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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4 02: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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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8] 도킨스 해체하기 : 알리스터 맥그래스 「도킨스의 망상」리뷰 (ChristianityToday)
도킨스 해체하기
알리스터 맥그래스 「도킨스의 망상」 Review

로건 폴 게이지  Logan Paul Gage
http://www.christianitytoday.co.kr/inews/inews.html?oo_id=25&oo_day=20080828134513&code=500-010&mode=view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이자 무신론의 으뜸 전도사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종교에 반대하는 싸움을 계속 전개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그의 책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김영사 역간)에 대한 첫 비평서가 출간됐다. 바로 「도킨스의 망상―만들어진 신이 외면한 진리」(The Dawkins Delusion?: Atheist Fundamentalism and the Denial of the Divine, 살림 역간)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보다 도킨스에 필적할 만한 인물은 찾기 힘들 것이다. 또, 맥그래스보다 더 훌륭한 유신론 변증학자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무신론자였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그 역시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다. 현재는 역사신학 교수이자 분자생물학 학자로서 종교와 과학 두 분야 모두에 대해 신빙성을 담보하고 있다. 이 점은 도킨스에게는 부족한 부분이다. 또 맥그래스는 2004년에 「도킨스의 신」(Dawkins’ God: Genes, Memes, and the Meaning of Life, SFC 역간)이라는 책을 저술한 바 있다. 그래서 그는 도킨스의 다른 저술들에 대해 해박하다. 맥그래스의 이런 점이 도킨스에게 일관성을 요구하는 데 특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도킨스의  오류
일례로, 도킨스의 핵심적인 주장은 하나님의 실존성은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최소한 세계 자체만큼이나 복합적이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복합적인 신이란) 존재할 확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존재할 확률이 없는 실체는 해명을 필요로 할 것이다. 도킨스의 이전 작품 「존재할 확률이 없는 산 오르기」(Climbing Mount Improbable)를 떠올리면서, 맥그래스는  인간의 실존 자체가 도무지 존재할 확률이 없는 것임을 도킨스가 인정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 인간이 존재할 가능성은 지극히 적을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여기 존재하고 있다”고 맥그래스는 말한다. “그러므로 쟁점은 하나님이 존재할 확률이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그가 실제로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비록 맥그래스의 반응은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도킨스의 망상」이라는 책에서 도킨스의 철학적 순진성의 그 얕은 깊이를 좀 더 드러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님이 존재할 확률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 동물학자는 제 위치를 벗어나고 있다. 확률 이론은 정확히 이런 유의 문제에 반박하기 위해서 복잡한 방정식들을 발전시켜 왔다.

만일 (하나님의 실존성은 존재할 확률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실존성을 가지고서 세계의 설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도킨스의 주장이 옳다면, 하나님에 대한 재판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킨스는 목적을 지닌 세계 설계의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증거에 대해 논박할 필요조차 없게 된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그 다음으로, 진화로 인해 인간의 두뇌가 종교적 전제들을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비록 종교라는 것 자체가 진화론적으로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말이다.) 맥그래스는 이 부분에서 가장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도킨스가 종교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 과학자이기는 하지만 종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도킨스는 종교에 대한 엄밀한 정의조차 제공하지 못한다.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작품을 구경하고 있듯이, 맥그래스의 진짜 은사는 도킨스가 자기 입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하는가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당연히 서로 다른 명제들은 두뇌에 의해 서로 다른 처리 과정을 거쳐 나온다. 그러므로 만일 도킨스가 종교적 신념이라는 것은 인간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면, 종교적 진술들이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종교적 사고는 다른 어떤 유의 진술에 편승하고 있는지, 그리고 두뇌는 그러한 진술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도킨스는 자신에게 그러한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맥그래스가 정확히 지적하고 있듯이, “여기서 말하는 종교는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무신론적 사고를 포함해서) 우리 인간의 사고는 모두 두뇌에 의존해 있다. 설상가상으로, 도킨스는 정신 상태(mental states)라는 것이 물질적 두뇌로부터 오는 일방적 관계로 이루어진다는 식의 환원주의적 접근 방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그는 정신 상태라는 것이 물리적이며 사회적인 다양한 원인들에서 비롯된다는 식의 좀 더 복합적인 접근 방법―맥그래스는 우울증을 예로 들고 있다―을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맥그래스는, 사랑이 두뇌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교류(correlate)라고 해서, 이것이 실제 연인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신념들과 관련해서는―이 점에 대해서 도킨스는 대충 큰 윤곽만을 그리고 있다―맥그래스는 탄복을 자아낼 정도로 이것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깊이 파고들고 있다.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을 이슬람 과격파와 뭉뚱그려서 하나로 취급하면 듣기에는 좋겠지만, 종교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비판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신학상의 적절한 차이점들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그래서 맥그래스는 나사렛 예수와 종교적 폭력의 근원들, 그리고 성경에 대한 도킨스의 지식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함을 발견하여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맥그래스의 책 「도킨스의 망상」은 모든 면에서 도킨스와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의도로 쓰인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의도 없이 신중하게 쓰인 간략한 책이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맥그래스가 도킨스의 신다윈주의에 대해 반격을 가하려고 시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기이한 일이다. 왜냐하면 신다윈주의야말로 도킨스 표 작품이기 때문이다. 도킨스가 말했듯이, “다윈은 지성적으로 완성된 무신론자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므로 그 다윈주의적 토대에 맞닥뜨리지 않은 채 도킨스의 무신론을 비판하는 것은 그 어떤 비판이라도 독자에게 만족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맥그래스의  한계
맥그래스는 다윈주의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는 다윈주의가 유신론, 무신론 모두에 똑같이 해당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쪽 해석이든 모두 정당하다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무신론적 다윈주의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를 증인으로 채택한다. 스티븐 굴드는 자신의 다윈주의자 동료들 중 절반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절반은 믿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다윈주의는 두 세계관 모두에 대해 양립할 수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자기 동료들 중 절반은 “우둔함”에 틀림없다고 굴드는 생각한다. 그러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 중 절반이 우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절반이 틀렸다는 것을 말해 줄 것이다. 맥그래스는 많은 과학자들이 유신론자들임을 보여 주는 조사 결과를 들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다윈주의와 유신론의 양립 가능성이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항상 서로 양립될 수 없는 신념들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다윈주의와 유신론이 어째서 양립 불가능한지를 보려면, 현대 다윈 학설의 두 요소인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 도태를 생각해 보라. 돌연변이는 물론 무작위적이다. 그 정의 자체를 살펴보면,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시카고 대학교의 생물학자인 제리 코인(Jerry Coyne)의 말에 따르면, “돌연변이는 간단히 말하자면 DNA 복제상의 오류들이다.” “돌연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은 과연 돌연변이가 유익할는지 유해할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만일 돌연변이가 유해하다면, 돌연변이를 일으킨 그 유기체는 더 극소수의 자손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돌연변이가 재생산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변형된 염색체는 많은 자손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자연” 도태라는 것이다. 유신론적 다윈주의자들은 이 과정이 생명의 다양성을 창조해 간다고 주장하며 이 과정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고 주장한다.

유신론자들이 생명의 진화에 대해 다양하고 정당한 견해들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유신론자들이라면 그들은 분명하게 그 과정이 지성(intelligence)을 내포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것이다. 지능을 가진 존재가 창조를 하기 위해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 도태를 사용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다’이다.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논리의 문제다. ‘무작위’(random)와 ‘자연’(natural)이라는 단어는 지성(intelligence)의 배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어떤 돌연변이가 일어나도록 인도하신다면, 그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하나님이 생명의 진화를 이끌어 가시기 위해서 어떤 유기체(생명체)가 살아남도록 할 것인지를 선택하신다면, 그 선택(도태)은 자연적(natural)인 것이 아니라 지적(intelligent)인 것이다.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의 말을 빌리자면, 유신론적 다윈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친밀하게 개입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생명이 순수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순수 자연 도태를 통해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이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전체 과정을 하나님이 시작하게 하셨다고 말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그럴 경우 유신론은 이신론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맥그래스와 같은 유신론적 다윈주의자들의 접근 방법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종교적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이 양립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분명 옳다.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신론이 유물론적 기원설에 양보하면서도 아무런 상처 없이 빠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유물론적 기원설이 허위이기 때문이며, 또한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가운데 있는 산더미 같은 물질적^물리적 증거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결국 맥그래스를 말하자면, 그는 도킨스에게 너무 관대하다. 「도킨스의 망상」은 도킨스에게서는 볼 수 없는 학자적 관심과 자비심으로 쓰였다. 그에 비해 도킨스는 자신의 오만과 경멸 때문에 자기 논적들의 주장에 지나치게 부주의하다.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도킨스를 진지하게 취급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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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폴 게이지(Logan Paul Gage)는 Discovery Institute의 정책 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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