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설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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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3 12: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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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존슨과 지적설계의 역사 (이승엽)
(지적설계 운동을 시작한 필립 존슨 교수의 개인적인 삶과 그를 중심으로 하여 지적설계 운동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한 글로서 심판대의 다윈 (까치사, 2006)의 역자후기에 나온 글임. PDF 파일 첨부)

역자 후기: 필립 존슨과 지적 설계의 역사
이승엽

2004년 4월 22일, 필립 존슨의 아내인 케이시가 존슨을 비올라 대학교 콘퍼런스 강당에 인도했다. 존슨이 영문도 모르고 대강당 문 안으로 들어서자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치면서 불편한 노구의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대학자를 맞이했다. 존슨을 위해서 전 세계에서 온 모든 참석자들은 존슨이 그들의 삶과 학문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음을 감사하는 헌정 논문을 발표했다. 원래 이 학술대회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와 과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이틀간의 학술 모임의 시작이었는데, 존슨을 위해서 헌정 심포지엄을 개최했던 것이다. 참석자 중에는 진화론 철학자인 마이클 루즈와 윌리엄 프로빈 교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비록 존슨과 많은 논쟁을 벌였던 진화론자이지만 존슨의 학문적인 엄밀성과 신다윈주의의 철학적 근거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인정하여 진화론자로서 공적인 부담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하여 헌정 논문을 발표했다. 이 헌정 논문은 책으로 편집되어 Darwin’s Nemesis라는 제목으로 2006년 3월에 출간되었다.

1987년 영국으로 안식년을 갔던 첫날, 런던의 서점에서 이루어진 두 종류의 생물학 서적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저명한 법학자를 현재와 같은 엄청난 과학 논쟁의 중심에 서게 했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다윈주의의 학술적 비평과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으로서 지적 설계운동에서 보여준 그의 선구자적 통찰력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필립 존슨을 지적 설계의 아버지로 칭하고, 『심판대의 다윈』을 지적 설계운동의 출발점으로 생각한다.

1. 필립 존슨의 삶
일리노이 주의 조그만 도시인 오로라 지역에서 자란 존슨은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명석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하버드 대학교의 소개 자료를 보고 지원하여 합격했다. 조그만 소도시를 떠나서 남들보다 1년 먼저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전공인 영문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평범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영어를 가르치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기를 원했던 그는, 실제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영어 교사를 했다.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귀국한 존슨은 아버지의 강권으로 시카고 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입학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법학이 존슨을 사로잡았고, 그는 시카고 대학교 법학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장 서기와 연방대법원 판사인 얼 워렌의 서기로 일했던 존슨은 버클리 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형법학 교수로 학술적인 명성과 업적을 남기지만 그의 가정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결국 1977년에 부인과 이혼했다. 그때 열한 살 된 딸이 집 근처 성경 학교에 다녔는데, 마지막 날 부모를 초대하는 프로그램에 존슨이 참여하여 그곳에서 목사님의 설교에 감화를 받는다. 그날이 바로 그가 부인과 이혼하기로 결정한 다음 날이었다. 그는 버클리 장로교회에 출석하고 기독교인이 되며, 그곳에서 두 번째 부인 케이시를 만나 재혼했다. 필립 존슨은 자신의 저서와 다양한 글에서 그의 기독교적 신앙관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그가 지적 설계운동의 선구자로서 진화론 진영으로부터 불필요한 신앙적인 오해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2. 필립 존슨의 안식년과 연구 주제
필립 존슨이 법학 교수로서 전문적인 과학 논쟁에 참여하게 된 것은 매우 극적이다. 그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87년 10월 영국 런던으로 안식년을 갔을 때였다. 강의와 기존 형법학 연구 부담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안식년 동안 새로운 연구 과제를 탐색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런던에서 가장 큰 과학 서점이 있었는데, 그는 여기에서 신간 서적으로 전시되어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과 마이클 덴턴의 『진화론과 과학(Evolution:A Theory in Crisis)』을 발견했다. 책을 살펴보면서 두 사람의 생물학자가 전혀 다른 상반된 결론을 보이는 것에 지적인 호기심을 느낀 그는 책을 구입하자마자 바로 두 책을 탐독한다. 그는 도킨스의 책을 두 번째 읽던 중에 얻은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갑자기 나는 이 책이 명석한 수사학적 기교로 쓰였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일은 변호사들이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증거는 없다. 다만 가설로서 결론을 받아들이도록 당신을 유도하고 논리의 명석함에 감동하게 할 뿐이다.”

두 책에서 주장하는 자연선택에 의한 대진화의 타당성이 주된 관심사였는데, 덴턴은 자연선택에 의한 대진화가 과학적 증거가 없는 가설일 뿐이라는 진화론에 대한 학술적인 비판을 제시한 반면, 진화론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도킨스는 강력한 논리로 신다윈주의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도킨스의 책 제목은 창조론적 설계 논증에 관한 책인 윌리엄 페일리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에 나오는 유명한 시계공의 비유에 빗대어서 지은 것인데, 도킨스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선택은 그것이 앞을 예측하지 못하고 결과를 계획하지 못하며, 보이는 것들에 목적이 없다는 점에서 눈먼 시계공이며 소경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에게 장인 시계공에 의한 설계와 계획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심어주듯이, 자연선택의 살아 있는 결과들은 설계된 것 같은 겉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도킨스는 결론적으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무목적적인 힘으로 대진화를 설명할 수 있으며, 생명체의 복잡성 및 겉모습이 설계된 것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첫째 날 두 책을 읽고 존슨은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중요성을 고려하여, 비록 그가 과학적인 교육은 부족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형법학과 수사학적인 전문 지식이 이 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버클리 대학교 법대에서 형법학을 가르치면서 법정 논쟁의 수사학적 기교와 구조에 대해서 강의했고, 학생들에게 증거와 주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제시하며, 반대 주장 속에 담겨진 허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발견하는가를 가르친 전문가이다. 이에 대해서 존슨은 『심판대의 다윈』 제1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나는 창조-진화 논쟁에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법학 교수로서 접근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논쟁에서 사용되는 말들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에서 맨 먼저 나의 주의를 끈 것은 우리가 진화론에 대해서 듣고 있는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예 의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도록 논쟁의 규칙이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부정적 논증을 금하는 과학원의 규칙은 복잡한 유기체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를 과학이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자동적으로 배제시킨다. 현재의 대답이 아무리 잘못되어도 보다 나은 대답이 나올 때까지는 그것이 옳은 답이 된다. 그것은 마치 형사 피고가 다른 사람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일 수 없는 한, 알리바이를 제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중략) 나는 직업은 과학자가 아니라, 논쟁의 논리를 분석하고 그 이면에 놓여 있는 가정들을 구별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의 법률학자이다. 이러한 배경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 연구에 훨씬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진화나 다윈주의에 대해서 믿고 있는 것이 그들이 사용하는 논리 형식과 그들이 내세우는 가정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 분야에 걸쳐 있고, 또 철학적인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는 진화와 같은 매우 폭넓은 주제를 다룰 때는 과학자라는 사실이 반드시 이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 종사자들은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어서, 그의 전문 분야 밖에서는 남과 다를 바 없는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1987년 11월부터 1988년 6월까지 주제와 관련된 주요 논문 및 서적, 그리고 진화론자들의 에세이 및 생물 교과서와 전문 학술지 등을 집중적으로 읽어나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논문 초고를 완성했다. 그는 진화론 생물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신의 원고를 수정받았는데, 먼저 영국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콜린 패터슨을 찾아가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그로부터 초고에 대한 수정을 받는다. 1988년 8월 버클리로 돌아온 존슨은 「진화론 논쟁에서 과학과 과학적 자연주의(Science and Scientific Naturalism in the Evolution Controversy)”라는 제목의 장문의 원고를 완성했다.

논문의 접근방법에서 마이클 덴턴의 책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진화론에 전제되는 자연주의 철학의 형이상학적 가정을 중요한 핵심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하나님과 같은 외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물질과 에너지의 내부적인 원인으로만 설명하는 자연주의 접근방법이 그 핵심이다. 학술적인 전문가 사회에서 증거의 유무에 상관없이 거부되는 기존의 성경적 창조과학 접근방법과는 확실히 차이점을 보인다. 존슨은 종교적 신념으로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다윈주의 근본주의자”로 표현했다. 내용면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수업과 관련한 미국의 법적, 법정 논쟁 및 결과를 포함하고 스티븐 제이 굴드나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진화론 전문가를 논쟁의 핵심에 올려놓았고, 마이클 덴턴이 언급하지 않았던 프랑스의 저명한 동물학자인 피에르 그라세를 다윈주의의 학술적인 비판자로 포함시킨다.

1988년 8월에 존슨은 자신의 원고를 그의 대학 캠퍼스 교수 콜로키움에서 발표하려고 준비했다. 먼저 그는 모든 동료 법대 교수 및 철학, 동물학, 식물학, 유전학과 그 외 관련된 학과 교수들에게 자신의 원고를 미리 보내고 9월 23일에 교수 세미나를 열었다. 버클리 캠퍼스의 볼튼홀 교수 라운지에 모인 법대 교수와 저명한 다윈주의 및 철학 교수들에게 과학적인 증거와 방법론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어 그는 자신의 논문 개요를 설명했다.

존슨은 버클리 대학교 교수 콜로키움에서 발표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이듬해인 1989년에 저명한 진화론자인 하버드 대학교의 스티븐 제이 굴드 교수와 논쟁을 한다. 보스턴 근처 캠피온 센터에서 “공립학교에서 과학과 창조론”이라는 주제로 과학과 종교계의 거물급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비공식 모임이 개최되었는데, 필립 존슨이 이 모임에 참석했던 것이다. 굴드는 다윈주의의 대진화를 입증하는 많은 화석학적 증거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존슨의 주장을 비판했고, 존슨도 굴드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두 사람은 청중들 앞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논쟁을 했다. 청중들은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굴드의 격렬한 비난에 놀랐으며, 그에 맞서서 논쟁하는 존슨의 능력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3. 반진화론 학술 그룹과 존슨
기존의 대표적인 반진화론 그룹인 창조과학 연구자들과 다르게 자연주의적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진화론에 비판적인 연구자들이 존재해왔다. 대표적인 학자로 마이클 덴턴과 찰스 텍스턴, 그리고 딘 케넌 등을 들 수 있고, 중요 학술회의로는 1966년 위스타 심포지엄과 1988년 “DNA 정보의 기원” 학술 모임을 들 수 있다.

필립 존슨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생물학자인 마이클 덴턴은 불가지론자로서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다윈주의를 실패한 이론으로 바라보았으나, 기독교적 창조과학을 그 대안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신 다윈주의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자연주의적 설명을 추구했으며, 따라서 그의 저서와 논문에서는 종교적 동기를 배제하여 냉철한 과학적 분석으로 다윈주의를 분석했다. 이것이 진화론에 회의적인 지성인들이 그의 책에 매력을 느낀 이유일 것이다. 덴턴은 1974년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박사학위 중 접한 분자시계 가설이나 MS2 유전자 구조와 같은 분자생물학의 최신 결과들이 그로 하여금 다윈주의에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게 했다. 그는 후에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MS2는 동일한 염기서열에 두 가지 기능이 존재한다……. 이것이 물리적 기능들을 가지는 생물학 정보의 전달자로서 첨단기술의 매우 정교한 형태이다……. 자연은 매우 놀라운 복잡성을 가진다……. 이러한 다기능성이 나로 하여금 색다른 경험을 하게 했으며, 이런 복잡성의 수준은 하나의 단순하고 연속적인 무작위적 과정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다윈주의적 과정의 가상적 능력은 일반적인 이치에 맞지 않는다.”

덴턴이 진화론에 비판적인 이유는 거슬러 올라가서 저명한 진화론자들이 학술회의에서 제시한 연구 결과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었다. 19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위스타 연구소에서 열렸던 위스타 심포지엄과 1969년 영국의 “환원주의를 넘어서”라는 주제의 알프바취 심포지엄이 그 예이다. 위스타 심포지엄은 소위 “진화의 신다윈주의적 해석에 대한 수학적 도전”이라고 불리는 회의였다. MIT 공과대학의 수학자인 메레이 에덴은 진화론의 기초 이론인 “무작위적 선택(random selection)”에 의한 생명체의 시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통계 이론을 통해서 설명했다. 수학자 마셜 슈첸버거와 D. S. 울램도 자연선택이나 점진적 돌연변이 과정의 수학적인 확률이 진화 결과와 일치하지 않음을 언급했다. 저명한 진화론자인 에른스트 마이어와 C. H. 와딩턴,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인 피터 메다워 등도 참석했고, 이 심포지엄의 열띤 논쟁은 이듬해 책으로 출간되었다. 1969년 알프바취 심포지엄에서는 다윈주의에 회의적인 생물학자들의 연구 발표들이 있었다. 이 두 학술회의 모두 다윈주의에 비판적인 연구 결과들이 창조론으로 오인되는 것을 경계했는데, 이러한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다윈주의 비판 논쟁은 덴턴과 그 외 반진화론 학술 그룹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존슨과 굴드의 캠피온 논쟁이 1990년 2월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기원 문제 특별위원회 학술 모임의 주요 사안이 된다. 기원 문제 특별위원회는 종교적 관점을 배제하고 생명의 기원에 대한 반진화론적 대안을 연구하는 학술적인 그룹이다. 이 모임을 주도한 찰스 텍스턴은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화학자로 생명의 기원에 대한 화학진화 가설의 오류를 알게 되면서, 이에 관심 있는 월터 브래들리와 로저 올슨 등과 함께 1984년에 출간된 『생명 기원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Life’s Origin)』를 출간했으며, 그 후 반진화론적인 학술 활동을 하면서 1987년 초에 이 모임을 만들었다. 텍스턴은 1988년 6월 “DNA 정보의 기원”이라는 주제로 3일간의 학술대회를 워싱턴 주 타코마에서 개최했는데, 여기에 80여 명의 전문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발표자 중에서 정보이론가인 헐버트 욥키가 발표한 DNA 정보와 인간 언어의 유사성과 관련된 논문과,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온 마이클 덴턴이 발표한 단백질의 복잡성에 관한 논문이 주목을 받았다.

학술대회의 결과에 고무된 텍스턴은 10여 년 동안 생각해왔던 『판다와 사람(Of Pandas and People)』이라는 지적 설계 개념을 도입한 책을 퍼시벌 데이비스와 딘 케넌과 함께 출간했다. 이 책은 현재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으며, 2004년 11월 도버카운티의 지적 설계 교과과정 도입 결정에서 지적 설계 관련 서적으로 언급된다. 1989년 이 책의 출간을 통해서 텍스턴과 존슨이 서로 알게 되었고, 1990년 2월 기원 문제 특별위원회 모임에서 존슨을 초빙하여 캠피온 모임에서 있었던 굴드와의 논쟁을 주요 의제로 다루게 된다. 1989년의 『판다와 사람』은 지적 설계 개념을 최초로 포함한 서적이며, 1990년 기원 문제 특별위원회 모임은 후에 존슨에 의해서 태동하는 지적 설계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특별위원회 모임에 존슨이 처음 참여했으나, 그의 화려한 학술적인 경력과 진화론에 대항하는 능력 및 전략, 그리고 부드러운 토론과 사교성에 능한 인간적인 매력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기원 문제 특별위원회의 주도권이 텍스턴에서 존슨으로 넘어가게 된다. 텍스턴은 존슨에게 지적 설계 추론에 관련된 과학 서적 출간을 종용했으나, 존슨은 이를 사양하고 버클리 논문을 기반으로 다윈주의의 자연주의 철학적 기반을 다룬 『심판대의 다윈』을 1991년에 출간한다. 따라서 설계론적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과학 서적은 1996년 마이클 비히의 『다윈의 블랙박스』이다.

4. 심판위의 다윈:논쟁으로 들어가다
1991년 말 존슨의 『심판대의 다윈』이 레그너리 게이트웨이 출판사에서 발간된다. 지적 설계 역사에서 이 책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의 주요 주제 중에서 첫 번째인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에 의한 대진화의 증거의 부족은 덴턴의 책과 동일하지만, 그 외 3가지 점에서는 덴턴의 책에서 언급되지 않은 다른 내용을 포함한다.

(1) 생물학과 고고학을 비롯한 과학적인 데이터는 대진화(자연선택)와 화학적인 생명의 기원 가설에 대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2) 과학적 사실로 여기는 대진화는 철학적 자연주의에 근거한다.
(3) 진화론의 타당성을 의심받을 때 의미론적인 조작 및 잘못된 논리로 진화론을 보호한다.
(4) 과학적인 추론보다는 철학적 전제로서 이루어진 다윈주의는 현대 문명의 중심 원리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 책은 출간된 후 수많은 전문 학술지의 서평뿐만 아니라, 출판 첫해에 5만 부가 팔려나갈 정도로 일반 대중 및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존슨은 책의 제1장에서 다음과 같이 저술 목적을 피력하고 있다.

“나의 목적은 과학적 증거를 그 자체로서 조사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그 증거의 해석을 왜곡할 수도 있는 종교적 또는 철학적 편견을 증거 자체와 구별하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적 근본주의에 입각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나로서는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이 없다. 내가 조사하고자 하는 것은 다윈주의가 과학적 증거에 대한 공정한 평가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이 또다른 종류의 창조론에 불과한지 알아보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체가 미생물로부터 진화된, 궁극적으로는 생명 없는 물질로부터 진화되어온 어떤 자연적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가? 자연주의적 설명을 믿는 것이 과학의 가장 기본적 특성이라고 국립과학원에서 말할 때, 그것은 어떤 창조주가 세상과 여러 형태의 생명체 창조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음을 과학자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비과학이면서 진실인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아니면 비과학은 전혀 의미가 없는가? 과학계가 자연주의적 진화를 분명히 승인했을 때도, 공식적으로 확립된 이 이론이 틀릴 수도 있을 가능성을 비전문가들이 생각할 수도 있는가?”

존슨은 책의 제2장부터 제8장에 이르기까지 자연선택, 크고 작은 돌연변이, 화석 문제, 진화의 사실, 척추동물 계열, 분자적 증거, 생물 이전의 진화라는 주제를 다루고 제9장부터 제12장까지는 과학의 규칙, 다윈주의 종교, 다윈주의 교육, 과학과 의사과학의 주제를 다루었다. 1993년에 발행된 제2판에서는 출간 후 처음 2년 동안 있었던 다양한 비평과 관련된 사항을 모아서 새로운 장을 첨가했다. 여기에서 그는 책 출간 후 처음 2년간의 진전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심판대의 다윈』을 쓴 나의 주요 목표는 일반 대학교에서 유신론적 세계관에 대한 주장을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출간 2년 만에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 내가 대학교들을 방문할 때 영향력 있는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과학역사가들이 기꺼이 이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과학적 자연주의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리고 일부는 유신론적 관점을 과학에서 배제한 것이 필연적이었는지 또는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 책은 마이클 덴턴이 “다윈 비판서 중 최고”라는 언급이나 스티븐 와인버그가 존슨을 “진화론에 대한 가장 비중 있는 학술적인 비평가”라고 언급한 호평이 있는 반면, 진화론자들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굴드의 비판이 대표적인데,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의 1992년 7월호에 4쪽 분량의 굴드의 서평이 실렸다. 전문 학술지인 『네이처(Nature)』와 『사이언스(Science)』에도 서평이 실렸다. 『사이언스』지는 1991년 7월 26일자에서 “존슨 대 다윈”이라는 제목으로 『심판대의 다윈』을 잠재적으로 위험한 책으로 언급한 짤막한 서평을 게재했다. 존슨이 창조과학과 관련이 없다고 언급했지만 그의 주장은 여전히 창조론자들과 동일하며, 존슨은 과학자가 아니어서 과학에 대한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비판이 주된 내용이었다. 사이언스의 서평이 게재된 후 예상치 않은 생물학자가 서평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편지를 『사이언스』에 보냈는데, 이 의견이 『사이언스』 1991년 8월 30일자에 게재된다. 그는 다름 아닌 리하이 대학교의 마이클 비히 교수이다. 비히 교수는 『사이언스』가 논리적인 비판 대신 인신공격적인 발언으로 일관했으며, 존슨이 자신의 종교적 견해로 인해서 유물론을 반대했다고 해서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파시스트 국가들도 다윈주의를 받아들이는데, 이는 훈련받은 과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유물론적 선입견이 우선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비히 교수의 편지에 대해서 존슨은 곧장 감사의 편지를 보냈고, 이로 인해서 비히는 지적 설계 그룹의 핵심 멤버로 부상하게 된다.

5. 1992년 학술대회:루즈와 존슨
마이클 루즈는 영국의 퀘이커교 집안 출신으로 현재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서 진화론을 적극 지지하는 저명한 과학철학자이다. 특별히 그는 아칸소 창조과학 법정 논쟁에서 창조과학의 비과학성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했고, 후에 과학철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란을 『그러나 그것이 과학인가(But Is It Science)』(1988)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했다. 그 내용은 이 책의 제9장에서도 상세히 다루어진다.

루즈는 1992년 3월 댈러스 남침례교 대학교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그 학술대회 자체는 창조와 진화 논쟁을 학술적인 문제로 다룬 획기적인 모임으로, 학술대회 주제는 “다윈주의, 과학이냐 철학이냐(Darwinism, Science or Philosophy)”였다. 양 진영에서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하여 중대한 명제인 형이상학적 자연주의가 신다윈주의 진화론의 핵심적인 철학을 제공하느냐에 대해서 논의한 최초의 모임이었으며, 5명의 진화론자와 5명의 설계론 진영 과학자들의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했다. 어떤 종교적 의도를 제거하고 다윈주의에 대한 공개적인 학술 논의를 한 최초의 학술대회라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학술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루즈와 존슨이 벌인 공개 토론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심판대의 다윈 마지막 장인 후기에 나온다).

댈러스 학술대회 후, 1993년 2월 루즈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연례 총회에서 초청 강연 중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그 총회는 창조론자들의 위협으로부터 과학교육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적 기금으로 설립된 단체인 전국과학교육센터(NCSE)의 유진 스콧이 주최한 프로그램이었다. 주최측은 루즈에게 “비문자주의자 반진화주의:필립 존슨의 경우”라는 주제명으로 강연을 요청했다. 루즈는 강연에서 처음에는 존슨을 비판한 후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내가 아칸소의 창조론 법정 논쟁에서 증언한 이후로 10년이 지났는데, 내 입장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있음을 말씀드린다……. 과학은 과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형성된 어떤 형이상학적 가정을 가진다……. 우리 모두가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이러한 언급에 대해서 매우 놀란 청중들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한다. 청중들은 이러한 언급이 가져올 정치적인 파장을 우려했을 것이다. 존슨이 주장한 진화론의 철학적 가정을 인정하게 된 루즈는 더 나아가서 그의 최근 저서인 『진화-창조논쟁(Evolution-Creation Struggle)』(2005)에서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이 진화 이론의 과학적 근거를 넘어선 종교적 신념으로 진화주의(Evolutionism)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다. 루즈는 이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4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1)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진화 과정의 과학적인 관점보다는 종교적인 관점을 더 가지고 있었다.
(2) 진화주의는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이다.
(3) 진화주의 종교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4) 진화론자들은 다른 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화론자인 마이클 루즈는 이와 같이 진화론을 철학적 관점에 근거한 종교로 본다는 필립 존슨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여전히 진화론자로서 지적 설계를 과학으로 인정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6. 지적 설계운동의 전개
댈러스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존슨은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을 위한 모임을 시작한다. 존슨과 기존 반진화론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다양한 다윈주의 회의론자들이 모두 모여서 새로운 형태의 과학으로 지적 설계운동을 위한 사적 모임을 개최한다. 1993년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파야로 던스에서 열린 7일간의 모임이 그것이다(이 모임의 장면이 「생명의 신비를 열다(Unlocking the Mystery of Life)」라는 제목의 비디오/DVD 영상의 초반부에 나온다). 이 모임을 통해서 지적 설계운동의 방향과 핵심 구성원들이 조직되고, 이때 인터넷을 통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이 이루어진다. 이메일을 통한 구성원들의 정보교환과 논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지적 설계 관련 시스템 구축 및 학술대회 개최, 관련 연구 및 저술활동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존슨은 비과학자로서 자신이 제시한 설계론적 과학 패러다임을 젊은 연구자들이 이루기를 원했고, 그들을 이와 같은 방향으로 독려했다. 마이클 비히, 스티븐 마이어, 윌리엄 뎀스키, 폴 넬슨, 조너선 웰스 등이 바로 그들이다.

1996년에는 지적 설계운동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첫 번째 사건은 “순전한 창조(Mere Creation)”라는 학술대회이다. 구체적으로 이 학술대회에서는 지적 설계에 관심이 있는 200여 명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모였는데, 학술대회 결과 지적 설계라는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 운동의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1996년에 일어난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은 미국 리하이 대학교의 마이클 비히 교수가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를 출간한 것이다. 생화학자인 비히도 존슨과 유사하게 마이클 덴턴의 저서인 『진화론과 과학』을 읽고 난 후 진화론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리하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미 학부 과정에 마이클 덴턴의 책과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그리고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교재로 하는 “진화론의 일반적 논쟁”이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존슨의 『심판대의 다윈』에 대한 『사이언스』지의 서평 때문에 지적 설계 운동에 참여하게 된 그는 『다윈의 블랙박스』에서 생물학적 시스템 중에는 박테리아 편모와 같이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의 자연주의적 방법으로 생성될 수 없는 많은 복잡한 구조가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생물학적 복잡성을 가지는 시스템을 비히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의 개념으로 설명하여 설계에 대한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히는 『다윈의 블랙박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지는 시스템을 쥐덫과 같이 “여러 개의 부속들이 조화롭게 상호작용하며 기본 기능을 수행하되 여기에서 어느 하나의 부속만 빠지더라도 그 기능을 멈추게 되는 단일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보다 먼저 존재했던 시스템으로부터 연속적인 조그만 변화를 통해서 얻어질 수 없다.“

비히의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설계를 접목시킨 생물학 연구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비히의 책은 「뉴욕 타임스」등 주요 신문과 잡지뿐 아니라 『사이언스』나 『네이처』 등 전문 학술지에서 비평되었고, 『크리스천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서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비히는 이 책에서 분자생물학 학술지에서 복잡한 생물학 메커니즘을 진화 과정으로 설명한 논문이 전혀 없음을 밝히면서, 이는 곧 “다윈주의가 복잡한 생화학 시스템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부적절한 이론임을 나타내는 강한 징표”라고 말하면서 자연주의적 원인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많은 생화학적 구조가 “설계”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 후 윌리엄 뎀스키가 1998년에 캠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설계 추론(The Design Inference)』과 그다음 해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를 출간하면서 과학적 연구 활동에 적합한 “설계”의 개념을 정보 이론을 사용하여 정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 윌리엄 뎀스키는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1988년 시카고 대학교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6년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프린스턴 신학대학에서 신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설계 추론』은 “낮은 확률을 통한 우연의 제거”라는 부제에서 말하듯 고도의 확률 이론을 통해서 설계론의 과학적 토대를 제공해준 수학 전문서이다. 이에 비해 『지적 설계』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 서적이다.

윌리엄 뎀스키는 지적 원인이 경험적으로 탐지 가능하고, 관찰한 데이터에 기반하여 지적 원인과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을 믿을 만하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며, 여러 특정 과학에서 이미 이런 구분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들이 법의학, 암호학, 고고학, 그리고 외계지성탐사(SETI) 분야에서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뎀스키의 “설명을 찾는 여과기(explanatory filter)”는 개념에 의하면 어떤 사건이 설계의 결과인지를 결정하는 데는 우연성, 복잡성, 특정성의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비히의 책을 통해서 나타난 생물학 시스템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윌리엄 뎀스키의 “복잡 특수 정보(complex specified information)” 이론으로 구체화되어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지적 원인의 경험적 탐지 가능성은 지적 설계를 전적으로 과학 이론이 되게 했고, 그것을 철학자들의 설계논증이나 전통적으로 “자연신학”이라고 불리는 것과 구별되도록 했다.

이즈음 지적 설계운동을 주도하는 디스커버리 연구소가 설립되는데,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생명의 기원과 과학적 방법론을 전공한 스티븐 마이어 박사가 디스커버리 연구소 디렉터로서 지적 설계운동을 이끌게 된다. 또한 “복잡성, 정보, 설계 국제학회”가 설립된다. 스티븐 마이어 박사는 2004년 9월에 전문 학술지인 Proceedings of the Biological Society of Washington에 「생물학적 정보의 기원과 상위 분류학적 범주들(The Origin of Biological Information and the Higher Taxonomic Categorie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생물학 정보와 화석 증거에 기반을 둔 분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을 비교한 후 지적 설계가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설계론적 개념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된 논문이 학술지에 발표되자 『네이처』와 『사이언스』지에서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낸다. 결국 이 논문의 게재를 승인한 학술지의 편집인 리처드 스턴버그가 사퇴하고 그가 일하고 있던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연구원 자리도 박탈당하게 되는데, 이에 많은 논란이 벌어진다.

7. 법과 교육 시스템에서의 지적 설계
법학자로서 존슨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에 대한 활발한 논쟁을 법적으로 확보하려고 했고, 2001년 연방교육의안(Education Bill), 일명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이라고 불리는 연방교육의안에 이를 포함시키려고 했다. 1,000쪽에 달하는 연방교육의안이 하원에서 상정되어 상원에서 논의될 때,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 릭 샌토럼이 발의한 수정안이 첨가되어, 그해 6월 13일 91대 8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상원을 통과했다. 일명 샌토럼(Santorum) 법안으로 불리는 그 수정안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준 있는 과학교육이란 학생들로 하여금 과학적 데이터나, 검증된 이론들과 과학으로 포장된 종교적 또는 철학적 주장들과의 차이점을 잘 구분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어야 한다. 특히 (생명의 진화와 같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가르칠 때는 학생들로 하여금 가능한 모든 이론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 왜 그러한 주제가 논쟁의 여부가 되는지, 그리고 사회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수정안이 상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자, 진화론을 옹호하는 80여 개의 과학교육 단체들의 강력한 캠페인이 대중매체들의 편파적 지지와 함께 일제히 시작되었다. 그 캠페인의 결과로 위의 수정안 내용은 교육의안 그 자체에서는 빠지고, 대신 콘퍼런스 리포트로서 이전하여 전체 문건에 포함시키는 안이 2001년 12월 18일 상하원을 통과하게 되었다. 그 후 2002년 1월 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 연방교육의안에 서명한다. 필립 존슨이 이 법안의 초안을 작성했는데, 이것은 이후로 오하이오 주를 비롯한 여러 주 교육위원회의 과학 정의 및 교과서 개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002년 12월 10일에 오하이오 주 교육위원회에서는 18명 전원 일치로 일명 “논쟁을 가르치기(The teach the controversy)” 법안을 오하이오 주 공립학교에서 과학 교과 표준으로 허락하는 결정을 내렸다. 새로운 법안의 3가지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생물학적 진화(대진화-공통 조상 이론)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모든 증거를 가르친다.
(2)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선생님들이 지적 설계와 같은 대안 이론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을 허용한다.
(3) 자연현상에 대한 모든 논리적인 설명을 허용할 수 있도록 과학에 대한 정의를 수정한다.

이 같은 3가지 결정은 그동안 과학 교과서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온 진화론을 공립학교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지적 설계가 진화론의 대안으로 교과서에 공식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또한 과학의 정의에 대한 수정안은 자연주의적인 해석만을 강요해왔던 과학의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오하이오 주 교육위원회에서 새롭게 결정된 과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과학은 관찰, 가설 검증, 측정, 실험, 그리고 이론 성립에 근거하여 자연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시하는 연속적인 연구의 체계적인 방법이다.”

오하이오 주 교육위원회 법안 통과에는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스티븐 마이어와 조너선 웰즈 박스가 직접 교육위원회의 토의에 참가하고 “논쟁을 가르치기” 전략을 제시한다. 또한 최근 유명 학술 저널에서 발표된 논문 중 진화론에 논쟁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44개의 중요 논문을 제출했으며, 지적 설계를 교과서에서 직접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비판적인 내용까지 포함하여 진화론을 심도 있게 가르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도록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오하이오 주 이외에도 주 교육위원회나 지역 교육위원회에서 유사한 법안이 통과되었으며, 현재 교육 개편 때문에 논쟁 중인 곳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2004년 10월에 펜실베이니아 도버 시의 교육위원회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과 함께 지적 설계론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하는 법안을 6대 3의 표결로 통과시킴으로써 미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지적 설계가 의무사항으로 교과서에 포함되었다. 도버 시의 공립학교에서 생물학 시간에 진화론을 배울 때 다음과 유사한 내용이 의무적으로 학생들에게 언급되어야 한다.

“진화론은 지금도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검증이 진행되는 하나의 이론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진화론은 많은 허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지적 설계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다윈 이론과는 다른 설명입니다. 지적 설계를 연구해보고자 하는 학생들은 『판다와 사람』이라는 참고 서적을 볼 수 있습니다. (중략) 어떤 이론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학생들은 열린 마음으로 살펴보기를 권장합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자 반대한 2명의 교육위원들이 사임하고, 진화론 진영에서는 격렬한 반대운동을 전개한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11명의 학부모들의 의견을 대리해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연방법원에 이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전에도 ACLU는 1981년에 창조과학을 가르치도록 한 아칸소 주와 루이지애나 주 교육위원회의 위헌성을 제소했었다. 결국 미 헌법이 명시한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아칸소 주는 1983년 연방지방법원에서, 루이지애나 주는 1987년 연방대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지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유사한 소송을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했다. 특이한 것은 디스커버리 연구소가 지적 설계를 의무사항으로 교과서에 포함시키도록 한 도버 시의 결정이 자신들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한 일이다. 2005년 12월에 이 법안에 대해서 위헌판결이 난다.

8. 존슨과 지적 설계, 그리고 미래
존슨은 『심판대의 다윈』 이후로 『다윈주의 허물기(Defeating Dar- winism by Opening Minds)』(1997), 『위기에 처한 이성(Reason in the Balance)』(1998), 『진리의 쐐기(The Wedge of Truth:Splitting the Foundations of Naturalism)』(2000), 『올바른 질문:진리, 의미 그리고 대중 논쟁(The Right Questions:Truth, Meaning & Public Debate)』(2002) 등의 책과 여러 권의 편집본 서적 및 학술논문을 출간했다. 이러한 출판물들을 통해서 그는 『심판대의 다윈』에서 주장한 진화론과 자연주의 철학의 가정을 파헤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 및 사회 시스템 속에서 공정한 논쟁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정상과학으로 유일한 권위를 가지는 자연주의 과학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을 주창한다. 필립 존슨은 지적 설계운동이 단순한 과학 패러다임 논쟁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의 무신론적 자연주의 학문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으로 확대되기를 원했고, 이를 일명 쐐기(Wedge) 전략을 통해서 시도했다.

필립 존슨은 1991년 『심판대의 다윈』의 출간 이후로 미국에서 지적 설계 논쟁과 대외적인 전략, 그리고 다양한 학술대회 및 서적 편찬을 주도했다. 그를 빼놓고는 지적 설계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비과학자인 한 사람의 통찰력과 노력을 통해서 그동안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진화론에 대한 학술 논쟁을 현재와 같은 커다란 사회적인 논쟁으로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학으로서의 지적 설계론과 그의 사회적인 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존슨의 선구자적인 외침을 통해서 시작된 이 일이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말한 과학 패러다임 논쟁으로 전개될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Tomas Woodward, 2004, “Doubts about Darwin:A History of Intelligent Design”, Baker Books.
William A. Dembski, 2006, “Darwin’s Nemesis:Phillip Johnson and the Intelligent Design Movement”, InterVa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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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 Stafford, 1997, “The Making of a Revolution”, Christianity Today, Vol. 41, pp. 16-22.
이승엽, 2005, “미국의 지적 설계 논쟁과 언론 보도”, 제4회 지적 설계 심포지엄 논문집(2006년 2월 25일).
이승엽, 2006, “필립 존슨과 지적 설계”, 제5회 지적 설계 심포지엄 논문집(2005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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