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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8 03: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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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8] 만들어진 신과 지적설계자 (경향신문)
[독서일기](30)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이한음 옮김·김영사·2007  

2007 09/18    뉴스메이커 742호 경향닷컴

외계에서 지구를 바라본 사람들은 푸른 빛으로 감싸인 이 행성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이 행성이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는 생명체를 가득 싣고 무한대로 펼쳐진 우주 공간을 떠가는 한 척의 작은 배다. 나는 불가사의한 우주의 변방인 태양계의 궤도를 선회하는 지구배의 한 탑승자다. 새벽에 깨어나 칠흑 같은 하늘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수억 광년 저 먼 별에서 오는 별빛들을 떠올리며 감동과 전율을 느끼곤 한다. 내 사유와 상상이 내 앎의 총체, 내 인지의 한계 저 너머로 뻗어나갈 때 내 안에 숨은 영성(靈性)은 홀연 눈뜬다. 그 영성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형이상학적 물음이 나온다. 물과 단백질로 구성된 유기체에 지나지 않지만 적어도 내 존재의 기원이 “묽은 아미노산 국물 속에서” 우연히 시작되지 않았음을 나는 안다. 나는 35억 년이나 40억 년쯤에서 시작된 다양한 생물종의 긴 역사에서 멈추지 않고 스쳐가는 간이역을 통과하는 한 나그네다. 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풀지 못한 수수께끼와 불가지론의 어둠 속에 서 있지만, 내 유전자의 어딘가에는 진화상의 한 이정표가 되는 캄브리아기의 ‘빅뱅’과 대빙하기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적 비합리성을 깨뜨리기 위해, “신이 있다”는 가설을 반박하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썼다. 도킨스는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러버트 퍼시그)는 말까지 인용하며 신을 믿는 것은 비합리적 망상이라는 도발적인 비판을 내놓는다. 종교 없는 세상이라면 9·11, 런던폭탄테러, 십자군, 마녀사냥, 인도 분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의 대량 학살, 유대인 박해, 북아일랜드 분쟁, 명예 살인 등등 종교적인 이유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도 없었을 것이다.

도킨스는 종교가 인류에 미친 나쁜 영향들을 검토하며 종교가 일종의 악덕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구약성서는 근친상간과 자녀 살해, 온갖 어리석음과 모순투성이, 비과학적인 생각들로 가득 찬 우화라고 말한다. 도킨스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격신을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라고 폄훼한다.

기독교와 이슬람에 대한 그의 비판은 신랄하다. 그 구약성서에 근거를 둔 종교들은 “인간이 갈고 닦은 가장 비뚤어진 체제”고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부른 종교”다. 도킨스는 우주와 생명은 전지전능한 신의 지적 설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윈이 세운 가설들, 변이, 도태, 생존 경쟁 등의 진화 과정을 통해 우주와 오늘날의 모든 생명체가 생겼다고 믿는다. 신이 없다면 “신이 있다”는 가설 위에 세워진 모든 종교는 거대한 오류나 망상의 산물일 것이다. 과연 도킨스는 “신이 있다”는 가설을 깨고 “신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까?

“신을 믿는 것은 비합리적 망상인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도킨스가 왜 그렇게 종교에 적대적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에서 그 논증과 가설들은 느슨하고 빈틈이 많다. 생명이 지구에 출현할 확률은 고물 야적장을 휩쓰는 태풍이 운 좋게 보잉 747을 조립해낼 확률과 비슷한데, 도킨스의 이론은 어떻게 이 광대한 우주가 생명이 나타나서 살기에 적당한 물리학적·화학적 조건들을 갖추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 의문을 풀어주기에는 미흡하다. 도킨스는 우연히 출현한 단세포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진 생명체로 발전하는 과정을 “생존 기계들은 점점 거대해지고 완벽해졌으며, 이 과정은 진보적이었고 축적되어 나갔다”는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진화의 핵심 의문들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주지 않은 채 지나쳐 간다. 그 문장은 “자연 선택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는 오래된 형태의 생명체와 생존을 둘러싼 싸움에서 승리해 얻은 위치를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조직체를 전문화함으로써 자신을 지켜나간다”는 다윈의 이론에서도 그다지 멀리 나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유전자는 근본부터 이기적이다”라고 말하는 도킨스에 따르면 인간은 DNA 분자들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유전자 전달도구다. 생존 기회를 증대시키기 위해 대립 유전자를 희생시키는 유전자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유전자 차원에서 이타주의는 나쁜 것이고 이기주의는 좋은 것이다.” 오로지 경쟁과 투쟁, 그리고 자연선택에 따라 고등 생명체로 나아간다는 도킨스의 이론은 모든 진핵생물의 세포 내에서 제 유전자를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내 공생을 통해 새로운 진핵생물을 탄생시킨다는 최근의 진화생물학에 어긋난다. 자연선택과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어나는 화학적 변이에 의해 생물이 진화한다는 진화이론과 마찬가지로 그의 이론도 증명되지 않은 사회생물학의 핵심 가설 중 하나일 따름이다. 도킨스의 이론이 “진실을 알리는 우렁찬 트럼펫 소리”가 아니라 과학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설을 쏟아내는 것은 아닌가?

천체 물리학자들은 약 150억 년 전에 초기 화학원소들의 구름 속에서 최초의 은하들이 나타나고, 용광로와 같은 별 속에서 탄소나 산소와 같은 원소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별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발하면서 우주가 거대한 구름덩이로 팽창한다. 생명의 원소들이 더 먼 곳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태양이나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생겨난다. 팽창 속도가 조금만 빠르거나 늦었어도 생명은 출현하지 못한다. 이렇듯 은하, 별, 행성 그리고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완벽한 화학적 조건의 출현과 변화 속에서 생명체들이 출현한다. 우주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무의 공간이었다. 이 무의 공간에 은하, 별, 행성들로 가득 찬 친생명 우주가 출현한 것은 ‘우연적 사건’의 결과라고 말한다. 과학자 제임스 N. 가드너는 “오늘날 빅뱅이라고 부르는 한순간의 경련으로 잉태되어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부터 기적처럼 우주가 등장했다”(‘생명우주’)고 한다. 수십억 개의 은하와 블랙홀, 별과 행성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물질 구조를 만드는 원자의 구성요소들과 전자기 복사들이 갑작스럽게, 우연히 일어난 단 한 번의 시작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완벽한 무와 원시적 혼돈 속에서 우주가 출현하는 순간부터 별과 원자들, 그리고 우주와 미시 세계들은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이 되게끔 조절하는 기능이 ‘우연히’ 결정되었을까? 빅뱅과 함께 기적이라고 할 만큼 정교한 ‘우연’을 작동시켜 친생명 우주를 생성하게 한 동력인(動力因)은 무엇인가?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리고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사유에 빠져들 때마다 나는 저 우주 너머에 한 지적 설계자가 있음을 느낀다. 나 역시 사려 깊은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친생명 우주의 탄생에 기여한 빅뱅과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구조를 지배하는 물리법칙들을 작동시킨 것은 불가사의한 “신비스러운 힘”이라고 생각한다. 내 존재 자체, 그리고 이 웅장하면서도 정교한 우주는 경이롭다. 이 경이로움 뒤에 내 이해와 인지를 넘어서는 절대의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이 회의 없는 맹신과 비이성적 광기로 치닫는 저 제도화된 종교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에도 불구하고 나를 신의 실재 쪽으로 끌어간다.

〈시인·문학평론가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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