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설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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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05: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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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설계의 과학적 위상 (S.C.Meyer): 2부 설계를 반대하는 구획 논증들
제2부: 설계를 반대하는 구체적인 구획 논증들

구획 문제가 해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이라는 과학철학자들 사이에서의 의견일치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은 가짜이거나, 괴상하거나 지식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장들을 불신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구획 기준에 의존하고 있다. 보통의 실제로 활동하는 과학자들에게 라우든의 구획에 반대하는 논증은 기껏해야 직관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표면상으로 초심리학, 점성술, 그리고 골상학과 같은 수상스런 시도들을 물리학, 화학, 천문학과 같은 잘 확립된 과학으로부터 구분하기 위해서 어떤 모호한 기준을 사용해도 괜찮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이런 기준은 없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들은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철학자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수상스런 혐의를 확인해 줄뿐이다. 결국 어떤 과학 철학자는 과학적 진리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서 결정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어떤 과학 철학자는 심지어 과학이 객관적 실체를 다룬다는 사실조차도 거부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라우든과 다른 사람들이 구획 문제에 대해서 말한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과학에 대한 상대주의적이고 비실재론적 관점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두 가지 입장은 논리적으로 관계가 없다. 라우든은 모든 과학적 이론들이 동일하게 보장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그 반대다) 또는 과학 이론이 결코 실제 대상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 대신 그는 단지 모든 “진정한 과학”이 갖고 있다고 근거 없이 주장된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선호되는 이론들에 자동적으로 지적인 권위를 부여해 주는 형태로는 과학을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론의 근거나 진리 주장을 평가할 때 우리는 경험적인 평가 대신 과학의 본성에 대한 추상적 개념으로 대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우든의 일반적인 논제를 확립하는 것은 이 장의 주된 목적이 아니다. 이 장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구획의 불가능성을 수립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적 설계와 자연적 상속의 방법론적 동등성을 수립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획이 언제나 실패한다는 사실을 의심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후에 나오는 내용에서는 상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설계를 반대하기 위해서 전개시킨 구체적인 구획 논증 중 몇 가지를 실제로 검사해 볼 것이다.[29] 이러한 논증은 어떤 하나에 비해서 또 다른 것의 방법론적 장점을 구분해 주는 어떠한 근거도 제공해 주는데 실패하였고, 그 대신 이러한 논증들을 신중하게 검토해 보면 실제로는 설계와 상속을 방법론적으로 동등한 것으로 생각해야할 이유를 보여주게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실제로 다음의 분석은 동일한 근거를 가지고서 상속 이론을 과학이 아닌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설계 이론은 간단하게 과학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좁게 과학을 정의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으로 중립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불행히도 이런 것들을 결정적으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설계에 반대하는데 사용되어 온 모든 구획 논증들을 전부다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진화론의 반론을 조사해 보면 이런 논증들이 많이 드러나게 된다. 설계 이론이나 창조론들은 그들이 (a) 자연 법칙에 근거해서 설명하지 않으며,[30] (b) 관찰할 수 없는 것들에 의존하고,[31] (c) 검증가능하지 않고,[32] (d) 예측을 만들지 않으며,[33] (e) 반증가능하지 않고,[34] (f) 어떠한 메커니즘도 제시하지 않으며,[35] (g) 잠정적이지 않고,[36] 그리고 (f) 문제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에[37] 필연적으로 비과학인 것으로 근거 없이 주장되어 왔다.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서 처음 세 가지 논증에 대해서만 자세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b), 그리고 (c)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분석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각각이 「종의 기원」의 뒤에서 이런 저런 형태로 언제나 발견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첫 번째로 나온 (a)는 특별히 중요한 것인데 왜냐하면 다른 것들이 이것으로부터 유도되기 때문이다.---이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진화론의 구획주의자인 마이클 루즈(Michael Ruse)에 의해서 강조된 문제이기도 하다.[38] 그에 따라서 주장 (a)에 대한 분석은 이 절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39] 또한, (d), (e), 그리고 (f)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논의할 것이고 (g)와 (h)를 기각하는 참고문헌도 포함시킬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구획 논증을 전부다 분석하는 것이 여기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설계에 반대하기 위해서 사용된 주요한 논증들이 문제회피의 오류를 범하거나 상속의 과학적 위상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지적 설계의 과학적 위상을 논박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자연 법칙을 통한 설명: 이제 마이클 루즈에 따르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설계가 과학 이론이라는 사실에 반대하는 논증 중 첫 번째 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논증은 “과학 이론은 자연 법칙에 의해서 설명되어야만 한다. 설계나 창조론자들의 이론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비과학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논증은 1981년에서 82년 사에 일어난 아칸소 창조과학 재판에서 과학 철학자인 마이클 루즈의 증언을 듣고 난 후에 윌리엄 오버튼(William Overton) 판사가 받아들인 중요한 과학의 요건 중 하나에 의존하고 있다.[41] 1992년 3월에 루즈는 또 다른 과학 철학자인 필립 퀸(Philip Quinn)과 래리 라우든(Larray Laudan)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42] 하나의 구획 기준으로 “자연 법칙을 통해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루즈는 과학적 견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주가 자연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더 나아가서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서 우주에 간섭하는 존재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대신에 과학적 방식으로 사물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루즈가 “깨지지 않는 법칙”(unbroken law)이라 부른 것을 언제나 찾아야 한다.

이런 주장과 루즈가 가정하는 과학의 개념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43] 특히, 루즈가 가정하고 있는 과학관은 과학적 법칙과 설명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런 관점에는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하고, 이것이 “자연 법칙을 통한 설명”이 구획 기준이 되지 못하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에 해당한다.

첫 째로 많은 법칙들은 기술적인 것(descriptive)이지 설명적인 것(explanatory)이 아니다. 많은 법칙들은 규칙을 기술하지만 왜 그 법칙이 기술하는 규칙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과학사에서 볼 수 있는 이와 관련된 좋은 예로는 만유 인력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서 뉴턴 자신이 중력에 의한 운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술할 뿐이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였다. 뉴턴은 이 이야기를 「프린키피아」(Principia)의 두 번째 판의 “일반 주석”(General Scholium)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나는 가설을 가장하지 않는다.”---다시 말해 “나는 어떤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44] 과학이 “자연 법칙”에 근거해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기술할 뿐 그들이 “다루는”(cover) [45] 현상을 설명하지 않는 모든 근본적인 물리 법칙들을 적절한 과학의 영역으로부터 제거하게 될 것이다. 구획주의자들에게 이것은 매우 역설적이고 원하지 않는 결과이다. 왜냐하면 구획주의자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주된 동기가 과학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학문들이 물리 과학의 방법론적 엄격함에 맞추도록 하기 위한 욕구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많은 사회학자들의 “물리학에 대한 질투”를 완화시켜 주기는 하겠지만, 이것은 또한 구획주의자들에게는 자신들의 기획의 목적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될 뿐이다.

법칙이 설명이나 원인과 같을 수가 없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동시에 이것은 과학이 자연 법칙을 통해서 설명하는 학문들에만 해당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많은 법칙들이 설명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와 더불어서, 특히 응용 과학이나 역사 과학에 적용되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많은 설명들은 법칙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46] 법칙은 설명과 같을 수가 없다. 과학자들은 특정한 사건의 설명의 개연성을 부여하거나 강화하기 위해서 법칙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설명의 논리적 요구사항들을 분석해 보면 법칙을 이용하는 것은 이런 많은 설명들에게는 필요치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47] 그 대신 특정한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많은 설명은, 특히 역사 과학에서는, 법칙보다는 주로, 심지어는 독점적으로 “설명적 역할”이라 불리는 것을 하게 될 과거의 인과적 조건이나 사건들의 내역에 의존하고 있다. 즉, 과거의 인과적 사건들을 언급하는 것이 법칙이나 자연의 규칙성보다도 종종 구체적인 사건을 더욱 잘 설명하고 때때로 규칙이나 자연의 규칙성을 언급하지 않고서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48]

많은 역사적 설명에서 법칙이 역할을 거의 또는 전혀 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많은 구체적인 사건들은 규칙적으로 다시 발생하지 않을 연속된 사건들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법칙은 일어난 사건과, 일어날 것으로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들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아무 상관도 없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산맥의 특별한 높이에 대한 설명을 찾는 역사 지질학자들은 히말라야산맥의 조산운동의 경우에 존재했지만 다른 산의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특별한 과거의 요소들을 언급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산을 형성하는 지구물리적인 법칙을 아는 것이 히말라야와 다른 조산운동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이런 법칙들은 모든 조산운동의 경우에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대한 설명을 찾을 때 지질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반적인 법칙이 아니라 과거 유일하거나 구별되는 조건들에 대한 증거이다.[49] 그래서 지질학자들은 과거의 인도 대륙과 아시아 대륙 덩어리(판)의 과거 위치와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충돌에 가지고서 히말라야의 특별한 높이를 설명해 왔다.

지질학자의 상황은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이 직면한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생각해 보자. 빌헬름 황제의 장군들의 야욕, 프랑스-러시아 방위협정, 그리고 페디넨드(Ferdinand) 황태자의 암살. 이러한 가능한 설명적인 요소들은 변함 없이 법칙보다는 과거의 사건, 조건, 또는 행동들을 포함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연속된 사건들을 설명하거나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과거의 사건을 원인으로 사용하는 것은 역사 과학뿐만 아니라 역사 지질학과 같은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보편적인 일이다. 마이클 스크리븐(Micahel Scriven)이 보인 것처럼 원인과 결과를 법칙을 사용해서 공식적인 형태로 나타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종정 어떤 것을 일으킨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가능하다.[50] 마찬가지로 윌리엄 알스톤(William Alston)은 우리가 법칙을 알고 있는 경우에도 법칙만으로는 종종 특정한 사건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51] “산소는 연소를 위해 필수적이다”라는 법칙은 왜 어떤 건물이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불탔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52] 이런 구체적인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불이 나기 직전의 상황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과학 법칙을 아는 것은 약간의 도움만 될 뿐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알 필요가 있는 정보는 방화범위 존재, 건물의 보안 소홀, 또는 자동진화 시스템의 부재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알스톤은 법칙을 하나의 설명 내지는 원인과 동등시하는 것은 “가장 명백한 형태의 ‘범주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고 결론 내렸다.[53]

아마도 또 다른 예가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왜 사과는 보통 지구로 떨어지는데 우주비행사는 달까지 날아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할 때, 중력의 법칙을 일차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법칙은 너무 일반적이어서 이런 상황의 설명과는 일차적인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그 법칙은 초기값과 경계값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가능한 결과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들에 역제곱의 법칙에 따라서 중력이 작용한다고 말해 주는 법칙은 사과가 지구로 떨어지는 상황이나 달로 비행하는 우주비행사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왜 사과는 떨어지고 우주비행사는 날아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법칙은 두 상황 모두에 적용되기 때문에 법칙 이상의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떨어지는 사과와 날아가는 우주비행사라는 서로 다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상황에서 차이가 났던 선행 조건과 사건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런 경우에 설명은 엔지니어가 우주비행사에 작용하는 조건들을 바꿔서 지구주위의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이라는 제약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술을 사용했다는 방식의 설명을 사용한다.

이런 예들은 루즈의 “자연 법칙을 통한 설명”이라는 기준이 모든 과학적 활동에서의 정규 규정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우주론, 고고학, 역사 지질학, 응용 물리 및 화학, 생명의 기원 연구 그리고 진화 생물학과 같은 분야와 같은 과학으로 이미 여겨지고 있는 분야에서 자주 생기는 구체적인 사건들에 대한 많은 설명들이 과학적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논의에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진화 생물학으로부터의 예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마크 리들리(Mark Ridley), 그리고 마이클 루즈는 하나의 이론이 어떻게 거대한 규모의 생물학적 변화가 일반적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진화의 사실”[54]은 확고부동하다고 주장하였다. 다윈과 같은 현대 진화 이론가들은 진화가 [55] 일어났느냐 하는 문제는 자연이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에 대한 질문과 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자들이 변화의 일반적인 과정이나 메커니즘과 같은 의미에서의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연속성이나 공통 후손이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진화는 그것만으로도 다양한 종류의 현존 자료들을 (화석의 변화, 상동, 생물지리학적 분포 등등) 설명하기 때문에 잘 확립된 과학 이론인 것으로 [56] 강력히 주장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공통 후손과 자연 선택의 논리적인 독립성을 대륙 이동설과 판구조론의 논리적인 독립성에 비유해 왔다. 지리학적 상황과 생물학적 상황에서 모두 왜 우리가 현재와 같은 많은 사실들을 관찰하는지를 설명하는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이론들과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전자의 순전히 역사적인 설명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후자의 법칙론적이거나[57] 메커니즘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공통 후손은 이 이론이 요구하는 변화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를 아직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실을 잘 설명한다.

이 예는 왜 역사적 설명들이 법칙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58] 더 중요한 것은 이 예는 또한 왜 루즈의 구획 기준이 루즈가 보호하고자 했던 바로 그 다윈주의 자체에 치명적인지도 설명해 준다. 「종의 기원」의 논증의 여지가 있는 핵심적인 논제인 공통 후손은 자연 법칙에 의해서 설명되지 않는다. 공통 후손은 사실이라면 현재 관찰되는 다양한 자료를 설명하게 될 역사적 사건들의 하나의 가설적인 패턴을 가정함으로써 설명하고 있다. 다윈 자신이 공통 후손을 다양한 생물학적 관찰에 대한 ‘베라 카우사’(vera causa) 즉 참된 원인 내지는 설명으로 언급하였다. 일반적인 역사적 설명들이 그렇듯이 공통후손에 대한 다윈의 역사적인 논증에서 가정된 과거의 원인이 되는 사건들이 (또는 그와 관련된 패턴들이) 주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법칙은 그렇지 않다.[60]

이 점에서 진화론적인 구획 주의자들은 선행 사건들에게 설명의 기능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과학적 설명이 초자연적 사건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과거의 사건들을 가정하는 것은 좋지만 초자연적인 사건을 가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첫 번째 것은 자연의 법칙들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두지만, 두 번째 것은 그렇지 않고 그래서 과학의 범위를 넘어선 곳에 있다. 루즈와 리처드 르윈튼(Richard Lewontin)이 주장한 것처럼 기적적인 사건은 그들이 자연의 법칙을 위반하거나 모순되기 때문에 비과학적이고 그래서 과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61]

아이작 뉴턴(Issac Newton)과 로버트 보일(Robert Boyle)과 같은 과거 수많은 훌륭한 과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현대의 철학자들은 이 점에 대해서 루즈와 르윈튼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신이든 인간이든 간에 작인의 활동은 자연 법칙을 파괴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 해당되는 자연 법칙의 초기값과 경계값만을 바꿀 뿐이다.[62] 그러나 이 문제는 잠시동안 남겨두어야만 한다. 지금은 구획 기준이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구획주의자들은 “자연 법칙을 통해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설계를 비과학인 것으로 거절하지 않는다. 이제 구획주의자들은 지적설계가 “자연적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비과학인 것으로 거절하고 있다. 한 이론이 과학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연주의적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왜 그래야 하는가? 분명히 문제의 핵심은 작인이나 지적 설계와 같은 비자연주의적인 사건을 도입하는 이론을 과학이 아닌 것으로 만들 독립적이면서 형이상학적으로 중립적인 기반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이론이 자연주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과학이 아닌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문제의 핵심을 처음부터 가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론 지적설계는 전적으로 자연주의적인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비과학적인 것이 되는가? 이런 주장을 위한 순환논리적이 아닌 근거는 무엇인가? 독립적인 방법에 대한 어떤 기준이 비자연주의적인 설명이 더 열등한 과학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법칙을 통해서 설명해야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관찰불가능성과 검증가능성: 이 지점에서 진화론적 구획주의자들은 또 다른 구획 기준을 제시해야만 한다. 대화를 통해서나 인쇄물을 통해서나 자주 발견되는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기적은 경험적으로 연구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다.[63] 설계는 기적적인 사건을 도입한다. 그래서 설계는 비과학적이다. 게다가, 기적적이 사건은 경험적으로 연구할 수 없기 때문에, 검증될 수도 없다.[64] 과학 이론은 검증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설계는 다시 한 번 과학이 아니게 된다.” 예를 들어 분자 생물학자인 프레드 그린넬(Fred Grinnell)에 따르면 지적 설계는 과학적 개념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로 그는 어떤 것이 “측정될 수 없거나, 셀 수 없거나 사진 찍을 수 없다면 과학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65] 제랄드 스쿠그(Gerald Skoog)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생명이 지적인 원인에 의해서 창조된 설계의 결과라는 주장은 검증될 수 없고 과학의 영역 안에 있지 않다”[66] 이런 논리는 1993년에 샌 프란시스코 주립 대학(SFSU)이 딘 게년(Dean Kenyon) 교수를 강의실에서 몰아내는 일에 대한 정당화 논리로 사용했던 것이다. 케년은 화학 진화에 대한 수년간의 연구 끝에 지적 설계를 받아들인 생물리학자이다. SFSU에 있는 그의 비판자들 중 일부는 그의 이론이 검증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를 참고하기 때문에, 또는 유진 스코트(Eugenie Scott)가 말한 것처럼 “창조론자들이 “신 측정기”를 발명한다면 기적적인 간섭도 검증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능한 신을 시험관 속에 넣을 수 없고, 초자연적인 설명을 사용할 수 없기”[67] 때문에 과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의 핵심은 설계하는 지성이 가진 관찰할 수 없다는 특징이 이론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래서 설계 이론을 검증할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획 기준은 여기에서 “관찰가능성과 검증가능성”에 결합된다. 두 가지 모두 과학적 위상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사용되고 있고 하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관측불가능성) 다른 하나의 (검증가능성) 가능성도 배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공식의 두 부분 모두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첫 번째로 관찰가능성과 검증가능성은 두 가지 전부 다 과학적 위상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론 물리학에서 보여주는 많은 예처럼 관찰가능성은 적어도 과학적 지위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실재(entity)와 사건들은 현실적으로 내지는 원리적으로 직접 관찰할 수도 없고 연구될 수도 없다. 이런 실재에 대한 가정 그 자체로 과학적 탐구의 산물이다. 사실 많은 과학들이 관찰 가능한 것으로부터 관찰 불가능한 것을 추론하는 일에 직접 도전하고 있다. 힘, 장, 원자, 쿼크, 과거의 사건들, 정신 상태, 지표 밑의 지질 특징, 분자 생물학적 구조 등. 이 모든 것들이 관찰 가능한 현상들로부터 추론된 관찰 불가능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말할 것도 없이 과학적 탐구의 결과들이다.

두 번째로 관찰불가능성이 검증가능성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과학 안에서 관찰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주장들이 관찰 가능한 현상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검증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해 관찰 불가능한 실재의 존재는 주어진 가설상의 실재가 (즉, 관찰 불가능한 것이) 실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발생하는 설명력을 검증해 냄으로써 확립된다. 이런 과정은 보통 주어진 관찰 불가능한 실재의 확립되거나 이론상의 개연적 인과적 힘에 대한 어떤 주장을 포함한다. 어떤 경우에도 많은 과학적 이론들은 경쟁하는 가설들 사이에서 자신의 설명력을 비교해 봄으로써 간접적으로 평가되어야만 한다.

유전 분자의 구조를 해명하기 위한 경쟁에서 이중 나선과 삼중 나선이 모두 고려되었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x-선 결정학을 통해서 만들어낸 사진 영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68] 어떤 구조도 관찰될 수 없었지만 (심지어 현미경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라도) 삼중 나선이 설명할 수 없던 다른 관찰들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왓슨(Watson)과 크릭(Crick)의 이중 나선이 결국에 승리하게 되었다. 하나의 관찰 불가능한 구조, 즉 이중 나선에 대한 추론은 다양한 관련된 관찰에 비춰볼 때 경쟁자보다 더 큰 설명력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판정되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졌다. 설명에서 관찰할 수 없는 실재의 존재를 가정하고 있는, 최선의 설명을 추론하기 위한 이런 시도는 이미 과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물리학, 지질학, 지구물리학, 분자 생물학, 유전학, 물리 화학, 우주론, 심리학, 그리고 물론 진화생물학과 같은 많은 분야에서 자주 일어난다.

이런 분야에서의 관찰 불가능한 것들의 유행은 설계를 과학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관찰가능성이라는 기준을 사용하기를 원하는, 상속을 방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을 일으킨다. 다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주장이 갖고 있는 명백하게 반증가능하지 않은 본성을 변호하기 위해서 다윈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에게 다윈주의자들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많은 창조적인 과정들은 너무 느리게 일어나서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왔다. 더 나아가 진화 이론의 핵심에 내포된 역사 과학적 특성은---다시 말해 현존하는 종들은 공통 조상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현재의 설계 이론과 매우 유사한 인식론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설계에서 가설적인 과거의 설계자의 활동이 관찰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윈의 생명의 나무의 가지의 각 지점을 표면상으로는 차지하고 있는 전이 단계의 생명 형태들은 관찰할 수 없다.[69] 전이 단계의 생명 형태들은 현재의 생물 데이터를 진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이론적인 가정이다. 관찰 불가능한 설계하는 작인은 마찬가지로 생명 속에 들어 있는 정보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과 같은 생명의 특징들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된 것이다. 다윈주의적인 전이 단계, 신다윈주의적인 돌연변이 사건, 단속평형이론의 “빠른 분화” 사건, 과거의 설계하는 지성의 활동. 이들 중 직접적으로 관찰 가능한 것은 없다. 직접적인 관찰가능성에 비춰볼 때 이들 이론적인 실재들 각각은 동등한 위상을 갖고 있다.

각각은 검증가능성에 비춰볼 때도 대체로 동등한 위상을 갖고 있다. 기원 이론들은 일반적으로 우주의 현재의 특성을 일으키기 위해서 (또는 우주 그 자체가 생기기 위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주장을 해야한다. 그들은 현재의 단서나 증거들로부터 관찰할 수 없는 인과적인 사건들을 재구성해야만 한다. 그래서 직접적인 검증이나 인과관계의 반복된 관찰에 근거하는 실증주의적 검증 방법은 다윈도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기원 이론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다윈이 비록 관찰된 원인을 가정하는 이론을 선호하는 19세기의 방법론적 원리인 ‘참된 원인’(vera causa)이라는 기준을 창조론자들이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자기 자신의 이론이 견고한 실증주의적 표준에 적용되기를 애타게 기다렸었다. 다윈은 조셉 후커(Joseph Hooker)에게 다음과 같이 불평하였다. “나는 내가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변하는 직접적인 증거를 보여준 척 하지 않았지만 너무도 많은 현상들이 묶일 수 있고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관점의 핵심은 옳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이제 정말로 실증이 난다.”[70] (강조는 추가됨)

실제로 다윈은 직접 검증하는 방식은 기원 이론을 평가하는 데에는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서 핵심적인 검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다. 다윈은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가설(공통 조상)은...이 이론이 유기체의 지질학적 연속성, 과거와 현재의 생물 분포, 생물들 사이의 상호 친화성 및 상동과 같은 여러 개의 크고 독립적인 여러 종류의 사실들을 설명하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통해서...검증되어야만 한다.”[71] 다윈에게 과거의 사건과 과정에 대한 관찰불가능성은 기원 이론이 검증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이런 이론들은 다양한 관련 자료나 “여러 종료의 사실들”에 비춰볼 때의 그 이론의 설명력에 의해서 평가하는 간접적 방법을 통해 가치를 매길 수도 검사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왜 설계자의 관찰불가능성이 가정의 검증가능성을 필연적으로 배제하게 되는지를 알기가 어려워지게 된다. 다윈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상속에 대한 다윈의 방법론적 변호의 기반에는 검증가능한 설계 이론의 가능성도 내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생물들 사이의 관찰할 수 없는 계통학적 연결에서와 마찬가지로 관찰할 수 없는 작인의 과거의 활동은 현재에서 경험적인 결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윈 자신이 자신과 경쟁하는 창조론자들의 이론의 경험적인 부당성을 밝히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설계의 검증가능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였다. 다윈은 많은 창조론자들의 설명을 원리적으로 비과학적인 것으로 거부하였지만, 그는 다른 이론들은 생물학의 특정한 사실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려 시도하였다.[72] 그래서 때때로 그는 창조론을 설명력이 부족한 진지한 과학적 경쟁자로 다루기도 하였다. 다른 경우에 그는 창조론을 정의에 의해 비과학적인 것으로 무시하였지만 말이다.

최근에 진화론적 구획주의자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모순을 일으킨다. 앞에서 인용한 제랄드 스쿠그의 인용문이 (“생명이 지적인 원인에 의해서 창조된 설계의 결과라는 주장은 검증될 수 없고 과학의 영역 안에 있지 않다”) 나온 참고문헌에는 같은 문단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자연 세계에 대한 관찰은 또한 지적 설계 이론으로 불리는 그런 의견들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든다.”[73] 그러나 어떤 것이 원리적으로 검증불가능하면서 동시에 경험적인 관찰들을 통해서 반박될 수는 없다.

앞의 논의는 진화론의 수정된 상속이나 지적 설계는 모두 궁극적으로 검증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대신에 두 이론들은 다윈이 상속에 대해서 설명한 것처럼 경쟁자들의 설명력과 자신들의 설명력을 비교해 보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 같다. 창조론자에 호의적이지 않은 필립 키처(Philip Kitcher)는 이론에서 관찰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 심지어는 관찰할 수 없는 설계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이론들이 경험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는 “관찰할 수 없는 창조자를 가정한다고 해서 관찰할 수 없는 입자를 가정하는 것 보다 더 비과학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제안의 성격과 그것들이 표현되고 방어되는 방법이다.”[74]

그래서 설계와 상속을 구체적인 구획 기준에 맞출 수 있는지를 평가해 보면 뜻하지 않은 동등성이 밝혀지게 된다. 검증될 수 있거나 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지고자 한다면 기원 이론에 필수적인 이론적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관찰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보편적이고 공정하게 적용된다면 설계뿐만 아니라 상속까지도 과학에서 배제되도록 만들게 될 것이다. 관찰 가능성과 검증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실증주의적 의미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화론이 명백하게 맞출 수가 없는 올바른 과학에 대한 정의를 선언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검증가능성에 대한 좀 더 완화된 기준을 허용한다면 설계를 배제하고자 했던 원래의 목적은 무너져 버린다. 이처럼 설계에 반대하기 위해 구획 기준을 적용하려는 구체적인 시도를 분석해 보면 설계와 상속 사이의 방법론적 동등성을 보여주게 된다.

다른 구획 기준들: 여기에서는 앞에서 열거한 (d)에서 (h)까지의 다른 구획 기준 각각을 분석해 보면 설계와 상속 사이의 유사한 동등성이 도출될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제1부에서 언급한 문제에 더하여 반증가능성은 기원 문제에 적용하기에는 더욱 문제가 많은 표준인 것으로 드러난다. 예측의 경우에도 그렇다. 기원 이론은 반드시 사후에 재구성이 이뤄져야만 한다. 이 이론들은 그래서 어떤 강한 의미에서의 예측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주어진 이론이 사실일 때 찾을 수 있는, 기원 이론들이 만들어 내는 증거는 무엇인가’와 같은 다소 인공적인 ‘예측’은 반증하기가 유별나게 어렵다. 왜냐하면 진화론적인 고생물학자들이 종종 설명하는 것처럼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기 때문이다.[75]

마찬가지로 과학적 이론이 인과적 메커니즘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요구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형이상학적으로 중립적인 구획 기준으로서 실패한다. 먼저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과학에서 많은 이론들은 메커니즘적인 이론이 아니다. 자연에서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해명하는 많은 이론들은 왜 그런 현상이 메커니즘적으로 일어나는지를 설명하지도 않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뉴턴의 만유 인력 이론은 뉴턴이 자신의 법칙이 설명한 인력의 정규적인 패턴에 대한 메커니즘적 원인을 가정하는데 실패했다고 해서---실제로는 거절했다고 해서---과학 이론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많은 역사적인 이론들은 어떻게 이런 이론들이 증언해 주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어떠한 메커니즘적인 이론이 없이도 스스로 존재할 수도 있다. 공통 조상 이론은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이 어떻게 상속의 과정에서의 전이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완전히 적합한 메커니즘에 대해서 동의를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과학 이론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대륙 이동설이 판구조론이 도래한 이후에서야 과학 이론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별로 정당성을 얻지 못할 것이다. 판구조론이 제공하는 메커니즘이 분명히 대륙 이동성을 좀 더 설득력 있는 이론이 되도록 도와준 것은 사실이지만,[76]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서 대륙 이동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이 (1) 대륙 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거나 이론화하는데 또는 (2) 대륙 이동설을 과학으로 여기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과적인 메커니즘들이 모든 과학 영역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기원 연구가 이런 영역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도 있다. 또한 기원 이론들은 반드시 인과적 설명을 제공하려 시도하기 때문에, 그리고 설계는 틀림없이 생명의 기원이나 주된 계통학적 집단을 설명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메커니즘을 제공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은 적법한 기원 이론으로서의 자격이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증 또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먼저 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설계 이론의 과학적 지위를 박탈당하는 일 없이 그의 이론이 어떻게 생명이 기원했는지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현재의 단서와 증거는 어떤 과학자들이 정확히 어떻게 지성이 물질에 영향을 발휘했는지를 알지 못하면서도 지성이 생명의 설계에서 원인을 제공했다는 확신을 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내려지는 올바른 결론은 설계는 완전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지 비과학적이라는 것이 (또는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불완전성은 설계이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생물학적 진화와 화학 진화 이론 역시 완전하고 적법한 인과적 시나리오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만을 제공해 왔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원에 대한 과학 이론들은 어떤 식으로든 인과적으로 불완전하거나 부적합하다.

기원 이론의 과학적 위상에 필수적인 것으로 메커니즘을 주장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된다. 특히 이런 주장에서는 과학적으로 받아들일만한 모든 원인들은 메커니즘적 원인뿐이라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은 채로 단순히 가정하고 있다. 과학에서의 모든 인과적 설명이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든 인과적 이론들은 물질적인 실재만을 (혹은 물질에 해당하는 에너지만을) 참고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바로 자연주의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주의의 방법론적 필연성 자체가 표면적으로 가장 강제적인 구획 논증을 이루게 되기 때문에 자연주의만 참고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 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과학 이론들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문장이 하나의 구획 논증이 되게 되면, 이런 요구는 명백하게 순환논증이 된다. 구획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과학은 자연주의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과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과학은 자연주의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주의적이지 않으면 구획 표준을---특히 모든 과학 이론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표준을---위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증은 명백히 창조적 지성, 마음, 정신적 활동, 신적 활동 내지는 지적 설계와 같은 추정상의 비물질적 실재에 의존하는 설명보다 기원에 대한 물질주의적인 인과적 설명이 더 선호되어야 하는 독립적인, 다시 말해 형이상학적으로 중립적인 이유가 존재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의 결론을 처음부터 가정하고 있다. 철학적 자연주의자들은 앞에 열거한 것들을 사실로 여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분명히 이런 실재가 일단 존재한다면 인과적 선행자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핵심적인 문제로 되돌아가자. 과학적 기원 이론에서 메커니즘적이지 않은 원인을 (예를 들어 정신이나 지성) 가정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순환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메커니즘적이지 않은 가정에 대한 경험적인 정당화가 무엇이든 간에 이런 실재는 고려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과학을 배타적으로 자연주의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것을 정당화 시켜주지 못한다. 이론적으로는 두 가지 가능한 형태의 원인이 존재한다. 하나는 메커니즘이고 하나는 지성이다. 구획주의자는 여전히 후자의 형태를 배제하는 순환적이지 않은 이유를 제공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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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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