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설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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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01: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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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설계 (윌리엄 뎀스키)

과학과 설계
Science and Design

http://www.discovery.org/viewDB/index.php3?program=CRSC&command=view&id=62

윌리엄 뎀스키
번역 : 김영식

갈릴레오와 뉴턴의 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교체했을 때, 과학자들은 세상을 결정론적인 자연 법칙들에 의해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 후에 보어(Bohr)와 하이젠버그(Heisenberg)의 양자 물리학이 갈릴레오와 뉴턴의 물리학을 대체했을 때, 과학자들은 우주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속에 우연적인 과정에 대한 부분을 집어 넣어서 그들의 결정론적인 자연 법칙을 보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연과 필연"---자크 모노(Jacques Monod)가 만든 유명한 문구를 사용하자면---은 그래서 과학적인 설명의 경계를 세웠다.

그러나 오늘날 우연과 필연만으로는 모든 과학적인 현상들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하 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버려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과거의 목적론, 생명력(entelechies), 생기론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세 번째 설명 양식, 즉 지적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를 여전히 볼 수 있다. 우연, 필연 그리고 설계 -- 이 설명의 세 가지 양식들은 과학적인 현상의 모든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들이, 지적 설계를 제외시키는 것을 인위적으로 과학을 제약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다윈주의자인 리처드 도킨드(Richard Dawkins)는 그의 책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을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시작했다. "생물학은 겉으로는 목적을 가지고서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것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와 같은 문장들이 생물학 관련 문헌들 속에서 반복된다. 노벨상을 받았고 DNA 구조의 공동발견자인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What Mad Pursuit]에서 "생물학자들은 그들이 보는 것이 결코 설계된 것이 아니라 진화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썼다.

생물학계에서는 자연에서 존재하는 겉으로 설계된처럼 보이는 것들이 무작위적인 돌연 변이와 자연 선택이라는 다윈주의적인 기작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올바로 인식 해야할 점은 자연에서 겉으로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생물학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실제적으로 설계를 반대하는 성공적인 과학적 논증을 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 이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한 주장이 과학적으로 반증가능성이 있기 위해서는, 그것은 사실일 것 같은 가능성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논박은 양날을 가진 칼이다. 과학적으로 논박된 주장은 아마도 틀릴 것이지만 그들은 반드시 틀린 것은 아 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다룰 수 없는 것들이다.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자. 만일 미시세계를 조사한 결과 모든 세포에 "야훼가 만 듬(Made by Yahweh.)"라고 새겨져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자. 물론 세포는 "야훼가 만듬"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우리가 실제로 현미경을 통해서 세포를 살펴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포에 그렇게 새겨져 있다면, 과학자로서 그 사람은 세포가 실제로 야훼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즐겁게 수용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설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설계가 생물학에서 살아있는 대안으로 항상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시인한다. 설계에 대해서 미리 금지해 놓는 것은 철학적으로 봤을 때 순진한 짓이고 쉽게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지만 일단 설계가 논증없이 과학에서 제외 될 수 없다고 시인하더라도 더 큰 문제가 남아 있게 된다.: 어째서 우리는 설계가 과학으로 인정되기를 원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 거꾸로 질문을 해보도록 하자. 어째서 우리는 설계가 과학으로 인정되기를 원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어떤 것을 지적인 원인(agent)에 의해서 설계된 것으로서 설명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설계에 의존해서 설명하는 사건들이 분명히 많이 존재한다. 게다가 우리의 평범한 삶속에서 우연적인 것을 의도적인 것과 구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될 때가 있다. 그녀가 뛰어내린 것인가 아니면 밀려서 떨어진 것인가?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인가 아니면 자살한 것인가? 이 노래가 독립적으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인가 아니면 표절한 것인가? 누군가가 단지 운좋게 주식시장에서 행운을 얻은 것인가 아니면 내부 거래가 있었던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답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산업들이 우연과 설계사이의 구분을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여기에는 법의학(forensic science), 지적 재산 법, 보험 청구 조사, 암호학, 그리고 난수 발생 등등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과학 스스로의 정직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이러한 구분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바로 지난 1월에 Science지에 올라온 기사가 하나 있었다. "1991년에 Zentralblatt fur Gynakologie 지에 나온 논문이 1979년에 Journal of Maxillofacial Surgery에 실린 논문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의학문헌 웹 검색(Medline websearch)이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표절과 자료 왜곡은 우리가 허용할만한 수준 이상으로 과학에서는 보다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한 악습을 검사해서 막는 것은 그것을 구분해 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다.

설계가 과학 외부의 영역에서 쉽게 검출될 수 있다면, 그래고 검출가능성이 과학자들의 정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라면, 어째서 설계가 과학의 내용으로부터 제외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어째서 도킨스(Dawkins)와 크릭(Crick)은 생물학 연구가 단지 겉으로만 설계된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는 설계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연구라는 것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한다고 느끼는가? 왜 생물학은 설계된 것들에 대한 연구가 될 수 없는가?

그런 질문들에 대한 생물학계의 반응은 절대적으로 설계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걱정은 자연물(사람이 만든 인공물과는 다른)은 설계과 비설계 사이의 구분이 쉽게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다윈이 그의 책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의 결론부에서 했던 다음의 말을 생각해 보자. : "몇몇 유명한 자연주의자들이 최근에, 각각의 속(genus)에 속한 종(species)으로 여겨졌던 수많은 종들은 진정한(real) 종이 아니지만, 다른 종들은 진정한 종이라는, 즉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그들의 믿음을 나타낸 문헌을 출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떤 것이 창조된 생물이고 어떤 것이 이차적인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그들이 정의할 수 있다고, 또는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한 경우에서는 vera causa(이미 알려진 다른 원인들과 조화를 이루는 원인:옮긴이)로서의 변이를 수용한다. 그들은 그것을 다른 경우에서는 임의대로 거부한다. 두 가지 경우에 대해서 어떠한 구분도 하지 않는 채로 말이다." 생물학자들은 그것이 나중에는 뒤집힐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설계(여기서는 창조와 동일한 의미)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 걱정한다. 이러한 널리 퍼진, 그리고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는 걱정이 지적 설계를 유효한 과학적인 설명으로서 사용하는 것을 막아왔다.

그러나 과거에는 아마도 이런 걱정이 정당화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걱정은 더이상 유지될 수 없다. 지금은 지적인 원인을 갖는 물체를 지적이지 않은 원인을 갖는 것과 구분하기 위한 위한 엄격한 기준---복잡성과 특수화이라는---이 존재한다. 비록 선이론적인 (pretheoretic) 형식(즉, 법의학, 인공지능, 암호학, 고고학, 그리고 외계지성 탐사)이기는 하지만 많은 특정한 종류의 과학들이 이미 이러한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과학철학과 최근의 확률 이론에서의 커다란 발전은 이 기준을 다른 것들과 구분시켰으며 보다 정밀하게 다듬었다. 생화학 체계안에 설계를 도입하기 위한 마이클 베헤(Michael Behe)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이라는 기준은 설계를 간파하기 위한 복잡성-특수화 기준의 특별한 경우이다.(베헤의 책 [다윈의 블랙 박스(Darwin's Black Box)]를 참고하라)

이 기준은 어때 보이는가? 자세한 설명과 증명은 매우 전문적이기는 하지만(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나의 책 Design Inference(Cambridge University Press) 를 참고하라) 기본 적인 아이디어는 직접적이고 쉽게 예증 된다. 영화 [접촉(Contact)]에 나오는 전파 천문학자들이 외계 지성체를 어떻게 발견하는지 생각해 보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최근에 나온 이 영화는 SETI---외계지성 탐사(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연구 프로그램을 선전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영화에서 SETI 연구원들은 외계지성을 찾았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서의 연구자들은 그렇게 성공적이진 못하다.)

그렇다면 [접촉]에서 SETI 연구원들이 어떻게 외계 지성체를 찾았는가? SETI 연구원들은 외부 우주에서 날라오는 수 백만 개의 전파 신호를 관찰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많은 자연적인 물체(예를 들어 펄사---중성자별)는 전파 신호를 만든다. 그러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전파 신호들 중에서 설계의 표지를 찾는 것은 건초더미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과 같다. 이 건초 더미를 채(sift)로 치면서, SETI 연구원들은 그들이 모니터한 신호를 패턴을 맞춰보도록 프로그램된 컴퓨터에서 입력시켰다. 신호가 미리 조직된 패턴들 중 어느 한 개에 맞지 않는다면, 그 신호가 지적인 원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신호는 패턴 맞추는 채를 지나가 버리게 된다. 반면에 그 신호가 그 패턴들 중 어느 하나와 배합된다면 그 때는 SETI 연구원들은 축하할 일이 생긴 것이다.

Contact에서 SETI 연구원들은 다음과 같은 신호를 찾았다 :

110111011111011111110111111111110111111111111101111111111 1111111011111111111111111110111111111111111111111110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0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0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0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0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0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0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0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0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0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0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0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0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0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10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0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이러한 1126개의 숫자의 배열에서 1은 하나의 펄스에 해당되고, 0은 펄스가 없는 정지 상태에 해당된다. 이 숫자열은 2에서 101까지의 소수(양의 약수 중에서 1과 자기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수)를 나타난다. 여기서 주어진 소수는 펄스(즉 1)의 개수로 나타냈고, 각각의 소수들은 정지(즉, 0)에 의해 구분되었다.

Contact에서 SETI 연구원들은 이 신호를 외계지성에 대한 결정적인 확증으로 여겼다. 과연 어떤 것이 이 신호가 설계에 의한 것임을 결정적으로 나타내는 것인가?

우리가 설계를 추론할 때는 언제든지 우리는 복잡성(complexity)과, 특수화(specification) 이 두 가지를 확립해야 한다. 복잡성은 문제의 그 물체가 너무 단순해서 우연을 통해서도 쉽게 설명되지 못하게 만든다. 특수화는 이 물체가 지성의 표시로서의 패턴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증한다.

왜 복잡성이 설계를 추론하기 위해서 결정적인지를 보기 위해서 다음의 2진수의 배열을 살펴보자.

110111011111

이것은 먼저번의 숫자열에서 처음 12 비트에 해당되고, 각각 소수 2, 3, 5를 나타내고 있다. 그 어떤 SETI 연구원들도 이 12비트의 숫자열을 만났다고 해서 New York Times의 과학부 편집장과 만나려하고, 기자회견을 열어서 외계 지성을 발견했다고 알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 라는 것에 대해서 내기를 걸어도 좋다. "외계인이 처음 세 개의 소수를 알고 있다"라는 머릿기사는 결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숫자열이 너무나 짧아서(즉, 너무 작은 복잡성을 갖고 있어서) 소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외계 지성체가 그것을 만들었다고 확증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무작위적으로 요동치는 전파원은 우연에 의해서 숫자열 "110111011111"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126 비트의 숫자열이 2부터 101까지의 소수를 나타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여기서 그 숫자열은 충분히 길어서(즉, 충분한 복잡성을 갖고 있어서) 외계지성이 그것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증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복잡성 그 자체로서는 우연을 제거하고 설계를 나타내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내가 동전을 1000번 던진다고 할 때 나는 나는 매우 복잡한 사건(또는 그와 똑같은 것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 결코 있을 것 같지 않은)을 만든 것이다. 실로 내가 던지는 숫자열들은 1조의 1조의 1조의......(1조를 22번 더 해야 하기 때문에 생략이 필요하다.) 분의 1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 동전을 던진 결과 나온 배열에서는 설계를 추론하지 못한다.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이 숫자열은 충분한 패턴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에 서 101까지의 소수를 나타내는 숫자열은 이와는 반대이다. 영화 Contact에서 이 숫자열을 발견한 SETI 연구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것은 잡음이 아니다, 이것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설계를 추론하기에 적합한 패턴은 무엇인가? 어떤 패턴이라도 설계를 추론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패턴들은 설계를 추론하도록 하는데 적합하지만 다른 것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여기에 기본적인 직관을 쉽게 보여주는 예가 있다. 손에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한명의 궁수가 거대한 벽으로부터 55미터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궁수가 그 벽을 맞추지 못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 벽이 충분히 크다고 하자. 매번 궁수가 그 벽에 화살을 쏘았고, 그후에 그 궁수는 화살이 과녁에 정확하게 들어가도록 화살 주위에 표적을 그렸다. 이 시나리오부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분명히 궁수로서의 궁수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결론내릴 수 없다. 그렇다. 한 패턴이 맞았지만 그 패턴은 화살이 쏘아진 후에 고정되었다. 그래서 그 패턴은 순수하게 임기응변의 것이다.

그러나 그 궁수가 고정된 표적을 벽에 그리는 대신에 화살을 그 표적에 쏜다고 생각하 자. 궁수는 백발의 화살을 쏘았고 매번 과녁에 정확하게 맞았다. 이 두 번째 시나리오로부터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이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단지 운이 좋았다는 것만으로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고, 그 궁수의 능력과 숙련도에 의해서만 설명할 수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궁수가 있다는 추론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능력과 숙련 도는 물론 설계의 증거이다.

처음에 표적을 고정시키고, 그리고 그 표적에 화살을 쏜 궁수처럼 통계학자들은 기각영역(rejection region)으로 알려진 것을 시행하기 전에 정해 놓는다. 시행의 결과가 기각영역에 떨어진다면 통계학자들은 결과가 우연 때문이라는 가설을 기각한다. 그 패턴은 설계를 함축하는 사건보다 먼저 주어질 필요가 없다. 다음과 같은 암호문을 살펴보자:

nfuijolt ju it mjlf b xfbtfm

처음에 이것은 문자와 빈칸(space)의 무작위적인 배열로 보인다. 처음에는 당신이 우연을 기각하고 설계를 추론하기 위한 어떤 패턴도 부족하다. 그러나 다음에 누군가가 와서 당신에게 이 문자열을, 각각의 문자를 하나의 알파벳으로 바꾸는 [Caesar 암호]로서 다루는 법을 말해 주었다고 가정하자. 보라, 그 문자열은 이제 다음과 같이 읽혀진다.

methinks it is like a weasel

어떤 사실이 먼저 있은 다음에 패턴이 주어졌지만 그것은 여전히 우연을 제거하고 설계를 추론하도록 하는 정상적인 패턴의 종류이다. 실험이 수행되기 전에 그 암호의 패턴을 알아내려고 언제나 노력하는 통계학에서와는 반대로, 암호해독에서는 사실이 있은 다음에 그 패턴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러나 두 가지 예에서 그 패턴들은 설계를 추론하기에 적합했다.

패턴들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설계에 대한 추론을 보장해주는 복잡성이 있는 것과 복잡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계를 추론하는 것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 첫번째 패턴의 형태를 특수화(specification)라고 부르고 두번째 것을 위조물(fabrication)이라고 부른다. 특수화는 임기응변적이지 않은(non-ad hoc) 패턴이고, 우연을 제거하고 설계에 대한 추론을 보장해주도록 적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반대로 위조물은 임기응변적인 패턴들이고 설계에 대한 추론을 보장해주도록 적절하게 사용될 수 없다. 특수화와 위조물에 대한 이런 구분은 통계적인 엄격함을 가지고서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 (필자의 [The Design Inference]를 참고하라.)

왜 복잡 특수 기준은 믿을만하게 설계를 발견해 내는가? 그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처 음에 그들을 발견가능하게 만든 지적인 행위자에 대해서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지적인 행위자의 주된 특징은 선택이다. 지적인 선택제가 행동할 때는 언제나 경쟁하는 여러 가능성들의 범주안에서 선택을 한다.

이것은 단지 인간과 외계지성에 대해서만 사실이 아니라 동물들에게 또한 사실이다. 미로를 헤메는 쥐는 미로의 다양한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가야할 지, 왼쪽으로 가야할 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SETI 연구원들이 그들이 관찰하고 있는 전파 속에서의 지성체를 발견하려고 시도할 때, 그들은 외계지성이 가능한 패턴의 어떠한 개수를 보내기로 선택했을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서 그들이 보고 있는 전파신호와 그들이 찾고 있는 패턴을 맞추려고 시도한다.

인간이 의미있는 말을 할 때는 언제나, 그는 말할 수 있는 소리의 조합의 범위내에서 선택한다. 지적인 행위자는 항상 어떤 특정한 것은 선택하고, 다른 것들은 배제시키는 등의 판단(discrimination)을 필요로 한다.

지적인 행위자에게 이러한 특징을 부여한다면, 우리가 어떤 한 지적인 행위자가 어떤 특정한 선택을 했었는지를 어떻게 알아보는가? 잉크 병이 우연히 종이 위에 엎질러 진다. 누군가가 잉크통에서 펜을 들어서 종이 위에 메세지를 남긴다. 두 가지 예에서 잉크는 종이에 사용되었다. 두 가지 예에서 모두 무한한 가능성의 집합에서 한 가지가 실현되었다. 두 가지 예에서 모두 하나의 우연성이 실현되었고 나머지는 배제되었다. 그러나 어떤 한 예에 대해서 우리는 행위자에게 원인을 돌리고, 다른 예에 대서는 우연에 원인을 돌린다.

이와 관련된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연성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관찰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 우연성을 특수화할 수 있어야 될 필요 또한 있다. 그 우연성은 주어진 패턴을 독립적으로 따라야만 하고 우리는 그 패턴을 독립적으로 명확히 나타낼 수 있어야만 한다. 무작위적인 잉크 얼룩은 특수화할 수 없다. 잉크로 종이에 메세지를 쓰는 것은 특수화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문화와 가치(Culture and Value)]에서 동일한 것을 지적했다. "우리는 발음이 분명하지 않은 소리로 중국어를 말하기 쉽다. 그러나 중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가 듣는 것에서 언어를 인식할 것이다."

중국어로 대화를 들을 때 중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모든 가능한 소리의 범위로부터 하나가 실현되었다는 것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그는 상응하는 중국어 발음으로 그 대화를 구분지을 수 있다.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은 정반대이다. 그는 가능한 소리의 범위에서 하나가 실현되었다는 것은 인지할 것이지만, 이 때에 그가 중국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는 그 말이 상응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다.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말은 횡설수설(gibberish)로 나타날 것이다. 횡설수설---어떠한 자연 언어의 범위 안에서 의미없고 해석할 수 없는 음절들의 말---은 언제나 가능한 말의 범위에서 한 가지 말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떠한 언어를 가지고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횡설수설 마저도 특수화 시킬 수는 없다. 그 결과, 뜻모를 횡설수설은 지적인 의사소통에서는 선택되지 않는다. 단지 비트겐슈타인이 "발음이 분명치 못한 말(inarticulate gurgling)"로 부르기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동물의 학습과 행동을 연구하는 실험 심리학자도 유사한 방법을 택한다. 어떤 작업을 배우기 위해서 동물은 그 일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제거시킬 수 있는 능력 뿐만 아니라 그 일에 적합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어야만 한다. 게다가, 동물이 그 작업을 배웠다는 것을 심리학자가 인식하기 위해서는 동물이 적법한 판단을 한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동물의 판단을 특수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쥐가 성공적으로 미로를 통과하는 방법을 배웠는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위 해서 심리학자는 쥐를 미로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는, 오른쪽 회전과 왼쪽의 회전의 시퀀스를 먼저 특수화해야만 한다. 당연히 무작위적으로 미로를 돌아다니는 쥐 역시 오른쪽과 왼쪽 회전의 어떤 한 시퀀스를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미로를 무작위적으로 돌아다니는 것으로는 미로를 빠져 나가기 위해 필요한 오른쪽과 왼쪽의 시퀀스를 그 쥐가 구분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 결과 쥐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는 그 쥐가 미로를 통과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도 없게 된다. 심리학자에 의해서 특수화된 오른쪽과 왼쪽의 시퀀스를 수행하는 쥐만이 심리학자가 그 쥐가 미로를 빠져나가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구분 할 수 있게 만든다.

여기에서도 또한 복잡성은 절대적이다. 이것을 보기 위해서 미로, 그것도 쥐가 미로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두 번만 오른쪽으로 돌면 되는 아주 간단한 미로를 탐색하는 쥐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쥐가 미로를 빼져 나가는 것을 배웠는지 아닌지를 쥐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는 어떻게 결정하는가? 단지 쥐를 미로속에 넣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미로는 너무 간단해서 그 쥐는 우연에 의해서도 두 번 오른쪽으로 돌아서 그래서 미로를 빠져 나갔을 수도 있다. 심리학자는 그래서 그 쥐가 실제로 이 미로를 빠져 나가는 것을 배웠는지 아니면 단지 운이 좋아서였는지에 대해서 단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내 반대로 이제는 쥐가 미로를 빠져 나가기 위해서 왼쪽 회전과 오른쪽의 회전 중 에서 오른쪽 회전만 해야하는 복잡한 미로를 가지고 생각 해 보자. 그 쥐는 일백 번 정도 오른쪽 왼쪽으로 적절하게 돌아야만 한다고 가정한다면, 이제는 단 한 번의 실수라도 그 쥐가 미로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게 된다. 그 쥐가 실수가 없이 회전해서 짧은 절차후에 미로를 빠져 나가는 것을 본 심리학자는 그 쥐가 실제로 미로를 빠져 나가는 법을 배운 것이고 이것 이 행운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지적인 힘을 인지하기 위한 이러한 일반적인 계획은 복잡성-특수화 기준의 약간 변형된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지적인 힘을 인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경쟁하는 여러 가능성들 중에서 하나의 선택을 해야하고,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살펴봐서 선택된 가능성을 특수화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선택되지 않은 경쟁하는 가능성들은 살아있는 가능성들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그 가능성이 충분히 많아서(그래서 복잡하다) 선택된 가능성들을 우연으로 돌릴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적인 원인(즉, 선택하고, 제거하고, 특수화하는)을 구분해 내기 위한 이러한 일반적 인 계획속의 모든 요소들은 복잡성-특수화 기준을 통해서 그 요소에 대응하는 것들을 발견한다. 그에 따라 이 기준은 우리가 지적인 원인을 구분했을 때 우리가 제대로 했다는 것을 정식으로 결정하도록 만든다. 복잡성-특수화 기준은 우리가 설계를 찾고자 할 때 우리가 찾을 필요가 있는 것들을 정확하게 나타낸다.

아마도 생물학에서 설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는 생화학으로부터 나온 것일 것이다. 최근의 Cell (1999년 2월 8일)의 어떤 기사에서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의 회장인 브루스 알버트(Bruce Albert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체적인 세포는 정교하게 만든 조립 라인들의 정교한 연결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공장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각각의 라인은 거대한 단백질 기계로 구성되어 있다.…… 어째서 우리는 세포의 작용을 일으키는 거대한 단백질들의 집합을 기계라고 부르는가? 정확하게 말해서 인간에 의해서 발명된 거시 세계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처럼 그러한 단백질들의 집합은 고도로 조화를 이루면서 움직이는 부분들을 갖고 있다."

비록 그와 같이 말하기는 했지만 알버트는 세포의 놀라운 복잡성이 겉으로만 설계된 것 으로 보일 뿐이라는, 대부분의 생물학자들 편에 선다. 그러나 Lehigh 대학의 생화학자 마이클 베헤(Michael Behe)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1996)에서 베헤는 세포에서의 실제적인 설계에 대한 놀라운 논증을 제시했다. 그의 논증의 핵심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able complexity)이라는 말에 들어 있다. 어떤 시스템이 단 하나의 부품만 제거하더라도 시스템의 기능이 완전하게 파괴될 정도로 몇 개의 상호 연관된 부속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시스템은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것이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예로서 베헤는 일반적인 쥐덫을 제시한다. 쥐덫은 받침대(flatform), 망치 (hammer), 스프링, 방아쇠(catch), 그리고 쥐를 잡고 있는 막대(holding bar)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 다섯 개의 부품 중 어느 한 개를 제거한다면, 쥐덫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누적적인 복잡성(cumulative complexity)과 대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시스템에서 그 시스템의 부품들이 순차적으로 배열될 수 있다면 그래서 부품들을 연속적으로 제거하더라도 기능이 결코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은 누적적으로 복잡한 것이다. 누적적으로 복잡한 시스템의 예는 도시이다. 어떤 도시에서 공동체의 개념은 사라지지 않도록 하면서, 즉 여전히 도시의 "기능"을 갖도록 하면서, 아주 작은 마을이 될 때까지 사람들과 도시의 여러 서비스 기능을 연속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다.

누적적인 복잡성의 이러한 특징으로부터 볼 때, 자연선택과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라는 다윈주의적인 메커니즘으로 누적적인 복잡성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유리한 적응들의 점진적으로 축적될 때, 유기체가 점차적으로 복잡해지는지에 대한 다윈의 설명은 우리가 앞서 들었던 사람들과 서비스 기능이 제거된 도시의 예에 대응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더 간단한 것과 더 복잡한 것들이 다소간의 효율성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작동한다.

그러나 다윈주의적인 메커니즘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는가? 선택이 목표를 가지고서 작동한다면, 분명히 다윈주의적인 메커니즘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베헤의 쥐덫을 보자. 우리는 목표라는 지향점을 갖고 있는 선택 작용을 상술할 수 있다. 그 목표는 하나의 쥐덫을 만들 목표를 가지고서 차례대로 받침대, 망치, 스프링, 방아쇠, 쥐를 잡고 있는 막대를 선택한 후, 끝으로 그 부품들을 함께 모아서 실제로 작동하는 쥐덫을 만든다는 것이다. 미리 특수화된 목표가 주어질 때, 선택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진 시스템을 만드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

그러나 생물학에서 작동하는 선택은 다윈주의적인 자연선택이다. 그리고 정의상 이러한 형태의 선택은 목표도 없고, 계획이나 목적도 없으며, 전적으로 방향성이 없이 작동한다. 다윈의 선택 메커니즘의 가장 큰 매력은, 결국 그 선택이 생물학에서 목적론을 제거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택을 방향성이 없는 작용으로 만듦으로써, 다윈은 해명할 수 있었던 복잡한 생물학적인 시스템의 형태를 극적으로 줄였다. 그 이후에 생물학적인 시스템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 아니라 누적적인 복잡성만 해명할 수 있었다.

베헤가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에서 설명한 것처럼,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시스템은 먼저 있던 시스템을 계속적으로 아주 약간씩만 수정하는 방법으로는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정의상 부품이 부족한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시스템에 대한 어떠한 선행자도 동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단지 이미 동작하고 있는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어떠한 생물학적인 시스템이 점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면, 그 시스템은 집합적인 단위로서 단 한 번에 발생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은 작용할 어떠한 것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그 시스템의 모든 요소들이 동시에 제자리에 있을 때에만 작동하게 된다. 즉, 자연선택이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면 모든 것을 한 번에 만들어 내던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말던지 해야한다. 베헤가 생각한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생화학적인 시스템은 많은 단백질들로 구성된, 그리고 기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되는 단백질 기계이다. 그들 모두는 자연선택이 단 한 세대 동안에 불러 모을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베헤가 생각하는 이러한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생화학적인 시스템은, 박테리아의 편모이다. 그 편모는 채찍 처럼 생긴 회전하는 모터이고, 그것으로 인해 박테리아는 그 주변 환경속에서 헤엄쳐다닐 수 있게 된다. 그 편모는 산(acid)에서 동력을 얻는 회전식 엔진과, 고정자, O-링, 베어링(bushing), 회전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분자 모터의 복잡한 기계는 대략 50개의 단백질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 단백질들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모터의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된다.

이러한 생화학적인 시스템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은 다윈주의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고, 최근에 제안되는 어떠한 자연주의적인 진화론적인 메커니즘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게다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은 생화학적인 수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생화학적인 시스템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 고려될 수 있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수준의 생물학적인 분석은 없다. 그리고 선택과 돌연변이라는 관점에서의 다윈주의적인 분석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에서도 여전히 성공할 것이라고 희망할 수도 없다. 생화학을 뒷받침하는 것은 정규적인 화학과 물리이고, 그들 중 어떤 것도 생물학적인 정보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어떤한 생화학적인 시스템이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경험적인 질문이다. 즉, 하나의 생화학적인 시스템을 이루는 각각의 단백질들을 하나씩 제거시켜서 기능을 잃어버리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면 된다. 만약 기능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실험들은 생물학에서는 일상적인 것이다.

베헤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과 나의 복잡성-특수화 기준사이의 연결은 이제 간단한 일이다. 베헤가 생각하는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시스템은 특히 서로에게 적응된, 그리고 기능을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부품들을 요구한다. 이것은 그들이 복잡성-특수화 기준이 요구하는 관점에서 복잡한 것을 의미한다.

생물학에서의 특수화는 언제나 하나의 유기체의 기능에 대해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언급되어 있다. 하나의 유기체는 많은 작용을 하는 서브시스템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동하는 기계이다. 유기체의 기능성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특수화될 수 있다. 아르노 워터스(Arno Wouters)는 전체 유기체의 생존 능력(viability)의 관점에서 특수화를 했던 것이고, 마이클 베헤(Michael Behe)는 생화학 시스템의 최소 기능(minimal fuction)의 관점에서 특수화를 한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조차도 생물은 특수화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도킨스 자신이 유전자의 재생(reproduction)이라는 관점에서 그와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눈먼 시계공]에서 도킨스는 "복잡한 것들은 어떠한 특질을 가지고 있다. 미리 상술 할 수 있는 특질들, 즉 무작위적인 우연에 의해서만은 결코 얻어질 것 같지 않은 것을 말이다. 살아 있는 생물들의 경우에 그러한 미리 상술할 수 있는 특질들은 유전자를 번식시키는 능력이다."

세상에서 관찰되는 특성들로부터 설계를 엄밀하게 찾기 위한 믿을 수 있는 기준이 존재한다. 이 기준은 형이상학이나 신학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확률과 복잡성이론에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은 논리적인 제시로 얻을 수는 없지만, 통계를 통해서 정당성을 획득 하고, 그래서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기준은 생물학에서도 적절하다. 생물학에서 복잡하고 정보가 많은 구조에 적용되었을 때, 이 기준은 설계를 찾아낸다. 특히, 우리는 과학적인 무게를 가지고서, 복잡성-특수화 기준은 마이클 베헤(Michael Behe)의 환원할 수 없게 복잡한 생화학적인 시스템이 설계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발전들로부터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많은 과학자들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설계를 찾기 위한 믿을 만한 기준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리고 그 기준이 우리에게 생물학적인 시스템이 설계된 것이라고 말해 줄지라도, 어떠한 생물학적 시스템을 설계된 것이라고 결정내리는 것은 우리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하는 것같아 보인다. 설명으로서 설계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과학적인 연구를 질식시킬 것이다. 즉, 과학자들은 그들이 충분한 답변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에 대한 탐구를 그만둘 것이다.

그러나 설계는 과학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설계는 전통적인 진화론적인 접근이 막아놓은 질문들을 하도록 장려할 수 있다. "junk DNA"라는 용어를 생각해 보자. 이 용어에는, 한 생물의 게놈(genome)이 오랜 기간 동안의 방향성이 없는 진화 작용을 거치면서 함께 얽혀졌기 때문에, 그 게놈은 단지 제한적인 부분만이 그 생물에게 필수적으로 되어 버린 누더기라는 관점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진화론적인 관점은 우리가 쓸모없는 DNA가 많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도록 만든다. 반면에 생물이 설계된 것이라면, 우리는 가능하면 많은 DNA가 기능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최근의 발견들은 "폐물 (junk)"로서의 DNA는 단지 그 기능에 대한 현재의 우리의 지식의 부족함을 감추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서,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의 최근 호에서, 존 보드나(John Bodnar)는 "진핵세포의 게놈에서 코딩되지 않은(non-coding) DNA가, 어떻게 유기체의 성장과 발생에 대한 언어로 코드화(encode)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설계는 과학자들이 진화론이 탐구의 의욕을 꺾어 놓은 기능들을 찾도록 장려한다.

또는 나중에 결국 기능이 발혀진 흔적 기관을 생각해 보라. 진화론적인 생물학 교과서 는 종종 인간의 미저골을 꼬리를 가진 척추동물 조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흔적 구조(vestigial structure)"로 설명한다. 그러나 Gray's Anatomy 의 최근 판을 보면, 미저골은 골반의 바닥에 붙어있는 근육들과 연결된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흔적 구조"라는 문구는 종종 그 기능에 대한 현재 우리의 지식의 부족을 감추는 것일 뿐이다. 예전에는 흔적기관으로 생각되었던 인간의 맹장은 지금은 면역 시스템에서, 기능을 가진 하나의 구성 요소로 알려져 있다.

설계를 과학에서 허용하는 것은 과학이라는 분야를 풍요롭게 만들 뿐이다. 시험된 진정한 과학의 도구는 모두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남을 것이다. 설계는 과학자들의 설명을 위한 도구 상자에 새로운 도구를 추가하는 것이다. 게다가 설계는 전적으로 새로운 연구를 위한 질문들의 집합을 만든다. 어떤 것이 설계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설계의 최적도는 얼마이고, 그리고 그것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알기 원할 것이다. 우리가 설계를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라. 스미소니안 박물관에는 설계된 것이 당연하지만 인류학자들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물건들로 채워진 전시실이 있다.

설계 또한 제약조건들을 함축한다. 어떤 설계된 물체는 일정한 제약조건 안에서 기능한다. 그러한 제약조건을 벗어나면 그 물체는 잘 작동하지 못하거나 부서질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들 제약조건들을 어떨 때 작동하고 어떨 때 작동하지 않는지를 살펴 봄으로써 경험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간단한 통찰은 단지 과학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윤리학을 위해서도 중대한 함축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인간이 설계되었다면, 우리는 우리 몸에 미리 마련된 사회심리학적인 제약조건들을 기대할 수 있다. 그들 제약조건들을 벗어나면,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번영시키는 많은 태도와 행동들이 인간의 번영을 침식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많은 경험적인 증거들이 있다. 설계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자연법으로 알려진 도덕에 대한 풍조를 회복 시킬 것을 약속한다.

설계를 과학에 도입함으로써, 우리는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해서 단순히 비판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과학적인 환원주의는 모든 것이 과학적인 카테고리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적인 환원주의는 스스로를 논박하고 있고, 그런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세상의 존재, 세상을 작동시키는 법칙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수학의 이해할 수 없는 효율성은 과학이 불러온 단지 몇 가지 질문일 뿐이지만,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단순히 과학적인 환원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은 과학을 바꾸지 못한다. 변해야 하는 것은 바로 과학 그 자체이다. 설계를 의도적으로 피함으로써, 과학은 적절치 못한 개념적인 카테고리의 집합을 가지고서 너무나 오랫동안 작동되어 왔다. 이것은 어떻게 과학이 단지 세상뿐만 아니라 인간까지도 이해하는 지에 대해서 왜곡함으로써 실재에 대한 통찰력을 제한시켰다.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에서 "과학의 발달 수준은 과학의 기본적인 개념의 위기가 가능한지에 대한 범위를 확장하면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과학이 작동해 온 그러한 기본적인 개념들은 더 이상 적절하지 못 하고, 정보화시대에는 분명히 적합치 못하며, 설계가 경험적으로 검출 가능한 시대에는 더더욱 아니다. 과학은 기본적인 개념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설계를 포함하도록 과학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과학에서 설계를 인정하는 것은 과학을 해방시키고,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는 제약조건들로부터 과학을 자유롭게 만든다.

William A. Dembski 는 수학자이고 철학자이며 Seattle에 있는 Discovery 연구소의 Center for the Renewal of Science and Culture 의 연구원이다. 최근에 그가 쓴 책인 The Design Inference가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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