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설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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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16: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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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설계의 오해받기 쉬운 점들 (김창환)


지적설계의 오해받기 쉬운 점들

- 박희주 박사님께 대한 답변 -



도입

2000년 10월 3일 '역사에서 배운다Lesson from History'라는 주제로 제3회 NOAH 학술모임이 열렸다. 여기에서 박희주 박사님께서 "미국 창조론 운동의 최근 동향 -지적설계운동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셨다. 그 내용은 네 가지로 요약되는데 '1. 지적설계운동의 역사적 배경,' '2. 지적설계운동의 전개,' '3. 지적설계이론이란?,' 그리고 '4. ID 이론의 문제'가 그것들이다. 그 네 번째 부분에서 박박사님은 지적설계의 문제점 세 가지를 제기하였다. 이 글은 그때 제기된 문제점에 대한 답변으로 씌여진 것이다.

지적설계가 한국에서 오해되는 일이 흔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에 대한 정보가 그다지 풍부하지 못하므로 지적설계에 대한 이해의 상당부분이 추측에 의해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희주 박사님의 경우는 확실히 의외였다. 강연의 앞부분에서 그는 지적설계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과 지적설계의 핵심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문제점들을 제기하면서 그 이해가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또한 보여주었다. 지적설계에 대한 가치있는 비판은 매우 드물다. 그것은 주로 비판자들이 지적설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박박사님의 문제제기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그의 문제제기나 나의 답변 중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깝든지에 상관없이 이러한 문답은 지적설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줄 것임에 틀림없다.


지적 설계자가 개입한 과정

첫 번째로 제기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ID의 존재는 어떻게 가능한가? Intelligent Designer의 개입에 의해.

- 그렇다면 Intelligent Designer가 개입한 과정은 과학적으로 탐구가능한가?1)

확실히 쉽게 생기는 의문점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의 직접적 창조행위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적 설계자가 개입한 과정은 과학적으로 탐구가능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만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가능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지적 설계 이론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지적 설계는 지적 설계자가 개입한 과정에 대해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을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면 흥미롭겠지만 그 탐구가 가능하느냐 하는 문제는 지적 설계 이론이 성립하느냐 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다음과 같은 예를 한번 생각해보자.

당신은 프린터 용지에 0과 1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출력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11011101111101111111011111111111011111111111110111111111111111110………'
그리고 당신은 0과 0 사이의 1의 개수가 차례로 2, 3, 5, 7, 11, 13, 17, … 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소수(prime number)를 차례로 나열한 것임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당신은 이 0과 1의 배열이 난수발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지성이 개입하였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당신은 정확히 어떤 과정을 통하여 이 배열이 형성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사람이 직접 0과 1을 타이핑하여 출력한 것일 수도 있고, 2, 3, 5 등을 타이핑하고 그것을 0과 1의 배열로 변환시켜 출력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작성한 소수를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으며 인터넷에 존재하는 어떤 배열을 그대로 다운로드하여 출력한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은 적어도 이 배열이 볼펜으로 종이에 직접 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볼펜으로 종이에 쓰여지지 않았다고 결론내리는 추론과 지성이 개입하였다고 결론내리는 추론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것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또한 빅뱅이론의 경우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빅뱅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 탐구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빅뱅이론이 성립되는 데에 무슨 문제가 되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지적 설계자가 개입한 과정을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없다 하더라도 지적 설계의 산물에 남아있는 설계의 표지, 또는 정보에 대해 연구하고 이론을 세우는 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다.


지적 설계는 인간중심적인가?

세 번째로 제기된 문제점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 Intelligence는 human intelligence가 모델. 이러한 의미에서 ID의 intelligence는 인간중심적(anthropocentric).

- 자연에서의 intelligence의 발견은 human intelligence와의 analogy로부터 유추. ID intelligence 개념의 궁극적 기반은 human intelligence. human intelligence를 어떻게 이론화하느냐가 관건. human intelligence와 animal intelligence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가?

- 인간이 집을 짓는 것은 artificial한 행위. 그 결과물은 artefact. 벌이나 벌집을 짓는 행위는 artificial 혹은 natural한 행위? 벌집은 인공물 혹은 자연물? 하등동물로 내려갈수록 보다 자연적? 고등동물로 올라갈수록 보다 인공적?2)
여기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 먼저 발견의 논리와 정당화의 논리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학자가 어떤 명제를 생각해냈다. 그 명제를 생각해낸 과정은 다소의 비약과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이 생각해낸 명제를 증명하는 엄밀한 증명을 고안해내었다. 이 경우 말하자면 명제를 생각해낸 과정이 발견의 논리에 해당하고, 증명이 정당화의 논리에 해당한다. 만일 누군가가 이 명제가 참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증명의 문제점을 비판해야지 발견의 논리를 비판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지적 설계의 지성이 인간지성을 모델로 하기 때문에 인간중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발견의 논리에 관한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중심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정당화의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적 설계는 인간중심적인 이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과학이론의 지위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며, 나도 그런 이론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중심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정당화의 논리가 존재한다. 이것이 지적 설계 이론의 핵심주장이다. 즉, 지적 설계는 경험적으로 탐지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정당화의 논리는 Dembski의 책 『Design Inference』에서 엄밀하게 제시되었다. 그 논리에서는 인간중심성 같은 것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지성의 발견이 인간 지성과의 analogy로부터 유추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오해다. 『Design Inference』에서 design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3)
즉, 우연과 필연으로 생길 수 없는 일을 설계에 의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지적 설계 개념은 인간 지성의 존재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지적 설계는 인간 지성과 관계없이 정의되며 그 이후에 인간 지성에 의한 것들이 지적 설계에 해당하는지 검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당혹스럽겠지만, 인간의 행동 중 상당부분에서 지적 설계가 탐지되지 않을 수 있다. (추측건대 이와 관련된 농담이 나올 것이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인간 지성과 동물 지성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한 질문은 의미가 없어진다. 실제로 Dembski는 『Design Inference』에서 쥐가 미로 찾는 법을 배웠는지 시험하는 심리학자의 예를 든다.4) 즉, 대상이 인간이냐 동물이냐 또는 초월적 존재냐에 관계없이 주어진 기준에 의해서 지적 설계냐 아니냐를 따져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제기된 문제

세 번째 문제점을 먼저 다룬 것은 두 번째로 제기된 문제에 대한 답변이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두 번째로 제기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ID 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과학관은 다분히 실증주의에 가까운 것. 과학은 가장 신뢰할만한 학문이며 reality를 define. Johnson은 이러한 실증주의적 과학관을 비판하지는 않음. 과학은 진리이나 현재의 과학은 잘못된 자연주의적 과학. (초월적 실재를 자연현상의 설명에서 철저히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자연주의적.) 자연현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ID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초월적 Intelligence를 전제해야함. 이러한 과학을 유신론적 과학이라고 명명. 이러한 유신론적 과학은 실재를 담아낸다는 의미에서 실증적. (과학이론의 잠정적인 성격에 대한 강조는 찾아보기 힘듬.)

- 자연주의를 자연적인 요인을 통한 자연현상의 설명으로 규정할 경우 ID 이론은 자연주의를 어느 정도 선까지 부정하는가? 이러한 자연주의마저 전면적으로 부정할 경우 과학은 아예 불가능.

- 방법론적 자연주의 : 과학은 진리다. 과학은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설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진리는 자연적인 요인만을 포함하고 있다.

- 과학은 자연의 규칙적인 현상을 묘사하는데 국한된 유용한 도구이다. 궁극적인 기원 혹은 궁극적인 원인자(ultimate cause), 자연현상을 통제하는 주체에 대한 질문들은 모두 과학의 영역 밖이다. 따라서 과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닌 유용한 도구일 따름이다.

- 광범위하게 유포된 실증주의적 과학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5)
여기서는 문제제기된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간단치가 않다. 먼저 지적 설계 이론이 실증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자연주의를 자연적인 요인을 통한 자연현상의 설명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자연주의를 부정할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그러고 나서 과학은 유용한 도구이며 진리가 아니고 궁극적인 질문에 답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요컨대 자연주의가 초월적 실재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연주의를 채용한 과학이 진리가 아니라 유용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다음 몇 절을 할애해서 쓰겠지만 그것들을 요약하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지적 설계는 자연적인 요인을 통한 자연현상의 설명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지적 설계는 실증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자연주의를 반대하는 이유는,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도구로서도 그다지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문제제기에 특별히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셋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것은 관계 없는 이야기였으며, 세 번째 것은 지적 설계의 유추 과정에 대한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것은 보다 근본적이고 미묘한 것이어서 이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지적 설계라는 비전의 여러 측면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적 설계가 반대하는 자연주의

일단 문제제기된 내용 중 다음 일부만을 고려해보자.
- 자연주의를 자연적인 요인을 통한 자연현상의 설명으로 규정할 경우 ID 이론은 자연주의를 어느 정도 선까지 부정하는가? 이러한 자연주의마저 전면적으로 부정할 경우 과학은 아예 불가능.
지적 설계 이론은 자연주의를 거부한다. 그러나 자연적인 요인을 통한 자연현상의 설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적 설계가 부정하는 것은 자연현상은 반드시 자연적인 요인만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자연주의이다. 즉 지적 설계 이론에서 보는 관점에 따르면 자연현상은 경우에 따라서 자연적인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자연적인 요인만으로 잘 설명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지적 설계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자연적인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자연적인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현상은 자연적인 요인만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태도를 지적 설계는 거부하는 것이다.

지적 설계는 자연적인 요인만으로 설명가능한 경우를 침해하지는 않는다. Dembski가 제안한 "설명을 찾아내는 여과기"(explanatory filter)6)라는 개념을 살펴보면 이를 명백히 알 수 있다. 즉, '설명의 우선 순위는 차례로 규칙성, 우연, 설계의 순서이다. 규칙성일 수도 있고 설계일 수도 있는 것은 규칙성으로, 우연일 수도 있고 설계일 수도 있는 것은 우연으로 설명하는 것이 원칙이다'7)는 것이다.


실증주의 vs 연구 프로그램

Dembski는 이렇게 말했다. "지적 설계는 하나의 과학 연구 프로그램이며, 학문 영역에서 자연주의에 대한 도전이며, 하나님의 활동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8) Dembski뿐만 아니라 지적 설계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적 설계는 연구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지적 설계가 전제하고 있는 과학관은 실증주의라기 보다는 라카토슈의 연구 프로그램에 가까운 것이다. 실증주의가 지지되기 어려운 과학관이라는 것은 현재에는 거의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이것을 지적 설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 그들 중에는 과학철학 전공자들도 있다 - 몰랐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관은 라카토슈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라카토슈에 따르면 연구 프로그램은 그것이 전진적인지 또는 퇴행적인지 판단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채택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적 설계 운동가들의 주장은 지적 설계의 연구 프로그램이 자연주의에 기반한 연구 프로그램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이다. 과학철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적 설계에서 초월적 지적 설계자를 가정하려고 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편이 설명을 잘 할 수 있는 더 좋은 연구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Dembski의 design inference나 Behe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실증주의적인 의미에서 지적 설계를 실제로 입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지적 설계라는 연구 프로그램이 잘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적 설계는 실증주의를 전제하고 있지 않다.


필립 존슨과 유신론적 실재론

박박사님은 두 번째 문제제기를 하면서 필립 존슨을 거명하고 있다. 지적 설계가 실증주의를 전제하고 있다고 하신 데에는 존슨의 의견을 참고하신 듯 하다.

먼저 지적 설계 운동 내에서의 존슨의 위치에 대해서 먼저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존슨의 의견을 지적 설계 운동 전체의 의견으로 받아들여도 좋은가 하는 것이다. 존슨은 분명히 지적 설계 운동의 리더다. 어쩌면 정신적 지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적 설계의 비전을 제시했고 그 핵심 내용을 힘있게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는 법학자다. 그가 전공하지 않은 영역에서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그를 너무 믿지 않는 것이 좋다. 법이나 재판과 관련된 사항에서는 - 창조론과 관련된 재판도 많다 - 그를 믿어도 좋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가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한 위대한 대통령이 나타나서 뛰어난 비전을 제시하고 위기를 극복했다고 하자. 그가 제시한 비전에 대해 존경심을 품을 수 있겠지만 그에게 어떤 구체적인 경제지표에 대한 세부사항을 물어보았다면 틀린 대답이 나오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 질문은 그 아래 있는 경제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존슨은 매우 뛰어난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지적 설계의 비전에 관해 알고 싶으면 존슨의 글을 읽는 것이 좋지만, 세부사항에 대해 알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책을 보는 것이 좋다. 그렇기는 해도 박사님께서 참고하신 듯한 존슨의 '유신론적 실재론'은 사실 세부사항이라기 보다는 비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9)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다만 그 의견을 지적 설계의 공식적인 과학철학적 입장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용어가 『다윈주의 허물기』에서는 '유신론적 현실주의'10), 『위기에 처한 이성』에서는 '유신론적 실재론'11)으로 번역된 것 같다. 이는 아마도 'theistic realism'의 역어인 듯 하다. 여기서는 '유신론적 실재론'을 사용하였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아직은 별 내용이 없고 앞으로 채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존슨이 이것을 실증주의로 이해하는 것 같지 않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유신론적 실재론을 지적 프로그램12)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또한 유신론적 실재론에 대해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창조와 진화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도하는 발언이다. 이런 표현은 그 갈등이 사고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관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13)

박박사님은 '유신론적 과학은 실재를 담아낸다는 의미에서 실증적'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이 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는 마치 실증주의와 반실재론 이외에는 어떠한 대안도 없으며 누구든지 이 둘 중의 하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대안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반드시 발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어떤 사고방식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기 때문에 모더니즘이라고 결론짓는다면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더니즘은 이미 그 기반이 무너졌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내부적 취약성 때문에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정말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두 거부할 만한 충분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은 그리스도인 학자들에게서 나타날 지도 모르겠다.

프란시스 쉐퍼는 합리주의와 합리성을 구분한다.
'좀더 넓고 포괄적인 뜻의 인본주의는, 사람이 전적으로 자신으로부터 합리적으로 체계를 세우려고 하고, 오직 사람을 자신의 통합점(integration point)으로 삼아 모든 지식과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려고 하는 체계이다. 또한 우리는 좀더 넓은 의미의 인본주의와 같은 뜻인 합리주의(rationalism)라는 말과 합리적(rational)이라는 말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이성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혹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성에 대한 사람의 열망은 타당하다는 것이다.'14)
이런 의미에서 보면 모더니즘은 인본주의적이며 합리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인본주의적이며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은 인본주의적이지 않으면서 합리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존슨의 '유신론적 실재론'은, 내가 보기에, 이러한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가치있는 탐색이다. 그것은 아직 지어져 가는 중이고 채워져야 할 많은 세부사항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으로 이것을 평가하려는 것은 명백히 부적절하다.


결론

문제점을 지적받는다는 것은, 그것이 악의에 찬 것이 아니라면, 매우 유익한 일이다. 따라서 박희주 박사님의 문제제기는 매우 가치있고 유익한 것이었다. 그 결과 몇가지 오해하기 쉬운 점들에 대해서 좀더 분명한 개념을 잡을 수 있었고, 지적 설계와 관련된 비전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따라서 나는 지적 설계에 대한 가치있는 비판이 더욱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Notes

1. 박희주, 제3회 NOAH 학술모임 자료집, "미국 창조론 운동의 최근동향", p. 7.
2. 위와 동일.
3. 김창환, 제2회 NOAH 학술모임 자료집, "Review 2 The Design Inference", p. 68.
4. 위와 같은 글, p. 63.
5. 박희주, 위와 동일.
6. 김영식, 제2회 NOAH 학술모임 자료집, "지적 설계 운동과 창조과학", p. 10.
7. 김창환, 위와 같은 글, p. 62.
8. 김영식, 위와 같은 글, p. 5.
9. 존슨은 유신론적 실재론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썼다. '나의 의도는 그 과정을 마무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려는 것이다.' 필립 존슨, 양성만 역, 위기에 처한 이성, IVP, p. 114.
10. 필립 존슨, 과기원 창조론연구회 역, 다윈주의 허물기, IVP, p. 104.
11. 필립 존슨, 위기에 처한 이성, 제5장.
12. 필립 존슨, 다윈주의 허물기, p. 104, p. 108.
13. 필립 존슨, 위기에 처한 이성, p. 116.
14. 프란시스 쉐퍼, 김기찬 역, 거기 계시는 하나님, 생명의 말씀사,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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