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설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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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02: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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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철학에 반대하는 지성운동으로서의 지적설계
지적 설계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활동 중 하나는 바로 자연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적 설계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Phillip E. Johnson은 법학자인 자신이 이러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는 자연주의적인 가정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으며, 그러한 세계관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980년대에 아칸소(Arkansas) 주와 루이지애나(Louisiana) 주에서 창조과학을 진화과학과 동등하게 다뤄야 한다는 법률이 통과되었을 때, 미국 시민 자유 연맹(ACLU)에서 위헌 소송을 제기하면서 핵심 이슈로 떠올랐던 것이 창조과학이 종교인지 과학인지를 판별하는 것이었다. 이 소송에서의 결론은 창조과학은 종교이고 따라서 창조과학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종교와 국가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는 미국 헌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창조과학과 진화과학을 같은 시간 동안 가르쳐야한다는 아칸소의 동등 시간 법령은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종교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받아들이는 주관적인 신념이고 과학은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객관적인 지식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가르쳐질 수는 없지만, 과학은 공립학교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로서 가르쳐질 수 있고, 그러한 과학적 지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강요하는 것은 무지와 무식으로부터 계몽한다는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것들에 대한 최신의 사례들이 필립 존슨의 저서인 "다윈주의 허물기"에 보면 잘 나와 있다.)

물론 특정 종교를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그러나 주관적인 신념이 배제된 완전하게 객관적인 지식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현대의 과학철학에서도 과학을 완전하게 객관적인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론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관찰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이나, 이론이 만들어지는 어떤 정해진 과정이 있어서 그에 따라서 이론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개개인의 천재적인 기발한 직관에 의해서 수많은 이론이 나왔다는 것이나, 어떠한 이론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과학의 여론의 동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등의 사실들을 볼 때 과학마저도 완전하게 객관적인 지식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여기서 극단적인 상대주의를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분명한 것은 과학이라는 활동 자체도 과학자들의 주관이나 세계관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다 분명히 보여주는예를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자들의 탐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윈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어떻게 해서든) 탄생한 이후의 일들은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도 생명이 발생하기 이전에 생명이 처음에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1953년에 밀러가 시험관 속에서 아미노산과 같은 생명의 필수 물질들을, 가정된 지구의 원시 대기 속에서 합성/추출해 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답변이 조만간 나올 것이라는 희망에 젖어 있었지만, 그러나 생명의 기원문제는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과학자들은 생명은 자연적으로 발생했음에 틀림이 없다고 믿고 있는데, 지적 설계 운동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William Dembski는 이러한 과학자들의 태도를 과거의 연금술과 비교하고 있다.

16세기 무렵에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납을 금으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연금술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연금술사들을 별볼일 없는 인물이거나, 허황된 것들만을 좇아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연금술사들은 당시에 유행하는 최상의 철학인 신플라톤주의를 근거로 해서 연금술을 믿었던 것이고, 이러한 연금술사들 중에는 우리에게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서 잘 알려진 Isaac Newton과 같은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Newton이 남긴 연구 노트들을 보면, 그 분량으로 볼 때 그가 역학이나 미적분에 대한 연구보다도 연금술에 대한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Newton과 같이 훌륭한 과학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조차도 오늘날 봤을 때는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도구들을 가지고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던 것일까? 그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연금술은 신플라톤주의로부터 바로 도출되어 나오는 하나의 따름정리(corollary)였기 때문이었다.

신플라톤주의는 모든 실재가 신으로부터 발산되어 나와서 궁극적으로는 다시 신에게로 되돌아가는 "존재의 거대한 고리"(a great chain of being)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존재의 거대한 고리"는 완전한 계층을 이루고 있어서, 그 고리에 포함된 모든 요소들은 서로 다른 고유의 독특한 서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납은 금보다 흔한 금속이므로 그 고리에서 금보다 더 낮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모든 것들은 신에게로 되돌아 가야하고 납도 궁극적으로는 신에게로 되돌아 가야한다. 따라서 그러한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납은 반드시 금의 계층을 통과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신에게로 가는 납의 여정에는 납이 금으로 되는 자연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연금술사들은 적절한 재료를 섞어서 적절한 자극을 준다면 납을 금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고, 단 한 명의 연금술사도 납을 금으로 바꾸는 데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학문을 지배했던 신플라톤주의가 그러한 것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확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자연주의자들이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해서, 단 한 번도 실험실에서 자연주의적인 방식으로 생명을 만들어 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군다나 현재 긍정적인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연주의적인 방식으로 생명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Dembski는 그런 사람들은 과거에 연금술사들과 동일한 논리에서 행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증거를 요구할 때에는, 현재에 증거가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것은 잘못이라고 오히려 반박하곤 한다. 물론 증거가 없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과학을 함에 있어서 좋지 못한 태도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설계"라는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했을때, 그들은 자신들에게 대안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설계는 답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어느 쪽이 문제인지는 분명해 진다.

Johnson은 『심판대 위의 다윈』에서 자연선택이 "철학적인 필연"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즉, 자연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에 대해서 고려할 때에 돌연변이-자연선택이라는 진화 메커니즘 외에는 다른 생각할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증거에 상관없이 진화 메커니즘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992년에 열린 미국 남감리교대학에서 열린 컨퍼런스의 주제도 "다윈주의 : 과학인가 철학인가?" 였고, 이 세미나의 주된 이야기들도 다윈주의의 철학적인 가정의 의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저명한 생물철학자인 Michael Ruse 가 이 컨퍼런스에서 Phillip Johnson과 대화를 하면서 다윈주의가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철학적인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다. ( Michael Ruse 가 아칸소주 법령에 대한 위헌 소송에 증인으로 나와서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닌 이유로서 제시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창조과학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가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커다란 입장 변화인지를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거의 모든 지적 설계 운동가들은 한 목소리로 자연주의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는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마저도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유신론적 진화론자들 중에서는 지적 설계 운동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지적설계의 과학적 위상 (S.C.Meyer): 서문 및 1부 구획논증의 일반적인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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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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