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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설계란 자연이 지성에 의해서 설계되었다는 실제적인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는 관점이다. 지적 설계 논증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유명한 지적 설계 논증의 형태는 신학자인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가 제시한 것이다. 그는 1802년에 “시계공 논증”이라는 것을 제안하였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고, 그 돌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를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아는 한 그 돌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내가 땅에서 시계를 발견했고, 그 시계가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를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앞에서 했던 것처럼 시계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는 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1]

반대로 시계의 모든 부품들의 정교한 조합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실제로 발견한 그 목적을 위해서 시계를 만들고 시계의 구성을 이해하고 시계의 용도를 의도해서 만든 한 기술자 또는 여러 명의 기술자들이 있어야만 한다.[2]

페일리는 우리가 눈과 같은 많은 자연적 대상들에 대해서도 시계의 경우와 동일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계의 모든 부품들이 시간을 알려주는 목적을 위해서 완벽하게 맞추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의 부품들은 모두 보는 기능을 위해서 완벽하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페일리는 각각의 경우 모두에서 우리가 지적 설계자의 표시를 구별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페일리의 기본적인 개념은 건전했고, 수십 년 동안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왔지만, 페일리는 결코 자연에서 설계를 검출하는 엄밀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설계를 검출하는 것은 주어진 대상의 “목적”을 구분할 수 있다는 모호한 기준을 근거로 하였다. 게다가 페일리와 다른 “자연 신학자”들은 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존재를 자연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이끌어 내려고 시도하였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진화론을 제시했을 때 이 모든 원인들로 인해서 설계는 다윈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페일리은 정확하게 균형잡힌 세계가 친절하고 정의로운 하나님을 증명한다고 보았지만 다윈은 자연의 불완전성과 잔인함을 지적하였다.
다윈의 이론이 승리함에 따라 설계 이론은 생물학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1980년대 이래로 생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들은 새로운 세대의 학자들이 다윈의 이론은 살아 있는 생물들의 순전한 복잡성을 설명하는데 부적절하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화학자, 생물학자, 수학자 및 과학철학자들인 그들은 설계 이론을 다시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기존의 지적 설계 논증들이 가지고 있는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설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엄밀하게 표현해 왔다.
오늘날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ID)'라 부르는 이러한 새로운 접근은 앞서 나온 이론들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다. 지적 설계 에서는 결코 자연 세계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나 특성을 추론하려고 하지 않고 단지 “지적인 원인들은 복잡하고, 정보가 풍부한 생물학적 구조들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이며, 지적인 원인들은 경험적으로 검출 가능하다”고 주장할 뿐이다.[3]

[1] William Paley, Natural Theology; or, Evidences of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the Deity, 12th ed. (London: J. Faulder, 1809), p. 1.

[2] Paley, p. 3.

[3] William A. Dembski, Intelligent Design (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1999), p. 106.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진화"라는 용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에 따라 다르다. 만일 진화가 단순히 "시간에 따른 변화" 내지는 "유전자 풀에서의 빈도수의 변화"와 같은 의미라면 지적 설계는 진화와 아무런 충돌도 일으키지 않는다. 심지어 "진화"가 모든 생물들이 공통 조상을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하더라도 지적 설계는 진화와 양립 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진화"가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오로지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에 의한 메커니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라는 의미라면 지적 설계는 진화와 충돌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화가 모든 생물학적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지적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화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생물학적 복잡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지적설계 이론에서는 현재 관찰되는 진화의 증거로는 "모든 생물학적 복잡성이 진화로 설명된다"는 명제를 보여줄 수가 없으며, 이러한 과도한 주장의 이면에는 과학적 증거보다는 철학적 자연주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지적 설계의 사상적 근거는 매우 다양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물론 근대 과학을 설립했던 많은 과학자들이 고전적인 지적 설계론을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실제로 19세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지적 설계 이론을 받아 들였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신다윈주의가 생물학적 복잡성을 무작위적 돌연변이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과학계에서 지적 설계론이 광범위하게 거부되었다.
그러다가 십여년 전부터 물리학, 우주론, 생화학, 유전학, 고생물학 등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부터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다윈주의를 의심하게 되었고 지적 설계를 자연계에 존재하는 특정된 복잡성을 설명하는 최상의 설명으로서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 않다. 지적 설계에서는 모든 생물학자들이 인정하는 자연에서의 '겉보기 설계'가 실제로 설계된 것인지 아니면 진화와 같은 방향이 정해지지 않는 과정의 산물인지를 경험적으로 탐지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창조론은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에 의존하거나 지구나 우주의 연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수만 년에서 수십억 년에 이르는) 해석을 사실로서 주장한다.
지적 설계 이론은 창조론이 제기하는 주장에 대해서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한다. 사실상 관심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생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지구의 연대 측정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생물학자 개인들이 그런 주제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으로 그런 분야에 대해서 연구하거나 입장을 가질 수는 있지만, 자신의 "생물학" 연구의 일환으로 지구의 연대에 대해서 연구하지는 않는다.
지적 설계에서도 각각의 개인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지구의 연대나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같은 문제는 지적 설계 이론 자체의 관심 연구 분야는 되지 못한다.

지적 설계는 최근에 시작된 매우 젊은 과학의 연구 분야로 주류 과학에서는 아직 지적 설계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지만, 최근들어 전문 연구자들의 심사를 거친 논문들이 전문 연구 저널에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S. C. Meyer, "The Origin of Biological Information and the Higher Taxonomic Categories," Proceedings of the Biological Society of Washington, vol. 117, no. 2, pp. 213-239, 2004. Available at http://www.discovery.org/scripts/viewDB/index.php?command=view&id=2177.

M. J. Behe and D. W. Snoke, "Simulating evolution by gene duplication of protein features that require multiple amino acid residues," Protein Science, vol 13, pp. 2651-2664, 2004.

J. Wells, "Do Centrioles Generate a Polar Ejection Force?," Rivista di Biologia, vol. 98, no. 1, pp. 71-96, 2005.

Sarah A. Mims and Forrest M. Mims III, “Fungal spores are transported long distances in smoke from biomass fires,” Atmospheric Environment, vol. 38, pp. 651-655, 2004.

지적 설계를 호의적으로 참고하거나 지적설계적인 관점을 바탕으로한 연구 논문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M. J. Denton and J. C. Marshall, “The Laws of Form Revisited,” Nature, vol. 410, p. 417, 2001.

M. J. Denton, J. C. Marshall, and M. Legge, “The Protein Folds as Platonic Forms: New Support for the pre-Darwinian Conception of Evolution by Natural Law,”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vol. 219, pp. 325?342, 2002.

W.-E. Loennig and H. Saedler, “Chromosome Rearrangements and Transposable Elements,” Annual Review of Genetics, vol. 36, pp. 389?410, 2002.

D. K. Y. Chiu and T. H. Lui, “Integrated Use of Multiple Interdependent Patterns for Biomolecular Sequence Analysis,” International Journal of Fuzzy Systems, vol. 4, no. 3, pp. 766?775, 2002.

J. M. Schwartz, H. P. Stapp, and M. Beauregard, "Quantum physics in neuroscience and psychology: a neurophysical model of mind?brain interaction," Philosophical Transactions: Biological Sciences, vol. 360, no. 1458, June 2005.

또한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과학 철학 논문지에 게재된 논문들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M. J. Behe, “Self-Organization and Irreducibly Complex Systems: A Reply to Shanks and Joplin,” Philosophy of Science, vol. 67, pp. 155-162, Mar. 2000.

W. L. Craig, “God, Creation, and Mr. Davies,”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vol. 37, pp. 168-175, 1986.

W. L. Craig, “Barrow and Tipler on the Anthropic Principle vs. Divine Design.”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vol. 38, pp. 389-395, 1988.

오늘날 지적 설계는 과거의 설계 논증보다 주장의 범위가 훨씬 더 제한되어 있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해졌다. 오늘날에는 주관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목적” 이나 “완벽”이라는 모호한 특성들을 찾기보다는 지적 설계는 특정된 복잡성 (specified complexity)라는 분명한 객관적인 표준을 찾는다. 이 용어는 언 듯 보기에 어려운 보이지만 기본 개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한 친구가 당신에게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의 일부가 써 있는 종이 한 장을 건네
주었다고 하자.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다.

FOURSCOREANDSEVENYEARSAGOOURFATHERSBROUGHTFORTHONTHI
SCONTINENTANEWNATIONCONCEIVEDINLIBERTY …

당신의 친구가 자신이 영어 알파벳이 써 있는 조각들이 들어 있는 가방 속에서 임의로 조각들을 꺼내서 이 문장들을 만들어 낸 것이라 말한다면 당신은 그를 믿을 수 있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믿을 수 없을까?
한 가지 이유는 그에 대한 확률이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나올 수 있는 가능한 결과들이 너무나 많다. 가능한 문자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특정한 문장을 임의로 두 번 얻을 확률은 거의 0이다.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만일 우리 친구가 아래와 같은 문장을 보여주었다면 우리는 그의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ZOEFFNPBINNGQZAMZQPEGOXSYFMRTEXRNYGRRGNNFVGUMLMTYQXT
XWORNBWIGBBCVHPUZMWLONHATQUGOTFJKZXFHP …

왜 그런가? 왜냐하면 우리가 본 문자열의 종류 때문에 그렇다. 첫 번째 문자열은 구분할 수 있는 패턴과 맞아떨어진다. 그 문장은 영어로 쓰여졌고 빈칸과 문장부호가 빠졌다. 두 번째 문장은 이런 패턴이 없다. 이것이 바로 특정된 복잡성의 기본 개념이다.
설계 이론에서 어떤 한 문장이 특정되었다고 말할 때에는 그 문장이 구분할 수 있는 패턴에 맞아떨어진다는 의미이다. 또한 설계 이론에서 어떤 한 문장이 복잡하다고 말할 때에는 어떤 대상을 얻을 수 있는 서로 다른 방법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떤 특정한 결과를 우연히 얻을 가능성은 터무니없이 작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서 나온 게티스버그 문장에서는 문장이 특정되면서도 복잡하기 때문에 설계된 것(무작위적으로 뽑아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두 번째 문장에서는 이런 설계를 볼 수가 없다. 그 문장은 복잡하기는 하지만 어떠한 구분 가능한 패턴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 친구가 “BLUE”와 같은 문자열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면 이 문장은 특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복잡하지가 않다. 이 문장은 패턴을 갖고 있지만 문자의 수가 너무 짧아서 이런 문장을 우연히 얻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다. 네 개의 문자는 앞서 나온 게티스버그 연설문의 길이에 해당하는 90여 가지 문자들의 조합만큼이나 많은 경우의 수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특정된 복잡성의 기본적인 개념이다.
특정된 복잡성은 우연에 의해서 생길 확률이 극도로 작으면서 동시에 하나의 구분 가능한 패턴에 부합하는 대상이나 사건에 의해서 표현된다. 현대의 설계 이론에 따르면 고도의 특정된 복잡성이 존재하는 것은 지적인 원인의 표지이다.

지적설계(ID)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지적 원인은 생물학적 정보 부유 구조(information-rich structure)를 설명하는데 있어 필수적이다"는 것이다. 생명체에 대해 알수록 우연이나 자연법칙에 의한 산물이라기보다는 설계에 의한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지적설계 반대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 옥스퍼드의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생물학은 어떤 목적을 갖고 설계된 것으로 보이는 복잡한 것들에 대한 연구이다."라고 말한다. 비슷한 경우로 생물학 저널인 Cell의 최근 이슈에서 선도적인 세포 생물학자이자 국제 과학 학회의 회장인 브루스 앨버트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항상 세포에 대해 과소 평가해 왔다. .... 세포 전체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도록 정성들여 만들어진 각각의 거대한 단백질 기계로 구성되어있는 네트워크를 갖는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 세포기능의 기초가 되는 거대한 단백질 덩어리를 왜 단백질 기계라 불러야 하는가? 인간에 의해 거시적 세계에서 효율적으로 다루어지도록 설계된 기계처럼 이러한 단백질 부품도 고도로 협력하는 이동부분을 갖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물론 도킨스나 앨버트와 같은 생물학자들은 생명체의 설계가 착각일 뿐이라고 믿는다. 즉, 생명체는 지적인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과 자연법칙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도킨스는 특히 페일리의 ‘시계공’에 대해, 시간을 거치면서 누적된 유전자의 유리한 변화가 자연선택에 의해 복잡성 체계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복잡 특정 정보’(CSI: complex specified information) 개념은 이러한 주장을 시험해 보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다.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기 위해서 인간 시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빛이 망막에 위치한 시세포인 간세포를 자극하게 되면 간세포는 신경세포를 거쳐 뇌로 전달되는 전기자극을 만들게 된다. 어떻게 이 빛이 전기신호를 유발하는가? 빛이 없을 때는 간세포는 나트륨이온이 세포의 안과 밖으로 자유롭게 흐르도록 함으로써 전기적 중성상태를 유지한다. 이것은 세포막에 자리한 두개의 단백질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온채널이라 불리는 한 단백질은 문처럼 나트륨이온이 유입되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단백질은 나트륨이온이 세포 밖으로 나가도록 밀어내는 펌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온채널은 cGMP라 불리는 또 다른 생물분자에 반응하여 열리고 닫힌다. 편리하게 우리는 이것을 opener라 부르겠다. opener가 이온채널에 붙으면 채널은 열리고 양전하를 띤 나트륨이온이 세포 안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opener가 떨어지면 채널은 닫히고 이온의 흐름은 중단된다. 정상조건 하에서는 세포 내 opener 분자가 고농도로 존재하고 그것들은 계속해서 채널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게 된다. 그 결과로 채널도 계속해서 열리고 닫히게 된다. 그러나 빛이 세포에 들어올 때에는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이 때 trigger(이것의 본래 이름은 11-cis-retinal이다)라 불리는 생물분자를 빛이 자극하게 되는데, 이것이 trigger의 모양을 변화시키고 세포의 화학적 연쇄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반응의 결과로 opener는 두개로 잘리게 되고 더 이상 이온채널에 붙을 수 없게 된다. 나트륨이온이 더 이상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고 펌프가 이온을 밖으로 밀어냄으로 전기전하가 생기게 된다. 전하가 충분히 강해지면 세포는 전기자극을 방출하게 된다. 이 자극이 전달된 후에는 다른 연쇄반응이 trigger와 opener 분자를 그들의 원래 상태로 복귀시킴으로써 이온채널이 기능을 회복하도록 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설계된 것인가, 아니면 순전히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다윈주의자는 아마 ‘아니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모든 생물 시스템은 자연선택-적자생존-에 의해 보존된 무작위적인 유전변이의 점진적인 축적에 의해 “창조되었다.” 즉, 현존하는 시스템은 단순히 초기 시스템의 변이에 불과한 것이다. 설계론자들은 만약 그 시스템이 특정된 복잡성을 나타낸다고 한다면, 반대로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누가 맞는가? 어쨌거나 양쪽 다 이러한 시스템이 복잡하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질문은 어떻게 그 시스템이 복잡해졌는가 이다: 작용하는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광범위한 필요조건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한 방법은 이 시스템을 서투르게 맞춰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는 것이다. 만약 단백질이나 다른 생물분자를 파괴한다고 하더라도 그 시스템이 얼마나 잘 작동할 것인가? 그것들을 바꿨을 때 분자는 기능을 얼마나 잘 하는가? 만약 상당히 많이 바꾸었는데도 여전히 잘 작동한다면 그것은 특정된 것이 아니라, 의도되지 않으며 순차적인 과정에 의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시스템은 고도로 특정된 것일 것이다.
몇몇 시스템은 어떠한 변화도 전혀 견디지 못할 만큼 고도로 특정되어 있다. 박테리아가 움직일 때 사용되는 외장 모터인 박테리아의 편모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략 50여개의 단백질이 필요하다. 만약 이 단백질들 중 어느 하나라도 망가뜨린다면 편모는 작동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그 편모는 특수화된 복잡성뿐만 아니라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갖는 것이다.
더 매력적인 연구가 Science 저널에 보고되어 있다. 한 연구팀이 가장 단순한 생명체에서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살아남고 번식하는 데 있어 필요한가를 밝히고자 했다. 그 과학자들은 얼마나 작은 부분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를 알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가장 단순한 생명체인 Mycoplasma genitalium 이라 불리는 박테리아를 부분적으로 바꾸었다. 그 생명체의 유전자는 약 580,000개로서 480개의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와 37개의 “종” RNA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바꾼 후에 이 과학자들은 265에서 350개의 박테리아 유전자가 실험실 조건-최적 조건-에서 그 생명체가 살아남고 번식하는 데에 “필수적” 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설계된 시스템인가? 이제 그런 식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된 요점은 특정된 복잡성이라는 것이 우리 연구를 이끌어 가는 표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지적 설계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적이냐 초자연적이냐를 대비시키는 것은 논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자연법칙 대 기적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 없는 자연적 원인과 지적 원인간의 차이가 문제인 것이다. 수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윌리엄 뎀스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지적인 원인이 자연 내에 존재하느냐 외부에 존재하느냐 (즉, 자연적이냐 초자연적이냐) 라는 물음은 지적인 원인이 작용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라는 것과는 별개의 물음이다." 인간의 행동이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인간이 지적인 행위자로서 행위할 때마다 기적을 수행하지는 않는 것처럼 설계자가 지적인 행위자로 행동하려면 자연법칙을 위배해야만 한다고 가정할 근거는 없다."
한편, 비록 어떤 대상이 기적을 통해 창조되었다 하더라도 이 대상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편모를 예로 들어보자. 그 기원이 어떻든 편모는 편모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떼어내어 부분부분 조사할 수 있으며 변형시킬 수도 있고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밝힐 수도 있다. 편모가 수 이언(eon)동안 진화한 것이든 몇 초 전에 발생한 것이든 우리는 그것을 연구할 수 있다. 기술계에서는 이와 같은 행위를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이라 부른다. 하지만 동일한 과정이 생물학에서도 사용된다.
"이건 기본적으로 연구자들 모두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라고 아이다호 주립대의 미생물학자 Scott Minnich는 말한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많은 생물의 DNA 정보를 알고 있지만 생물을 조립한다는 식으로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설계도를 따라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분해했다고 다시 결합시켜서 각각의 부분이 어떻게 기능하는 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인간의 게놈에 대해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 6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성공이 알려졌을 때, 국립 건강 연구소의 전임 소장이었던 Harold Varmus 박사는 뉴욕 타임즈의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 "중요한 것은 DNA 조각들이 우리 손에 들어왔고, 이것을 변형시키거나 돌연변이시키는 것을 통해 각각의 기능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까지 우리의 작업이 이른 지점이다."
적절하게도 이와 같은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비유는 시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 "여러분들은 시계를 분해하여 각각의 부속들을 당신 앞에 두었다가 다시 조립하여 시계가 어떻게 가는 것인지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