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설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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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00: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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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논증의 구조 (김창환)


설계논증의 구조


The Structure of the Design Argument

요 지: 본 연구에서는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지적 설계의 논리적 구조로부터 출발하여 설계 논증의 기본적인 윤곽을 제시하도록 한다. 지적 설계에서 제안된 논리적 구조를 먼저 살펴보고 문제를 구성하는 방법에 관한 논의를 덧붙였다. 흔히 주장되는 형태의 설계 논증이 어떤 의미에서 실패하였는지 살펴보았다. 생명의 설계, 지구의 설계, 그리고 우주의 설계에 대해 논증할 때 그 논증의 구조는 어떠해야 하는지 논하였고 몇 가지 관련 사항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Abstract: In this paper the fundamental picture of the design arguments is represented in terms of the logical structure of intelligent design theory which arose recently. At first the logical structure suggested by intelligent design theorist is reviewed and then some discussions about constructing problems are added. Some popular types of the design arguments are reviewed and shown to be failed arguments. And the proper structures of the arguments for the design of the life, the earth, and the universe are represented and some related topics are discussed.


1. 서 론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라고 신약 성경 히브리서는 기록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이와 같은 형태의 논증, 즉 자연은 지성에 의해 고안된 특징을 보인다는 논증이 있어왔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19세기 초 윌리엄 팔레이(William Paley)의 '시계공 논증'일 것이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는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것은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답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 같은 대답, 즉 잘은 모르지만 그 시계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대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를 설계했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1]
당시 복잡한 기계의 대표격인 시계를 가지고 그 복잡성을 생명의 복잡성과 비교하면서 생명이 설계되었음을 역설한 팔레이의 논증은 대표적인 설계논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논증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찰스 다윈(Charles Darwin)에 의하여 반박된 것처럼 보였고 생명의 복잡성은 돌연변이/자연선택의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는 관점이 과학의 주류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십 년간 설계 논증은 다시 되살아났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팔레이의 관점을 이어받고 있는 것이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는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 움직임을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라고 부른다.
지적 설계는 1991년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의 책 "심판대 위의 다윈(Darwin on Trial)"의 출판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책에서 존슨은 다윈의 이론이 자연주의라는 철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만아니라 창조의 핵심은 타이밍이나 메커니즘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설계되었다는 데에 있다고 역설하였다.[2] 그의 책은 의외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1992년에는 '다윈주의; 과학인가 철학인가'라는 컨퍼런스가 열리게 되었다. 그 컨퍼런스는 지적 설계의 주요 인물들이 서로 만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3]
1996년에는 다시 한 권의 책과 한 번의 컨퍼런스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한 권의 책은 마이클 베히의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인데 여기서 그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어떤 생화학적 시스템은 다윈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생성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4] 한편 한 번의 컨퍼런스는 "Mere Creation"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으며 지적 설계의 윤곽이 드러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5]
1998년에는 또 한 권의 중요한 책이 출판되는데 윌리엄 뎀스키(William A. Dembski)가 쓴 "설계 추론(The Design Inference)"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서 뎀스키는 수학과 형식논리학을 사용하여 지적 설계를 탐지하는 과정을 엄밀하게 구성해 내었다.[6]
현재도 지적 설계를 옹호하는 많은 학자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본 논문은 그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설계 논증의 논리적 구조에 대한 뎀스키의 업적을 간략히 살펴보고 거기에 문제의 구성에 대한 논의를 덧붙인 다음 이제까지 흔히 주장되었던 실패한 설계 논증들을 간단히 살펴본 후 생명의 설계, 지구의 설계, 우주의 설계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다.

2. 설계 논증의 구조

2.1 설계 추론[7]
사건 E가 일어났다는 것을 oc(E), 사건 E가 확률가설 H 하에서 우연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ch(E; H)로, E가 규칙성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reg(E)로, 그리고 E가 설계로 설명된다는 것을 des(E)로 표현한다고 하자. 규칙성과 우연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설계로 설명해야 하므로 를 적절한 확률가설의 집합이라고 하면 des(E)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사건 E가 설계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도록 하는 논증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같게 된다.
P1∼P5가 모두 만족하면 엄밀한 형식논리학적 과정을 통해서 des(E)를 결론으로 얻을 수 있다. P2는 des(E)의 정의로부터 곧바로 나온다. P3와 P4는 단지 사건 E가 일어났으며 그것이 규칙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P1은 뎀스키가 작은 확률의 법칙(the Law of Small Probability)라고 부르는 것이고 P5는 그 법칙이 요구하는 조건이다.
기호에서 D는 패턴이며, D*는 D가 묘사하는 사건이다. 기호 SP(E; H)는 확률자원 가 주어졌을 때 확률가설 H 하에서 사건 E가 작은 확률을 갖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확률자원이란 사건이 일어날 기회가 얼마나 되는가를 나타낸다. 얼마나 작은 확률을 작은 확률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이 확률 자원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우주에 존재하는 기본입자의 수는 1080을 넘지 않고 물리적 상태의 변화는 초당 1045회를 넘을 수 없으며 우주의 연대는 1025초를 넘지 않으므로 우주안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건이든지 간에 그 사건이 일어날 기회가 10150을 결코 넘을 수 없다. 따라서 확률이 10-150 보다 작은 사건은 우연히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렵다.
sp(D, E; H)는 사건 E가 패턴 D에 의해 특정(specified)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데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필수 전제 조건(requisite precondition) 을 살펴보아야 한다. H는 확률가설, P는 확률 측정방법, I는 배경정보, 는 복잡성 측정방법이며 측정된 복잡성이 보다 작으면 해결가능(tractable)이라고 하고 주어진 배경정보로부터 패턴을 구성해낼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다음 두 조건이 만족될 때 패턴 D가 사건 E로부터 분리가능(detachable)하다고 한다.
(1) I로부터 나올 수 있는 임의의 정보 J에 대하여 P(E|H&J) = P(E|H)
(2)
D가 E로부터 분리가능하고 E ⇒ D*이면 E가 D에 의해서 특정되었다고 한다. 작은 확률의 법칙은 특정된 작은 확률의 사건은 우연히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고 그것이 규칙성, 즉 법칙이나 알고리즘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확률이 작고 특정되어 있으면 그 사건은 지적 설계의 산물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2.2 정보보존법칙[8]

사건 E에 대한 확률을 P(E)라 할 때 그에 대한 정보 I(E)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I(E) ≡ -log2P(E)
사건 A가 주어졌을 때 사건 B가 덧붙이는 정보량은 조건부 정보로서 정의에 따라서 조건부 확률로부터 다음과 같이 구할 수 있다.
I(B|A) ≡ -log2P(B|A)
사건 B가 A에 의해서 결정론적으로 결정될 때는 P(B|A) = 1 이고 따라서 I(B A) = 0 이다. 즉 필연적인 과정을 통해서는 정보가 더해질 수 없다.
한편 정보가 특정되고 동시에 복잡하면 복잡특정정보(complex specified information; CSI)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10-150의 확률을 정보로 환산하면 대략 500비트가 되는데 이보다 더 큰 정보를 복잡하다고 할 수 있겠다. CSI가 우연히 생성될 수 없다는 데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다. 따라서 CSI는 필연과 우연, 즉 자연적인 원인으로는 생성될 수 없다. 이것이 정보보존법칙(The Law of Conservation of Information)이다.
이 법칙으로부터 다음의 따름정리들이 곧바로 따라나온다. (1) CSI는 자연적인 요인만이 존재하는 닫힌 계에서는 일정하거나 감소한다. (2) CSI는 자발적(spontaneous)으로나 내생적(endogenous)으로나 자기조직(organize itself)적으로 (생명의 기원 연구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생성되지 않는다. (3) 자연적인 요인만이 존재하는 닫힌 계 안에 존재하는 CSI는 영원히 있어왔거나 어떤 시점에서 외생적(exogenous)으로 더해진 것이다. (이 말은 지금은 닫혀있는 계가 항상 닫혀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4) 특히 유한한 시간동안만 존재해온 자연적인 요인만이 존재하는 닫힌 계는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CSI를 닫힌 계가 되기 전에 어떻게든 받았다.
뎀스키에 따르면 설계를 추론하는 것과 CSI를 탐지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2.3 문제 구성하기
주목할 것은 설계되었는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과 배경정보의 관계이다. 필수 전제 조건에 들어있는 확률 측정방법이나 복잡성 측정방법은 S가 문장의 집합일 때 S×pow(S)에서 정의된다.[9] 즉 배경정보는 S의 부분집합이고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이나 패턴은 S의 원소이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은 없으며 단지 문제를 구성할 때 그 각각을 선택할 뿐이다.
이것을 어떻게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주어진 사실들 중에 어떤 것들을 배경정보로 택하고 어떤 것을 설계되었는지 점검할 것으로 택하는가 하는 것은 순전히 문제를 구성하는 이의 자유이다. 다만 조건이 만족할 수 있도록 주의 깊게 선택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분리가능하지 않게 선택하였다면 확률을 계산해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한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계산되어지는 확률값도 다를 것이다.
따라서 설계 논증을 하는 데에 있어서 첫 번째 단계는 무엇이 주어진 것이고 무엇이 설계되었는지 살펴볼 것인지 구별하여 선택하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설계 논증을 하는 데에 있어서 이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일 것이다. 이 선택을 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요소는 분리가능성과 확률자원일 것이다. 배경정보가 제한될수록 확률자원은 줄어들지만 분리가능성에서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배경정보가 일반적일수록 분리가능성은 더욱 분명해지지만 확률자원이 지나치게 확대될 수도 있다.
어떤 한 대상이 설계되었는지 시험해볼 때에도 여러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설계 추론은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즉 설계로 추론되지 않은 것은 설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설계로 추론된 것은 반드시 설계이기 때문에, 그 여러 가지 선택 중 하나에서만 설계가 추론되면 문제의 대상은, 선택을 어떤 식으로 했느냐에 따라, 그 일부 또는 전부가 설계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또 한가지 살펴볼 것은 설계를 추론하는 것과 CSI를 탐지하는 것이 동일하다는 뎀스키의 언급이다. 방금 살펴보았듯이 설계 추론은 문제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 그러나 CSI는 일종의 정보인데 이 정보가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근본적인 양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둘이 동일할 수 있겠는가? 상황을 잘 살펴보면 정보량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특정되었는가 또는 복잡한가 하는 기준은 문제를 구성하는 방법, 즉 배경정보와 설계되었는지 살펴볼 것을 택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3. 실패한 설계 논증

3.1 전형적인 실수들
실패한 설계 논증들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그 첫 번째 형태는 개인적인 느낌에 호소하는 것으로 흔히 '느낌표로 이루어진 논증'이라고 불리운다. 사실상 이것은 논증이 아니다. 상대로 하여금 놀라움과 감탄을 느끼게 하고 이것은 설계되었다고 선언할 뿐이다.
또 다른 유형은 분리가능하지 않은 경우이다. 보통의 설계 논증에서는 배경정보가 명시되지는 않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리가능하지 않은 경우란 배경정보에서 문제의 패턴을 구성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나 그 반대의 경우, 즉 문제의 패턴에서 배경정보의 일부를 구성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는 경우에 발생한다.
세 번째 유형은 확률과 관계가 있다. 확률자원을 무시하거나 또는 잘못 생각한 경우, 한 가지 확률가설만 고려하고 다른 확률가설은 무시하는 경우, 확률 자체를 고려하지 않거나 확률이 그다지 작지 않은 경우 등이다.
특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돌연변이/자연선택 메커니즘이다. 이 메커니즘을 고려할 때 분리가능한가 그리고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과학의 주류는 적어도 생물시스템에 있어서 이 메커니즘이 설계자를 대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2 "기원과학"의 경우
한국창조과학회에서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의 개정판으로 펴낸 "기원과학"은 한 장을 '완벽한 설계(창조의 증거들)'이라는 제목에 할애하고 있다.[10] 그 서두에서 '생물은 정밀한 정보를 내재하고 있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고도의 지혜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며, 결코 우연과 오랜 시간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11]라고 매우 그럴듯하게 써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은 매우 실망스럽다. '물고기와 조선공학,' '독수리와 항공공학,' '박쥐의 하이테크 시력,' '삼엽충의 눈,' '신비한 미생물의 세계' 등을 이야기하면서 생명 시스템과 첨단 기술을 비교하면서 생명 시스템이 첨단 기술보다 뛰어나므로 설계되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무슨 논리적 근거로 그렇게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는 '느낌표로 이루어진 논증'이다.
생명 시스템이 많은 경우 첨단 기술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진화론자들도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들은 '초자연적인 지혜'를 이야기하는 대신 흔히 '오랜 시간동안 작용한 진화의 위대한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물고기의 폭과 길이의 비율을 들어 물고기가 설계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돌연변이/자연선택의 메커니즘으로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아마도 분리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기원과학"은 계속해서 '신비한 미생물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대장균 한 마리 속의 유전 정보가 책으로 기록한다면 브리태니카 백과사전보다 많으며, 정보량으로는 1조 비트에 해당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12]고 썼다. 이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언급이지만 그 정보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 그것이 특정되어 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그 사실로부터 더 이상의 논증을 이끌어가려는 의도도 전혀 없어보인다. 단지 그 사실만을 말하고 끝이다.
'동물들의 놀라운 여행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좀 더 심각하다. 새들과 연어, 곤충과 거북이의 여행술에 대한 인상적인 설명에 이어서 '무엇을 보고 방향을 잡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자장을 감지하여 방향을 잡는 것이 아니었다,' '콧구멍을 막은 후 내보내도 역시 정확히 방향을 찾아갔다,' '여행법을 배운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13]고 말하면서 그것을 '본능적 정보'[14]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정보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잘 모르는 것, 베히의 표현을 빌면 '블랙박스'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이 설계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오히려 이 논증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모른다는 점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것은 아주 좋지 않다. 이런 논증을 '무지로부터의 논증'(argument from ignorance) 또는 '간격의 하나님'(God of the gaps) 논증이라고 부르며 가장 쉽게 공격받을 수 있는 형태의 논증이다. 이런 논증을 폈다가는 번개가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설계 논증이 아니다.
놀랍게도 이 부분에서 '정보라는 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생기는 일은 없다......정보는 정보를 주는 자(만든 자) 없이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15]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들의 놀라운 여행술에서 무엇을 정보라고 부를 것인가 조차 분명치 않다.
'인체의 신비', '피', '동물의 호흡기관'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다지 설득력 있는 설계 논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훌륭한 시스템인가 하는 인상적인 설명이 있지만 그것이 왜 돌연변이/자연선택으로는 생성될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생명의 신비에 대해 감탄하는 것이나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도록 격려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논증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얻어진 설계에 대한 개념은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아서 가장 간단한 반대 논증에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3.3 "창조론 대강좌"의 경우
양승훈 교수님께서 쓰신 "창조론 대강좌"도 '창조의 증거'라는 제목에 한 장을 할애하였는데 그 서두 부분에서 역시 '자연계 곳곳에 남아 있는 다양한 설계의 흔적들을 소개함으로...... 거시적 세계나 미시적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칭성, 통일성, 한계성을 비롯하여, 물질계나 생물계에서 나타나는 유비, 조화, 일치, 정교함, 그리고 지구상에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 수 있도록 세심하게 예비하신...... 배려를 살펴'[16]보겠다고 써 있다.
'물의 밀도,' '지자기의 세기,' '지구의 중력,' '대기의 층상구조,' '대기의 조성,' '지구의 온도' 등의 내용은 대부분 의미있는 것들이지만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분리가능성과 관련된 것이다. 위와 같은 것들이 생명에게 적합하게 조절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 생명 형태가 문제이다.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대해 '수초를 비롯하여 강이나 바다 밑바닥에 서식하고 있는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얼어죽을 것이다,'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기가 어려운,' '암모니아는 유독 기체로 잠시라도 호흡하게 되면 사람이나 동물은 질식하여 죽게 되며 메탄 역시 생물들이 호흡할 수 없는 기체이다,' '생명 기능이 너무 빨리 진행되어 생명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심각한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17] 등등으로 쓰고 있는데 항상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형태에 기준해서 논의를 펴고 있다.
그러나 물의 밀도, 지구의 중력, 대기의 조성 등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형태로부터 분리가능할 것인가? 그렇지가 않다. 진화론자들은 그러한 것들이 생명에 맞추어서 설계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에 맞추어서 생명이 진화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만약 그런 조건들이 달랐으면 다른 형태의 생명이 진화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그런 조건들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형태로부터 분리가능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이 논증은 성립하지 않는다.
'박쥐의 비행'이나 'DNA의 구조'에 대해서는 "기원과학"의 '박쥐의 하이테크 시력,' '신비한 미생물의 세계'에 대해 다룬 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속도의 상한과 온도의 하한,' '에너지 보존,' '우주는 시작과 종말이 있다' 등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설계 논증이라고 보기 어렵다. 법칙들을 가지고 설계 논증을 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방향을 택하고 있지는 않다. '태양과 달의 시각'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주장을 제시하고 있지만 확률에 대한 고려가 없다. 비록 태양과 달의 시각의 일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설계 논증의 구조에서 보면 그것은 별로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 시각의 일치가 어느 정도 확률을 가지며 확률 자원은 어느 정도인지 고려해보지 않는다면 단순히 우연으로 돌려버리는 반론에도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4. 생명의 설계

4.1 생명의 정의
잠시 후 다루게 될 지구의 설계와 우주의 설계에서의 논의를 위해서 생명을 정의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사실 생명의 설계에 대해 다룰 때에는 특별히 따로 정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미 주어진 생명형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창조론 대강좌"의 논증을 살펴보면서 분명해졌지만 지구의 설계나 우주의 설계를 다룰 때는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생명을 정의하여야 하며, 그것도 논의의 수준에 따라 복수의 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미 주어져 있는 생명형태를 '탄소 기반 생명'(carbon-based life)이라고 하자. 생명에 대한 이 개념은 생명의 설계에 대해 논할 때에 적합하다.
한편 지구의 설계에 대해 논할 때에는 탄소 기반 생명의 개념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우리 우주 안에서 가능한 생명형태는 모두 포함하며 임의의 외계인도 포함시킬 수 있는 정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탄소 대신 실리콘에 기반하고 물대신 암모니아로 생활하는 생명체-그런 것이 가능하다면-도 포함시키는 정의가 되어야 한다.
제임스 러브록(James E. Lovelock)은 그의 책 "가이아"의 서론에서 화성에서의 생명을 검출하는 실험에 대해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던 때를 회상하고 있다. 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만약 화성에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어떻게 지구의 생물 스타일에 근거한 실험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까?' 연이어서 그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18] 그는 탐색 끝에 생명을 정의하고자 노력한 몇몇 물리학자들이 유사한 일반 결론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생물이란 개방적 또는 연속성의 시스템으로서 외부 환경으로부터 취한 자유 에너지와 물질을 사용하고, 더불어서 이의 분해 산물을 체외로 배출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부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그러한 양식의 기능을 갖는 구성원들이라는 것이다.'[19] 이것이나 또는 좀더 개선된 형태의 정의로서 우리 우주 안에서 가능한 모든 생명형태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을 택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이것을 정의하느냐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군의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그런 정의가 존재한다고 치고 그 정의에 의해 표현되는 생명을 탄소 기반 생명과 구별하여 '보편 생명'(universal life)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고 싶다.
한편 우주의 설계에 대해 논할 때는 일이 훨씬 복잡해진다. 위에서 정의한 보편 생명도 우주의 설계를 논하는 데는 충분치 않다. 보편 생명도 우리 우주의 법칙들을 따르는 경우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다른 법칙을 가지는 다른 우주에서의 생명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을 다루기에는 부적절하다. 이 경우에 적합한 정의를 구성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지만, 어쨋든 이런 개념의 생명을 탄소 기반 생명은 물론 보편 생명과도 구별하여 '초보편 생명'(ultra-universal life)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렇게 우리가 다루는 설계의 수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생명의 정의를 사용하여야 하며, 생명의 설계, 지구의 설계, 우주의 설계를 다룰 때 차례로 탄소 기반 생명, 보편 생명, 초보편 생명의 개념을 사용하여야 한다.

4.2 다윈의 블랙박스
서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1996년에 "다윈의 블랙박스"가 출판되었다. 베히는 그 책에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닌다는 것은 어떤 단일한 시스템이 기본기능에 관여하는, 서로 잘 들어맞고 상호작용하는 몇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중 어느 한 부분을 제거하면 사실상 그 시스템의 기능이 정지하는 경우를 의미한다.'[20] 그리고 그는 주장하기를 이런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니는 생화학 시스템들은 돌연변이/자연선택 메커니즘을 통해 생성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주장하기를 생명 시스템에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닌 생화학 시스템이 많다고 하였다. 역시 주장하기를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니는 시스템의 기원은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로 설명해야 한다고 하였다.
뎀스키는 '마이클 베히가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한 생화학적 기계들을 가지고 나타낸 것도 CSI이다'[21]라거나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한 생화학적 시스템은 서로 잘 들어맞고 기능을 위해 필요한 많은 요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은 복잡하고 동시에 특정되어있으므로 CSI를 보여준다'[22]라고 썼다. 뎀스키의 글은 마치 베히의 논증이 자기의 것과 동치인 듯한 인상을 주지만, 사실 뎀스키의 논증이 베히의 것보다 더 향상된 것이다.
먼저 베히의 논증은 돌연변이/자연선택 메커니즘만을 고려에 넣고 다른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생성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뎀스키의 논증은 모든 자연적인 과정을 배제한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정의하는 데에 있어서도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의 책이 출판된 이래 어떤 시스템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니는가 하는 데에 대해 계속해서 혼동이 있어왔다.
반면에 베히의 논증이 뎀스키의 것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바로 실제 시스템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베히의 언명은 아직 소박한(naive)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좀 더 엄밀한 논리적 구조로 다듬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4.3 논쟁의 한 예
베히의 논증이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최근에 있었던 논쟁을 하나 소개하려 한다.
니얼 섕크스(Niall Shanks)와 칼 조플린(Karl H. Joplin)은 최근 한 논문에서 베히의 논증에 반대하여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 )의 결과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생성될 수 있으며, 실제 생화학 시스템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아니라 과잉 복잡성(redundant complexity)를 지닌다고 주장하였다.[23] 섕크스와 조플린은 벨루소프-자보틴스키(Belousov -Zhabotinski) 반응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베히의 기준을 만족시키지만 자기조직화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베히는 반박하는 논문을 썼다.[24] 이 논문에서 베히는 BZ-반응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의 정의를 만족시킨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BZ-반응은 그의 정의에서 '잘 들어맞고'(well-matched)라는 어구를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더 중요하게 베히는 자기조직화가 설명하는 것은 시스템의 행동(behavior)이지 그 기원(origin)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편 과잉 복잡성에 대해서는 섕크스와 조플린이 제시한 예에 대해서는 그 시스템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과잉 복잡성을 지녔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모든 생화학 시스템이 과잉 복잡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며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니는 시스템 역시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히의 반론이 대체로 옳으며 섕크스와 조플린의 주장은 베히의 원래 주장을 뒤엎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베히의 원래 논증의 약점이 다소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베히는 처음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정의할 때 '잘 들어맞'(well-matched)는다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섕크스와 조플린의 혼동은 당연한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베히의 정의의 모호한 점이다.
한편 베히의 원래 논증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처음부터 모든 요소들이 다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윈식의 점진적인 과정으로는 생성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그 논증은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비록 어떤 시스템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니고 있어서 직접적으로 생성될 수 없다 하더라도,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경로로 생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25]고 그는 쓰고 있다.
즉 베히의 논증은 그 구조상 자기조직화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베히는 그의 책에서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fman)과 복잡성이론(complexity theory)에 대해 별도로 언급해서 처리하였다. '복잡성이론 지지자들이 아직도 그 이론을 실제 생명현상과 연관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잡성이론의 주요 연구분야인 인공생명은 사실과 무관한 과학(fact -free science)이다,' '복잡성이론은 우리가 이 책에서 다루어 온 복잡한 생화학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복잡성이론은 미리 존재하고 이미 기능하는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복잡성이론은 생명을 뒷받침하는 복잡한 생화학 구조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복잡성이론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26]는 식으로 쓰면서 복잡성이론과 자기조직화를 배제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런 접근은 복잡성이론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는 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쨋든 베히의 중심논증은 이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베히의 논증은 개선되어야 한다. 정량화되어야 하고 엄밀한 정의를 사용해야 한다. 주어진 시스템에 포함된 생물학적 정보의 양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하며 분리가능성을 엄밀히 검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베히의 아이디어는 더욱 강력한 논증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5. 지구의 설계

5.1 논증의 구조
지구에 대한 설계 논증은 '지구는 생명에 적합하게 잘 조절되어있다'는 주장을 그 핵심으로 하게 된다. 이런 논증을 펴기 위해서는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생명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보편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이 지구에 대한 설계 논증을 위해 첫 번째로 해야할 일인데 이때 보편 생명은 지구의 특질과 무관하게, 즉 분리가능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지구가 생명에 적합하게 잘 조절되어있다는 주장을 하면 흔히 돌아오는 대답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크거나 무한한 우주에서 지적 생물이 발달하기에 필요한 조건은, 오직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한정된 특정한 구역에서만 충족된다. 그러므로 이런 구역의 지적 생물은 우주 안에서 그의 고장이 그의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것을 관측해도 놀라울 것이 없다.'[27] 즉 지구가 생명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주는 넓기 때문에 어딘가에 생명에 적합한 행성이 있을 것이며 거기에서 탄생한 우리와 비슷한 지적인 생명체는 자기 행성이 생명에 놀랍도록 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확률자원을 고려해야 한다. 우주의 역사상 존재해왔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행성의 개수를 N이라고 하자. 이것이 10150보다 작다는 것은 명백하다. 임의의 행성이 생명-물론 보편 생명-에 적합할 확률이 1/N보다 작다면 지구가 설계되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따라서 관측자료로부터서나 이론적인 예측으로부터서나 N의 값을 추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확률계산이다. 이것만 이루어지면 논증을 이루는 작업은 끝난다. 그렇지만 확률을 계산하는 작업이 만만치가 않다.

5.2 확률 계산하기
확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에, 그러니까 보편 생명에 적합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온도에 대해 생각해보면 보편 생명이 견딜 수 있는 온도범위가 어느 정도일지 또는 보편 생명이 견딜 수 있는 온도범위가 어느 정도일지 추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쉬운 작업이 아니다.
보편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인바, 보편 생명을 구체적으로 정의할수록 위의 작업은 다소 쉬워질지 모르나 분리가능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지며, 일반적으로 정의할수록 분리가능성 문제는 더 쉽게 피할 수 있겠지만 위의 작업을 수행하기 힘들 것이다. 보편 생명을 정의할 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작업을 한 후에는 관측자료나 이론적인 예측을 토대로 하여 실제 분포를 추정하여야 한다. 즉 예를 들면 행성들의 평균온도가 어떤 분포를 이루는지 추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보편 생명에 적합한 온도를 가질 확률을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여러 항목들에 대해 각각 확률계산을 한 다음 그 계산 값들을 취합한다. 그 각각의 확률이 모두 독립적이라면 단순히 곱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관관계를 고려하여 적절하게 계산하면 될 것이다.

5.3 정리와 덧붙일 말
정리하자면 지구의 설계를 논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처음에는 무엇보다도 보편 생명을 정의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가능한 행성의 수 N을 추정한다. 그 다음 행성이 보편 생명에 적합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정량적으로 결정한다. 다음으로 행성의 각 특질에 대해 분포를 구한다. 마지막으로 확률을 계산한다. 보편 생명의 정의와 고려한 행성의 특질들이 서로 분리가능하고 계산된 확률이 1/N보다 작다면 지구는 설계되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확률값이 10-150보다도 작다면 N을 구하지 않고도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앞의 2.3에서 문제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논하였거니와 지구의 설계를 논증하는 데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문제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생명의 정의의 어떤 부분과 행성의 특질 중 어떤 부분이 분리가능하지 않을 경우에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한 방법은 그 부분을 보편 생명의 정의에서 제외하는 것이며 또 한 방법은 그 부분을 확률계산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이 두 방법 중 어느 것을 택해도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부분을 확률계산에서 제외하면 그만큼 확률이 커지는 반면 보편 생명의 정의에서 그 부분을 제외하면 보편 생명에 적합한 경우의 폭이 커져 역시 확률이 커질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확률이 최소가 되는 방법으로 문제를 구성하도록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6. 우주의 설계

6.1 어려움들
뎀스키는 그의 책 "지적 설계"의 서문에서 '우주 전체가 설계되었느냐 하는 것보다는 이미 주어진 우주 안에서 우리가 설계를 탐지할 수 있느냐 하는 데에 초점을 맞'[28]출 것이라고 썼다. 이어서 그는 '설계는 우주론에서도 중요한 쟁점이지만, 지적 설계 운동의 초점은 생물학에 대한 것이다. 거기서 주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29]고 쓰고 있다. 왜 지적 설계 이론가들은 주로 생물학에 초점을 맞추고 우주 전체의 설계는 잘 다루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우주의 설계를 다루려면 해결해야 할 어려움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 어려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초보편 생명을 정의하는 어려움이다. 이는 보편 생명을 정의하는 것보다 한 단계 어려운 작업이다. 예를 들면 엔트로피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어떤 우주에서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몹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확률자원도 문제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인플레이션 이론을 들어 다른 우주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우주의 개수는 몇 개일 것인가? 알 수 없다. 만일 무한하다면 설계 논증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매우 다채로운 우주가 무한하게 존재한다면 어떤 일도 가능해진다.'[30] 앞에서 언급하였던 10-150의 확률은 이 경우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확률계산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우주의 법칙들과 상수가 어떤 형태가 될 확률이 얼마인지 무엇에 근거해서 계산할 것인가? 현재 우리 우주의 법칙에 근거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고 주어져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설계 논증을 펼 수가 없다. 도무지 배경 정보가 없으면 설계 추론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우주가 미세 조정(fine-tuning)되어 있다는 사실이 수 십년 전부터 주목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적 설계 이론가들이 우주의 설계를 강하게 주장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러한 난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6.2 간접적인 논증
그렇지만 지적 설계 이론가들이 전적으로 이 주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마이어(Stephen C. Meyer)는 "물리학과 생물학 안의 설계에 대한 증거: 우주의 기원에서 생명의 기원까지"라는 논문의 전반부에서 우주의 설계를 다루고 있다.[31] 그는 거기서 간접적인 논증을 폈다.
마이어는 먼저 미세 조정된 우주의 복잡성과 특정성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상식적인' 해석에 대해 말한다.[32] 그는 설계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대신 다른 설명들에 주목하고 그것들을 반박하고자 한다. 그는 먼저 다른 설명으로 (1) 미세 조정이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거부하는 약한 인류학적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 WAP), (2) 법칙에 기반한 설명, (3) 우연에 기반한 설명을 나열한 다음 (1)과 (2)를 간단히 처리해 버린다.[33]
우리 우주가 얼마나 있을 법하지 않은가를 설명한 다음 마이어는 비로소 우주가 여러 개 있다고 주장하는 설명을 소개한다. 이 설명이 지적 설계라는 설명에 대한 유일한 라이벌이다. 다른 우주는 정의에 의해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접촉할 수 없고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것에 대해서 논하기는 어렵다.
그 다음에 마이어는 설계 모델과 다중 우주 모델을 나란히 놓고 어느 것이 더 좋은 설명인지 비교해본다. 그는 설계 모델이 더 좋은 설명이라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다음 네 가지를 제시한다. (1) 여러 우주가 있으려면 우주제조기(universe generator)가 필요한데 이것의 기원을 또 설명해야 한다. (2) 설계 모델은 다중 우주 모델과는 달리 우리가 이미 아는 것으로부터 외삽(extrapolation)하여 얻을 수 있다. (3) 다중 우주 모델을 위해서는 완전히 임의적이고 거의 무한한 우주를 생성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제안된 여러 우주를 이야기하는 어떤 이론도 완전히 임의적이고 거의 무한한 우주를 허용하지 않는다. (4) 설계 모델은 다중 우주 모델보다 더 간단하고 덜 임시변통적이다.[34]
이런 구조의 논증은 뎀스키의 논리보다 힘이 없기는 하지만 우주의 설계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다중 우주 모델이 아직 별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6.3 추가적인 논의
2.3에서 논한 바와 같이 문제를 구성하는 방법이 어려움을 덜어줄 수도 있다. 무엇이 주어진 것이고 무엇이 설계되었는지 살펴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법칙이 설계되었는지 살펴보려 할 때 법칙 전체를 도마 위에 올려놓으면 생각을 전개시키기가 어렵다. 따라서 법칙의 체계 자체는 주어진 것으로 보고 다만 상수와 매개변수의 값만이 변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 값들이 설계를 보여주는지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구성하고 보면 주어진 법칙의 체계에 기준해서 초보편 생명을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상수와 매개변수 값에 대한 확률분포를 알아야한다. 우주 제조기에 대한 모델이 있다면 이 확률분포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고 확률을 계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끝까지 문제가 되는 것은 확률자원이다. 그것이 다중 우주 모델의 핵심이며 설계 논증을 펴는데에 있어서 중심적인 어려움이다. 좀 전에 인용했듯이 '만약 매우 다채로운 우주가 무한하게 존재한다면 어떤 일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여기서는 확률자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내거나 아니면 간접적인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 먼저 생명의 설계와 지구의 설계를 논증한 다음 우주의 설계로 외삽(extrapolation)하는 것이 가장 유력해 보이는 방법이다. 이것이 지적 설계 이론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전략인 것 같다. 그렇기는 하지만 다중 우주 모델은 생명의 설계나 지구의 설계에 대한 논증에도 영향을 미쳐 확률자원을 극적으로 늘려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설계 논증은 다중 우주 모델과의 충돌을 피할 수가 없는데, 다른 우주는 정의에 의해서 직간접적으로 관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으로 과학적 논쟁의 형태보다는 과학철학적 또는 철학적 논쟁이 될 것이다.

7. 결 론

지적 설계는 법학자인 필립 존슨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과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였지만 탁월한 철학적 분석으로 지적 설계의 기초를 놓았다.[35] 그가 제시한 비전에 답하여 베히는 생화학적 시스템의 설계를 주장하였고 뎀스키는 엄밀한 설계 추론의 논리를 개발해내었다.
본 논문은 뎀스키가 제시한 논리의 빛에 비추어 기존의 설계 논증을 살펴보고, 생명의 설계, 지구의 설계, 우주의 설계를 그 틀에서 논증하는 구조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생명의 설계는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분야로 베히의 기여로 큰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미진하다는 것을 보였다. 베히의 "다윈의 블랙박스"는 뎀스키의 "설계 추론"보다 시간적으로 앞서서 씌여진 책이므로 뎀스키의 논리에 따라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량적이고 엄밀한 논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구의 설계를 논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연구가 필요함을 보였다. 보편 생명을 정의하고 그에 적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량적으로 결정하는 연구, 가능한 행성의 수와 행성의 특질이 어떤 분포를 이루는지에 대한 연구가 그것들이다. 이런 연구가 이루어지면 얻어진 확률값에 따라서 지구의 설계를 논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주의 설계를 논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주도 설계의 특징적인 표지들을 보여주지만 주로 경쟁이론인 다중 우주 모델에 의해 터무니없이 확장된 확률자원 때문에 논증을 성립시키기가 어려웠다. 여기서 다시 논의는 철학쪽으로 비약하게 된다. 다중 우주 모델에 대한 과학적, 과학철학적, 철학적 비평에 대한 연구가 또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지적 설계를 입증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다. 지적 설계를 입증하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본 논문은 그 자체로의 의미보다는 여기서 제시한 후속 연구들이 뒤따라올 때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후속 연구를 함에 있어서 지적 설계되었다고 믿는 편견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그런 편견을 갖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논증에 영향을 가능한 한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원리는 스스로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가장 쉽게 속을 수 있는 사람이므로 이 점에 매우 유의해야 합니다'[36]라는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의 조언처럼 스스로 속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

참고문헌

[1] Richard Dawkins, 과학세대 역, "눈먼 시계공," 민음사, 1994, pp. 20-21. 다음에서 더 자세한 인용문을 볼 수 있다. Michael J. Behe, 김창환 외 역, "다윈의 블랙박스," 풀빛, 2001, pp. 294-295.
[2] Phillip E. Johnson, 이수현 역, "심판대 위의 다윈, 과학과 예술, 1993, p. 202.
[3] 이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모든 글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4] Michael J. Behe, 위의 책.
[5] 그 내용은 다음 책을 참조하라. ed. by William A. Dembski, "Mere Creation," IVP, 1998.
[6] William A. Dembski, "The Design Infere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7]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6]의 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좀 더 자세한 리뷰는 다음을 참조하라. 김창환, "The Design Inference," 제2회 NOAH 학술모임 자료집, pp. 59-70.
[8]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William A. Dembski, "Intelligent Design," IVP, 1999. 의 6장 내용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창조과학 연구회의 번역으로 한국 IVP에서 역간 예정이다.
[9] William A. Dembski, "The Design Inference," p. 90, p. 107. pow(S)는 S의 powerset을 의미한다.
[10] 한국창조과학회 편, "기원과학," 두란노, 1999, pp. 201-234.
[11] 위의 책, p. 202.
[12] 위의 책, p. 220.
[13] 위의 책, p. 214, p. 218.
[14] 위의 책, p. 219.
[15] 위의 책, p. 218.
[16] 양승훈, "창조론 대강좌," CUP, 1996, p. 47.
[17] 위의 책, p. 48, p. 52, p. 55, pp. 59-60.
[18] James E. Lovelock, 홍욱희 역, "가이아," (주)범양사 출판부, 1990, p. 21.
[19] 위의 책, p. 24.
[20] Michael J. Behe, 위의 책, p. 68.
[21] William A, Dembski, "Intelligent Design," p. 159.
[22] 위의 책, p. 177.
[23] Niall Shanks & Karl H. Joplin, "Redundant Complexity: A Critical Analysis of Intelligent Design in Biochemistry," Philosopy of Science 66: 268-282.
[24] Michael J. Behe, "Self-Organization and Irreducibly Complex Systems: A Reply to Shanks and Joplin," Philosophy of Science 67: 불행하게도 페이지를 알지 못한다. 이 논문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25] Michael J. Behe, "다윈의 블랙박스," p. 68.
[26] 위의 책, pp. 263-267.
[27] Stephen Hawking, 현정준 역, "시간의 역사," 삼성이데아, 1988, p. 188.
[28] William A, Dembski, "Intelligent Design," p. 13.
[29] 위의 책, p. 14.
[30] John Gribbin & Martin Rees, 오근영 역, "우주 진화의 수수께끼," 푸른미디어, 1999, p. 311.
[31] Stephen C. Meyer, "Evidence for Design in Physics and Biology: from the Origin of the Universe to the Origin of Life," The Proceedings of the Wethersfield Institute vol 9.; Sience and Evidence for Design in the Universe, Ignatius Press, 2000, pp. 53-111.
[32] 위의 논문, p. 58.
[33] 위의 논문, pp. 58-60.
[34] 위의 논문, pp. 62-6.
[35] 그의 철학적 분석은 다음 책들을 참고하라. Phillip E. Johnson, "심판대 위의 다윈." Phillip E. Johnson, 양성만 역, "위기에 처한 이성," IVP, 2000. Phillip E. Johnson, 과기원 창조론 연구회 역, "다윈주의 허물기," IVP, 2000.
[36] Phillip E, Johnson, "다윈주의 허물기," p. 54.



   미국의 지적설계 논쟁과 핵심 이슈들 (이승엽)

ID
2006/01/18

   15가지 지적 설계 연구 주제 (윌리엄 뎀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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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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