지적 지위에 근거해서 과학을 규정하려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과학이 이론을 만들 때 사용하는 우월적 방법에 근거해서 구획을 나누려고 시도하였다. 그래서 과학을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방법을 기준으로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구획 기준은 인식론적인 것이기보다는 방법론적인 것이 되었다.[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접근 또한 과학적 방법이란 정말로 무엇인가에 대한 광범위한 불일치라는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만일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과학적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동의할 수가 없다면, 어떻게 그 학문을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학문들을 과학으로서 자격미달인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장의 제3부에서 다룰 역사 과학의 논의에서처럼 하나 이상의 과학적 방법이 존재하는 듯 했다. 만일 그렇다면 단일한 방법론적 기준을 사용해서 비과학으로부터 과학을 분리해 내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 뻔하였다. 과학적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어떠한 과학에 대한 단일한 방법론적 규정도 다양한 과학적 활동을 포함하기에 충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그래서 과학적 위상을 평가하기 위해 단일한 방법론적 기준을 사용하게 되면 이미 과학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어떤 학문 분야를 과학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결과를 낳았다.[20]

방법론적 사고를 사용하는데 따르는 문제가 커지면서 구획 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초점을 다시 한 번 이동시켰다. 1920년대가 시작되면서 과학 철학은 언어론 내지는 의미론적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전통은 과학 이론은 과학적 이론이 유일하거나 우월한 방법을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이론들이 훨씬 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것과 구별된다는 입장을 만들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모든 의미 있는 진술은 경험적으로 검증가능 하거나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의미의 검증 기준”에 따르면 과학 이론들은 철학이나 종교적 개념 보다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 이론들은 행성, 광물, 그리고 새와 같은 관측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참고하지만 철학과 종교는 신, 진리, 그리고 도덕성과 같은 관찰할 수 없는 요소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실증주의는 곧바로 자기 모순에 빠졌다. 철학자들은 실증주의의 ‘의미의 검증 기준’이 자기 자신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 실증주의자들의 가정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하거나 논리적으로 필연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실증주의의 검증이라는 이상은 실제 과학적 활동을 잘못 나타낸 것이었다. 많은 과학 이론들은 힘, 장, 분자, 쿼크, 그리고 보편적 법칙과 같은 검증할 수 없거나 관찰할 수 없는 요소들을 사용한다. 반면에 평판이 좋지 못한 많은 이론들이 (예를 들어 평면 지구 이론과 같은) “상식적인” 관찰에 명백하게 의존하였다. 분명히 실증주의의 검증 기준은 구획이라는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1950년대에 실증주의가 죽으면서 구획주의자들은 전혀 다른 방침을 사용하였다. 칼 포퍼 경의 반증가능성과 같은 또 다른 의미론적 기준이 등장하였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 이론들은 비과학적 개념보다 더 의미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경험적으로 반증 가능한 요소들만을 언급하기 때문이었다.[21] 그러나 이것 역시 문제 있는 기준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먼저 반증은 실제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이 예측을 통해서 직접 확인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 대신에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보조 가설들과 결합했을 때 예측이 이뤄졌고 그래서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이 아닌 보조 가설들이 잘못된 예측에 대한 책임을 떠맡을 가능성을 언제나 남겨 두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역학은 세 가지 핵심적인 운동 방정식과 만유 인력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근거로 해서 뉴턴은 태양계의 행성의 위치에 대한 많은 예측들을 만들어 내었다. 뉴턴의 예측 중 어떤 것을 확증하는데 실패했을 때, 뉴턴은 자신의 핵심적인 가정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이론과 관찰 사이의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보조가설들 중 몇 가지를 면밀히 검토하였다. 예를 들어, 뉴턴은 행성이 완전한 구체이고 중력에만 영향을 받는다는 자신의 작업 가설을 시험해 보았다. 임레 라카토스(Imre Lakatos)가 보여준 것처럼 뉴턴이 이상현상들에 맞서서 자신의 핵심 이론을 버리기를 거부함으로 인해 자신의 이론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었고 결국은 엄청난 성공을 이끌 수 있었다.[22] 뉴턴이 반증 결과로 추정되는 사실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뉴턴의 중력 이론이나 그의 세 가지 법칙들의 과학적 위상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과학 검증에서의 보조 가설의 역할은 (소위 연성 과학(soft science)에 속하는 것들을 포함해) 많은 과학 이론들이 엄밀하게 반증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과학계에서의 여론 심판을 통해서 실제로 반증된 많은 이론들은 반증가능성 기준에 따르면 과학적이 것으로 여겨져야만 한다. 그 이론들이 반증되었기 때문에 그 이론들은 당연히 반증가능하고, 그래서 그 이론들이 반증가능하므로 그 이론들은 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23]

그리고 이 기준은 일반적으로 반증 가능성 기준과 함께 사라졌다. 증거에 근거를 두지 않았던 많은 이론들이 진정한 과학의 특징으로 근거 없이 주장된 인식론적이고 방법론적 가치들을 (검증가능성, 반증가능성, 관찰가능성 등을) 보여주었다. 대단히 존중받는 많은 이론들이 진정한 과학의 특징으로 주장된 것들 중 몇 가지가 부족하였다. 그 결과,[24]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25] 대부분의 현대 과학 철학자들은 “어떤 방법들이 비과학으로부터 과학을 구분해 주는가?”와 같은 문제가 해결가능하지도 않으며 흥미롭지도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분명히 자동적인 인식적 보장이나 권위는 없다. 그래서 과학 철학자들은 진정한 문제는 한 이론이 과학적인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이 증거에 의해 참인가 내지는 증거에 의해 보장받는가 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이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마틴 에거(Martin Eger)가 요약한 것처럼 “구획 논증은 무너졌다. 과학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다루지 않는다. 구획 문제가 대중적인 세계에서는 여전히 기쁘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지만 거기는 다른 세계이다.”[26]

라우든의 말처럼 “구획 문제의 몰락”은 진화론자들이 실증주의적 구획 논증을 사용하는 것은 적어도 언 듯 보기에도 매우 불안정한 기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준다. 라우든의 분석은 이런 논증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상속과 설계의 과학적 위상을 구분하는데 성공할 것 같지가 않다. 라우든이 말한 것과 같이 “만일 우리가 이성의 편에 설 수 있다면 우리는 ‘의사 과학’이라는 용어를 버려야만 한다... 그들은 단지 감정적인 역할만 수행한다.”[27]

만일 라우든과 같은 과학 철학자들이 옳다면 설계와 상속에 대한 우리의 분석에도 막다른 골목이 존재한다. 어떤 것도 자동적으로 과학으로 분리될 수 없다. 어떤 것도 필연적으로 과학이 아닌 것이 될 수도 없다. 설계와 상속의 선험적인 방법론적 장점은 그 장점을 평가할 일치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명확한 잣대가 없기 때문에 설계와 상속이 어떤 자명하지 않은 의미에서 동등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몇 가지 구체적인 기준에 비춰서 설계와 상속을 비교해야만 한다. 이제 설계에 반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체적인 구획 논증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구획 논증은 일반적으로 과학 철학자들에 의해서 신뢰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런 논증은 다음 장에서 살펴볼 내용에서처럼 여전히 과학계와 “대중 세계”[28]에서는 널리 유통되고 있다.




   지적설계의 과학적 위상 (S.C.Meyer): 2부 설계를 반대하는 구획 논증들

ID
2006/01/18

   자연주의 철학에 반대하는 지성운동으로서의 지적설계

ID
200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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