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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2 05:13:55)
유신진화론자들 어떻게 젊은 지구론자들과 유사한가? by Barry Arrington
How TEs Are Like YECs or the Explanation of the Illusion is Itself an Illusion
by Barry Arrington
유신진화론자들 어떻게 젊은 지구론자들과 유사한가? 환상에 대한 설명 그 자체가 환상일 수 있는가?
번역: C. Hwang

May 9, 2012
Posted by Barry Arrington under Intelligent DesignUncommon Descent  http://www.uncommondescent.com/intelligent-design/how-tes-are-like-yecs-or-the-explanation-of-the-illusion-is-itself-an-illusion/

Bishop Ussher famously calculated that the universe was created on October 23, 4004 BC.  I do not hold this or any other young earth creationist (YEC) position.  The evidence that the universe is several billion years old seems fairly compelling to me.  In particular, certain celestial objects (stars, galaxies, supernovas, etc.) are billions of light years away.  From this fact I deduce that the light we see from these objects has been traveling billions of years to get to us, which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the objects emitted the light billions of years ago, which in turn means the objects are billions of years old.  This chain of inferences obviously leaves no room for an age of the universe measured in only thousands of years.
어셔 주교는 기원전 4004년 10월23일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계산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이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젊은 지구론 입장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우주가 수십억년이 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설득력이 있다. 특히 우주의 별, 은하계 등등은 수십억 광년 떨어져있다. 이러한 것에서부터 나는 빛이 수십억년동안 우주를 여행하여 우리에게 오고있다는 것을 추론해내며, 이는 빛을 낸 물체가 수십억년전에 빛을 발산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또한 이런 결론은 그 물체가 수십억년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추론과정은 우주가 몇천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는다.

YEC proponents have the same evidence as the rest of us, and they admit the universe appears to be billions of years old.  Nevertheless, they persist in their YEC beliefs.  How can they do this?  There is an enormous body of literature on the subject that cannot be summarized adequately in the confines of a blog post, but the short answer is YECs have erected a series of plausible (to them) explanations for the apparent age of the universe.  For example, some YECs hold that just as God created Adam with apparent age (i.e, he started out as an adult; he was never an infant, a toddler, or a teenager), God also created the universe with apparent age.  This means that the light we see from those distant objects was not emitted billions of years ago.  Instead, God created that light “in route.”  Other YECs assert that the speed of light need not have been constant, and if light traveled in the past many times faster than it does now, our deductions about the age of the universe based on an assumption that the speed of light has always been the same would be wrong.
젊은지구론자들은 우리와 같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고 우주가 단지 몇십억년되어 보인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젊은 지구에 대한 믿음을 고수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그들은 이에 대해 하나의 글에 요약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문헌들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젊은 지구론자들은 우주 나이에 관한 설명 중 그들에게 개연성이 있는 일련의 설명들을 추려내어왔다. 예를 들면, 어떤 젊은 지구론자는 하나님이 단지 아담을 특정 나이로 창조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담은 어른으로 만들어졌고, 유아기, 아동기, 십대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우주도 특정 나이로 창조한 셈이다. 이는 멀리 떨어져있는 우주에서부터 여행해온 빛은 수십억년전에 발산된 빛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에 하나님은 여행중에 있는 빛을 창조한 것이다. 다른 젊은 지구론자는 빛의 속도가 꼭 일정할것이라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만약 빛이 과거에는 더 빠른 속도였다면 우주의 나이에 관한 우리의 추론들 역시 맞지 않을 것이다.

I do not reject YEC reasoning such as this as a logical impossibility.  By this I mean that while God cannot do logically impossible things (e.g., he cannot make a “square circle” or cause 2+2 to equal 73), he can perform miracles.  He can turn water into wine; he can make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 feed thousands of people.  Indeed, the very act of creating the universe — no matter when he did it — was a miracle.  Therefore, I conclude that God, being God, could have created the universe on October 23, 4004 BC and made it look billions of years old just as the YECs say, even if that is not what I personally believe.
나는 이와 같은 젊은 지구론자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거절하진 않는다. 내 말은 하나님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없긴 하지만 (예를 들면, 네모이면서 동시에 세모인 모양을 만든다거나 2+2가 73이 되도록 하는 등), 그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다. 실로, 우주의 창조는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이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에 우주를 만드셨을 수도 있다고 결론내리며, 젊은 지구론자가 주장하듯이 우주가 단지 수십억년의 나이로 보이도록 창조되었을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비록 내가 개인적으로 이렇게 믿진 않지만 말이다.

The YEC position cannot, therefore, be refuted as a logical impossibility.  Nor can it be refuted by appealing to the evidence.  “Wait just a cotton picking minute Barry!” you might say.  “In the first paragraph you told us you believe the ‘evidence’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the universe is billions of years old.”  And so I did.  Here is where we must distinguish between the evidence, which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an interpretive framework for that evidence, which can vary.  By “interpretive framework” I mean the set of unprovable assumptions each of us brings to bear when we analyze the evidence.  For example, the vast majority of scientists assume that the speed of light has been constant since the beginning of the universe.  As we have seen, some YEC scientists believe that light has slowed down significantly since the creation event.  Obviously, conclusions about the age of the universe from the “light evidence” will vary enormously depending upon which group is correct.
따라서 젊은 지구론자들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반박할 수는 없다. 이는 근거에 호소한다고해서 반박되지도 않는다. 당신은 “이미 첫 문단에 근거들이 우주가 수십억년이 되었다는 결론으로 이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말할지도 반문할지 모른다. 물론 난 그와 같이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반드시 근거 (이는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다)와 그 근거들을 해석하는 틀 (이는 매우 다를 수 있다)을 구별해야만 한다. 근거의 해석틀이란 우리가 근거들을 해석할때 사용하게되는 증명될 수 없는 일련의 가정들을 의미한다. 예를들면,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우주의 시작 이래로 빛의 속도가 일정했을 것을 가정한다. 우리가 보았듯이, 일부 젊은 지구론자들은 빛의 속도가 최초의 창조 이후 매우 느려졌다고 믿는다. ‘빛’에 관한 근거를 바탕으로한 우주의 나에에 관한 결론은 어느 그룹의 가정이 맞느냐에 따라 매우 차이가 날 것이다.

Very interestingly, despite the fact that most people believe that it is a scientifically proven “fact” that the speed of light has always been the same as it is now, it most certainly is not.  The current speed of light is an observable scientific fact.  We cannot, however, know with certainty what the speed of light was before observations of the speed of light were made.  It might seem so, but what I am saying is not in the least controversial.  Mainstream scientists admit that their assumptions about the fixed nature of the speed of light in the remote past are just that, assumptions.  In philosophical terms, mainstream scientists subscribe to “uniformitarianism,” the assumption that physical processes operated in the past the same way they are observed to operate now.  YEC scientists by and large reject uniformitarianism.  Which group is correct is beside my point.  The point is that uniformitarianism is an assumption of most scientists.  It has not been, and indeed as a matter of strict logic cannot be, demonstrated by science.  In other words, the uniformitarian assumption is part of the interpretive framework mainstream scientists bring to bear on the evidence.  The uniformitarian assumption is not part of the evidence itself.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빛의 속도가 항상 일정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로 믿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의 빛의 속도는 측정가능한 과학적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관찰된적 없는 과거의 빛의 속도를 확실히 알 길은 없다. 물론 알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자하는 바는 최소한 이는 매우 논란적인 사안이라는 것이다. 주류 과학자들은 그들이 매우 먼 과거의 빛의 속도에 대한 것이 가정임을 인정한다.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주류 과학자들은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라는, 과거의 물리적 과정이 관측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이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점은 uniformitarianism은 대부분 과학자들의 가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엄격한 논리에 의해 과학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말로하면 uniformitarian 가정은 주류 과학자들이 근거들을 다루는 일종의 해석적 틀이라는 것이다. Uniformitarian 가정이 근거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This brings me back to my point.  No matter how long and hard you argue with a YEC proponent you will never convince him based on appeals to the evidence.  Yes, he has the same evidence that you do, but he interprets that evidence within a different interpretive framework.  You might think his interpretive framework is flawed, but you cannot say, as a matter of strict logic, that his interpretive framework must necessarily be flawed.  In other words, you must admit that as a matter of strict logic it is possible for light to be slower now than it was in the past.  And given the premise of some YECs that light is in fact slower now than it was in the past is, their conclusions might then follow.  
이제 다시 논점으로 돌아오자. 당신이 얼마나 오래동안, 열심히 젊은 지구론자에게 근거를 바탕으로 논쟁을 한들 당신은 근거에 호소함으로서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그들도 당신과 같은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근거를 다른 해석학적 틀안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들의 해석적 틀이 틀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엄격한 논리로 상대방의 해석적 틀이 잘못되었고 할수 없다. 다른말로하면 논리만을 가지고서는 과거에 비해 현재 빛의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빛의 속도가 더 빨랐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는 그들의 결론에 문제는 없는 셈이다.

Why do YECs reject uniformitarianism?  Because they are devoted to a particular interpretation of the Biblical creation account.  They believe the Bible says the universe was created in six days a few thousand years ago, and if they are going to believe the Bible is true they must therefore believe the universe was created in six days a few thousand years ago.  It does no good to appeal to logic or evidence.  As I have demonstrated above, a young universe is not a logical impossibility and no matter what evidence you adduce that, to you, indicates the universe is very old, the YEC will have an answer (e.g., “light has slowed down”).
왜 젊은 지구론자들은 uniformitarianism을 거부하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창조기사의 특정 해석학적 방식에 헌신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이 우주가 수천년전 6일간의 기간동안 창조되었다고 말한다는 것을 믿는다. 그들은 성경이 맞다고 믿기때문에 그들은 당연히 우주가 수천년전 6일간의 기간동안 창조되었다고 믿어야한다. 이는 논리나 근거에 호소해봐야 소용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젊은 지구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어떤 개념이 아니며, 당신이 어떠한 근거를 제시한들 젊은 지구론자들은 그들 나름의 답을 제시할 것이다 (예를 들면, 빛의 속도가 느려졌다는 등).

I was thinking about this yesterday when we were discussing the theistic evolutionists (TEs) over at BioLogos.  TEs are like YECs in this respect — they cling to a scientific view that runs counter to the obvious evidence because of their prior commitments.
나는 이러한 부분을 바이오로고스의 유신진화론자들과 토론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이런 측면에서 젊은 지구론자들과 유사하다. 그들은 명백히 근거와 반대되는 과학적 견해를 그들의 선험적 헌신(prior commitments)때문에 붙잡고 있다.

Let me explain what I mean.  Just as it is “obvious” that the universe appears to be several billion years old, it is “obvious” that living things appear to have been designed for a purpose.  That statement is not based on my religious beliefs; even the atheists believe that living things appear to have been designed for a purpose.  Arch-atheist Richard Dawkins famously said that “Biology is the study of complicated things that give the appearance of having been designed for a purpose.”  Surely our friends at BioLogos will go as far as atheist Dawkins and admit that living things “appear” to have been designed for a purpose.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설명하겠다. 우주가 수십억년 된것으로 보이는게 명백하듯이 생명체가 특정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이 주장은 나의 종교적 믿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무신론자 조차 생명체가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고 믿는다.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가 한 유명한 말처럼 “생물학이란 목적을 위해 설계된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것들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당연히 우리들의 친구 바이오로고스 사람들도 도킨스가 인정하듯 생명체는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인정한다.

Now notice the similarity between TEs and YECs:  Everyone concedes that the universe appears to be billions of years old; everyone concedes that living things appear to have been designed for a purpose.  YECs say the first appearance is an illusion.  TEs  say the second appearance is an illusion.
이제 유신진화론자와 젊은 지구론자의 유사성에 주목하길 바란다. 모두가 우주는 수십억년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모두가 생명체는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젊은 지구론자는 전자가 환상이라 이야기하고 유신진화론자는 후자를 환상이라 이야기한다.

We have already seen how YECs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apparent age of the universe is an illusion.  How do TEs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appearance of design in living things is an illusion?  The same way Richard Dawkins does, by appealing to the marvelous creative powers of Darwinian processes that, he says, are able to mimic design through strictly natural processes.  Darwinists say, as they must, that the appearance of design that they admit exists is not reality but an illusion.  Indeed, the whole purpose of the Darwinian theory of origins is to account for the appearance of design without having to resort to a designer.
우리는 이미 어떻게 젊은 지구론자들이 우주의 나이가 환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되었는지를 보았다. 그렇다면 유신진화론자들은 생명체의 명백한 설계에 관한 결론이 환상이라는 결론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가? 이는 도킨스의 견해와 똑같다. 바로 다윈주의 메커니즘의 놀랍도록 창조적인 힘에 의해 엄격하게 자연적 과정을 통해 설계를 모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윈주의자들은 설계의 모습들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실재가 아닌 환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기원에 관한 다윈주의이론의 전체적인 목적은 설계자에 호소하지 않으면서 설계의 모습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YECs reject the “obvious” conclusion about the age of the universe because of their prior commitments.  Why do TEs reject the “obvious” conclusion about the design of living things?  Further, why do TEs reject that obvious conclusion in the very teeth of the Biblical injunction to regard the appearance of design as proof of God’s existence (Romans 1).
젊은 지구론자들은 그들의 선험적 헌신때문에 우주의 나이에 관한 명백한 결론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유신진화론자들은 왜 생명체의 설계에 관한 명백한 결론을 거부하는 것인가? 더 나아가 왜 유신진화론자들은 신 존재의 증거로서 설계를 이야기하는 성경의 명백한 결론을 거부하는 것인가? (로마서1)

The answer has to do with what I call the “cool kids” impulse that all humans have to one extent or another.  When I was in school all of the “cool kids” sat at a particular table at lunch, and everyone wanted to be in that group.  I was not a cool kid, and I figured out pretty early that, for better or ill, the streak of stubborn individualism that runs to my very core would probably prevent me from ever being a cool kid.  I refused to conform and in order to be a cool kid you have to conform to the other cool kids.  Don’t get me wrong.  I very much wanted to be a cool kid.  Everyone wants to be a cool kid, and believe me, my life would have been so much easier if I had been a cool kid.  This is sociology 101.  But I was unwilling (perhaps even unable) to pay the price of admission to the cool kids club – i.e., conformity.
이에 대한 답은 모든 인간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소위 “쿨한 아이들 (cool kids)” 충동과 관련이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시절 모든 “쿨한 아이들”은 특정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었고, 모두가 그 그룹에 속하길 원했다. 나는 쿨한 아이가 아니었고 고집스러운 나의 개인주의 성향은 내가 쿨한 아이가 되지 못하도록 했다. 쿨한 아이가 되려면 다른 쿨한 아이들에게 순응(conform)해야하는데 나는 그러기를 거부했다. 오해하지마라. 나도 쿨한 아이가 매우 되고 싶었다. 모두가 쿨한 아이가 되고자 한다. 내가 쿨한 아이가 되었었더라면 내 삶은 매우 평탄했을지도 모른다. 이건 사회학 기본 원리다. 하지만 나는 쿨한 아이들 클럽에 들어가기위해 필요한 대가 (i.e. 순응;conformity)를 지불하기를 거부한 셈이다.

The cool kids impulse does not go away when we are adults, and in the academic community all of the cool kids sit at the Darwinian table.  TEs want to be cool kids; they want to be respectable and accepted in the academic community.  Sadly for them, the price the academic cool kids club extracts for admission is denial of the obvious appearance of design in living things and acceptance of the patent absurdity that the accretion of random errors sorted by a fitness function can account for the stupendously complex nano-machines we call cells.
쿨한 아이들 충동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는다. 학계의 쿨한 아이들은 모두 다윈주의 테이블에 앉는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쿨한 아이들이 되고자 한다. 그들은 학계로부터 받아들여지기 원하며 존경을 받기 원한다. 불행히도 학계의 쿨한 아이들 클럽에 속하고자 한 대가는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명백한 설계의 흔적을 거부하는 것이며 적응함수(fitness function)에 의해 무작위적인 오류가 쌓여 세포라 불리우는 놀랍도록 복잡한 나노 수준의 분자기계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이 말도 안되는 것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다.

This is not, however, the end of the story for TEs.  They know that to deny design in the universe is to deny the designer of the universe, which is to deny God, and what is the point of being a TE if you reject the “T” part?  In order to maintain their membership in the cool kids club TEs slam the front door in God’s face when they deny the reality underlying the apparent design of living things that even atheists admit.  But they are perfectly willing to let God in the backdoor just so long as he stays out of sight and doesn’t get them kicked out of the club.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그들은 우주의 설계를 거부하는 것이 우주의 설계자를 거부하는 것임을, 또한 이는 신을 거부하는 것임을 안다. 그렇다면 유신진화론에서의 ‘유신(theistic)’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것인가? 쿨한 아이들 클럽 멤버쉽을 유지하기 위해 유신진화론자들은 무신론자들도 인정하는 생명체가 설계된 것으로 보이는 것의 실재를 거부하면서 신이 들어설 자리가 없도록 문을 닫아버린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신을 위해 뒷문을 열어놓는다. 그들이 쿨한 아이들 클럽에서 쫓겨나지 않는 정도로 신이 보이지 않는 정도로만 머물수 있도록 말이다.

As I discussed yesterday, I am thinking of TEs like Stephen Barr.  Dr. Barr is perfectly happy to accept the Darwinian account of evolution.  Darwinism says that mechanical necessity (i.e., natural selection) plus random chance (mutation, drift, etc.) are sufficient to account for the apparent design of living things.  It is, in StephenB’s words, a “design-free random process.”  In his “Miracle of Evolution,” Dr. Barr slams the front door shut on God when he accepts the Darwinian account.  Then he cracks the backdoor open ever so slightly to let God slip in when he asserts that what we perceive as a “design-free random process” is really, at a deeper level of existence, directed by God in a way that is empirically undetectable at this level of existence.
어제 논의했듯이, Stephen Barr와 같은 유신진화론자가 그렇다. Barr 박사는 완벽하게 다윈주의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다윈주의는 말하기를 무작위적 확률 (돌연변이, drift 등)과 필요 (자연선택)가 생명체의 설계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StephenB의 말을 빌리자면 “설계가 없는 무작위적 과정 (design-free random process)”인 셈이다. 그의 “Miracle of Evolution”에서 Barr박사는 다윈주의 설명을 받아들이면서 신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도록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는 이 “설계가 없는 무작위적 과정”은 실제로는 더 깊은 차원에서는 신에 의해 인도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경험적으로는 탐지할 수 없는 것이라며 신을 위한 뒷문을 살포시 열어둔다.

Barr is saying that in order to maintain his membership in the cool kids club he must affirm that evolution is purely random and design free.  How is his position different from the atheist position espoused by Richard Dawkins?  At the level of existence in which we examine empirical data, Barr’s position is identical to Dawkins’ position.  But, says Barr, when he uses the word “random,” he really means “apparently random but really directed.”  Apparently, Barr believes that, in Einstein’s famous phrase, God really does play dice with the universe.  But according to Barr, God, has loaded the dice so that they rolled “life,” however improbable that might have been (like a thousand 7′s in a row with real dice), and God’s dice loading is so clever that the “fix” can never be detected empirically.
Barr는 쿨한 아이들 클럽 멤버쉽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진화는 순전히 무작위적이며 설계가 없는 것이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은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와는 무엇이 다른 것인가? 우리가 경험적 근거들을 다루는 수준에서라면 Barr의 입장은 도킨스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Barr가 이야기하기를 그가 “무작위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때 그는 실제로는 “분명히 무작위적이지만 실제로는 인도되는”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단언컨대 Barr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구절을 빌리자면, 신은 우주와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Barr에 따르면 신은 주사위에 생명을 잉태하는 능력을 부여했지만, 이러한 과정은 너무나 놀라운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경험적으로는 결코 탐지될 수 없는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In this way Barr maintains membership in the academic cool kids club by espousing a Darwinian account of origins that is indistinguishable from that account of origins that atheists like Dawkins and Dennnett espouse.  Yet he keeps the “T” in his “TE” by saying that at a wholly different level of existence God fixed the game so that “random” is not really random but directed.
이런 방식으로 Barr는 도킨스나 데넷과 같은 무신론자들과 생명의 기원에 관해서는 동일한 설명방식을 고수함으로서 학계에서의 쿨한 아이들 클럽 멤버쉽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은 무작위적 과정이 정말 무작위적이 아니도록 인도했다고 주장함으로서 “유신”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한다.

Here again, the TE position is exactly the same as the YEC position.  As we have already seen, you cannot push a YEC off his position by appealing to logic or evidence.  Nor can you push Dr. Barr off his position by appealing to logic and evidence.  We cannot rule Barr’s position out on strictly logical grounds.  God, being God, can certainly fix the dice in an empirically undetectable way if that is how he wants to accomplish his purposes.  Nor, by definition, can one rule Barr’s position out empirically short of finding the proverbial “made by YHWH” inscription on a cell.
이러한 부분에서 유신진화론자들의 입장이 젊은 지구론자들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미 보아왔듯이 젊은 지구론자들에게 논리나 근거를 제시함으로서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Barr 박사와 같은 사람들이 가진 입장 역시 논리나 근거를 통해 설득할 수 없다. 우리는 엄격한 논리로 Barr 박사의 입장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경험적으로 탐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주사위 게임을 바꾸어놓았을 수도 있다. 설령 우리가 세포에서 ‘야훼가 만들었음’이라는 문장을 경험적으로 발견했다한들 Barr의 입장을 배제할 수는 없다.

Finally, there is a certain irony in Barr’s position.  The atheist says living things appear to be designed but the appearance of design is an illusion explained by random Darwinian processes.  The TE says that living things appear to be designed but the appearance of design is an illusion explained by random Darwinian processes, BUT the randomness of Darwinian process is itself an illusion, because those processes are really directed by God to produce living things.  Thus, according to the TEs, the explanation of the illusion of the explanation of the illusion of design is, you guessed it, design.  As the comedian says, “That’s funny.  I don’t care who you are.”
결론적으로 Barr의 입장에는 한가지 모순이 있는 셈이다. 무신론자들은 생명체가 설계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설계는 무작위적 다윈주의 과정으로 설명되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자들은 무신론자들과 똑같이 이야기하지만 다윈주의의 무작위성이 오히려 환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정들은 실제로는 생명체를 탄생하도록 신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신진화론자들에 따르면 설계의 환상에 대한 설명에 대한 환상에 대한 설명이 곧 설계라는 셈이다 (the explanation of the illusion of the explanation of the illusion of design, you guessed it, design). 코미디언의 말을 빌리자면 “참 웃기군. 난 네가 누군지 관심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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