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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2 05: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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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주의는 신학적으로 중립적인가? - by William Dembski
다윈주의는 신학적으로 중립적인가?
Is Darwinism theologically neutral? (William Dembski /  번역 : C. Hwang)

biologos.org/blog

Is Darwinism theologically neutral? The short answer would seem to be No. Darwin, in a letter to Lyell, remarked, “I would give nothing for the theory of natural selection if it requires miraculous additions at any one stage of descent.” Expanding on this remark in his Blind Watchmaker, Richard Dawkins adds, “In Darwin’s view the whole point of the theory of evolution by natural selection was that it provided a non-miraculous account of the existence of complex adaptations... For Darwin, any evolution that had to be helped over the jumps by God was not evolution at all.” Since many Christians see the Bible as teaching that God specially created living things, thereby ruling out large-scale evolution, Darwinism contradicts the Bible and is not theologically neutral. Case closed.
다윈주의는 신학적으로 중립인가? 간단한 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Lyell에게 보낸 다윈의 편지에서 “진화과정에서 어떠한 기적적인 무언가를 더하려한다면 나는 자연선택 이론을 위해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눈먼 시계공’에서 덧붙였듯이 “다윈의 견해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의 전체적인 요점은 복잡한 적응 과정에 그 어떤 기적적인 설명도 없다는 것이다. 다윈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의해 뭔가가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진화이론이라면 진화 자체가 아닌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생명체를 특별히 창조하셨다는 것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이해하고 있고 따라서 대진화 (large-scale evolution)을 배제하고 있으므로 다윈주의는 성경과 대립되며 신학적으로 중립적이 아니다. 이상 정리 끝~

But does this really answer the question? True, many Christians see Darwinism as hostile to biblical teaching and therefore deny its theological neutrality. But should they view Darwinism and Scripture as theologically opposed? If all Christians rejected Darwinism, its theological neutrality would not be a matter of discussion or controversy among them. But Christians do argue over Darwinian evolution, and the reason is that while all Christians embrace Christ, not all reject Darwin. So the question becomes whether Christians can embrace both Darwin and Christ with integrity, giving each his due without slighting the other. This is the real question underlying Darwinism’s presumed theological neutrality.
하지만 이것이 정말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가? 사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다윈주의가 성경의 가르침에 적대적이며 신학적으로 중립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다윈주의와 성경의 견해를 신학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만 보아야하는가? 만약 모든 크리스천이 다윈주의를 거절한다면 신학적 중립성을 운운하는 것은 토의나 논란거리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이 다윈주의 진화론을 두고 논쟁을 하고 있고, 그 이유는 모든 크리스천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만 다윈을 거부하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점은 크리스천이 다윈과 그리스도를 갈등없이 지적 성실성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이다. 이것이 다윈주의의 신학적 중립성을 둘러싼 핵심 질문이다.

Those who embrace Darwin and his ideas regard him and Christ as compatible. Those who don’t, regard them as incompatible. Now compatibility and incompatibility are funny notions. They’re not like strict logical consistency or inconsistency, which admit of proof. At the hands of human rationalization, compatibility and incompatibility have the disconcerting tendency to become infinitely malleable. We’ve already seen how some Christians, by reading Genesis as teaching the special creation of living forms, conclude that Christ and Darwin are incompatible. On the other hand, Michael Ruse (in Can a Darwinian Be a Christian?) argues that Christ and Darwin are eminently compatible. Sure, as Ruse puts it, “Darwinism is a theory committed to the ubiquity of law.” But, in Ruse’s mind, that’s not a problem for Christian faith. He continues, “Even the supreme miracle of the resurrection requires no law-breaking return from the dead. One can think of Jesus in a trance, or more likely that he really was physically dead but that on and from the third day a group of people, hitherto downcast, were filled with great joy and hope.”
다윈과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다윈과 그리스도가 서로 양립가능하다고 간주한다. 다윈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양립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양립가능성과 양립불가능성은 우스운 개념이다. 여기에는 어떤 논리적 일관성이라든지 논리적 비일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창세기를 특별 창조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일부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와 다윈이 양립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 것에 대해 다루었다. 반대로 마이클 루스는 주장하기를 그리스도와 다윈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루스가 말하는 것처럼 “다윈주의는 법칙의 편재성에 헌신된 이론이다.” 하지만 루스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계속 이야기하기를 “부활의 기적 조차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법칙을 깨는 일은 필요없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는데 예수는 물리적으로 진짜 죽었는데 3일 후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굉장한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해졌던 일일 수도 있다.”

Ruse claims Darwinism compatible with Christianity, but by Christianity he means a liberalism gutted of miracles. On the other hand, special creationists interpret Genesis as teaching a form of creation that disallows any large-scale evolution. Although I don’t think the evidence supports large-scale evolution, both approaches are too easy. Ruse essentially has to redefine Christianity. And special creationists face challenges to their interpretation of Genesis. For instance, Genesis claims that humans are made of dust, at one point even referring to humans as dust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 Genesis 3:19). But if humans are dust, then so are other animals, and thus when Genesis says that humans were made from dust, what is to prevent God from transforming preexisting ape-like primates (who are dust) into humans (who are also dust) by some evolutionary process? Let me stress, I personally don’t buy this argument, but it’s one readily advanced by evolutionists against special creationists.
루스는 다윈주의가 기독교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기적을 희생시킨 자유주의 기독교인 셈이다. 반면에 특별 창조론자들은 창세기를 어떤 형태의 대진화(large-scale evolution)도 허용하지 않는 형태의 가르침으로 해석한다. 비록 나는 대진화를 지지하진 않지만 양측의 입장 모두가 너무 쉬운 방법이다. 루즈는 필수적으로 기독교를 재정의해야만 한다. 특별 창조론자들은 창세기의 해석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면 창세기는 주장하기를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고 인류를 가르켜 흙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창3:19). 인간이 흙이라면 다른 동물들도 그럴 것이고 창세기가 인간이 흙으로부터 만들어졌다면 하나님께서 미리 존재하던 영장류 같은 동물 (얘네들도 흙이다)로부터 만들어내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이유는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이미 특별 창조론을 반대하는 진화론자들로부터 주장된 내용이다.

In assessing whether Darwinism is theologically neutral, let’s therefore focus on Christ and Darwin not along narrow sectarian lines but in the broadest terms. What can we all agree that Christianity demands, and what can we all agree that Darwinism demands? Without being exhaustive, let me suggest that Christianity and Darwinism each make four claims that are crucial for assessing Darwinism’s theological neutrality (or lack thereof):
다윈주의가 신학적으로 중립인가를 평가함에 있어서 좁은 의미로 그리스도와 다윈에 초점을 맞추되, 넓은 개념을 사용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독교 신앙이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또한 다윈주의가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전부를 다룰 수 없지만 다윈주의의 신학적 중립성을 평가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독교와 다윈주의에 관한 4가지 주장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Non-Negotiables of Christianity:
(C1)        Divine Creation: God by wisdom created the world out of nothing.
(C2)        Reflected Glory: The world reflects God’s glory, a fact that ought to be evident to humanity.
(C3)        Human Exceptionalism: Humans alone among the creatures on earth are made in the image of God.
(C4)        Christ’s Resurrection: God, in contravention of nature’s ordinary powers, raised Jesus bodily from the dead.
기독교의 필수요소:
(C1) 신적 창조 : 지혜로 하나님이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다
(C2) 영광 :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며 이는 인류에게 분명하다는 사실
(C3) 예외적인 인간 : 지구상 창조물 중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C4) 그리스도의 부활 : 자연의 일반적인 힘에 거스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Non-Negotiables of Darwinism:
(D1)        Common Descent: All organisms are related by descent with modification from a common ancestor.
(D2)        Natural Selection: Natural selection operating on random variations is the principal mechanism responsible for biological adaptations.
(D3)        Human Continuity: Humans are continuous with other animals, exhibiting no fundamental difference in kind but only differences in degree.
(D4)        Methodological Naturalism: The physical world, for purposes of scientific inquiry, may be assumed to operate by unbroken natural law.
다윈주의의 필수 요소:
(D1) 공통조상 : 모든 개체는 공통조상으로부터 변이를 거친 후손으로 서로 연관되어있다.
(D2) 자연선택 : 무작위적 변이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이 생물학적 적응에 필요한 필수 메커니즘이다.
(D3) 인간의 의식 : 인간은 다른 동물과의 진화론적 연장선에 있으며 근본적인 차이는 없으나 어느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D4) 방법론적 자연주의 : 과학적 연구를 위해 물리적 세계는 불변의 자연법칙에 의해 작동된다고 가정될 수있다.

In formulating these claims, I’ve tried to be careful not to misrepresent either Christianity or Darwinism. What I’m describing as non-negotiables of Christianity is standard orthodox theology, so I won’t expand on these claims here. Yes, some theological streams find fault with these claims (process theology, for instance, rejects creatio ex nihilo and miraculous interventions). But for the purposes of this discussion, these claims may appropriately be ascribed to basic Christian teaching.
이를 주장함에 있어서 나는 기독교와 다윈주의 둘다를 왜곡하지 않도록 신중하려 애썼다. 기독교와 관련된 4가지 요소는 일반적인 정통 신학이다. 나는 이를 더 자세히 언급하고자 하진 않겠다. 물론 일부 신학적 입장은 이런 주장과 다를 것이다 (예를 들면, 과정신학은 무로에서부터 창조와 기적적 간섭을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논의를 목적으로한다면, 기본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With regard to the non-negotiables of Darwinism, no one will dispute claims (D1) and (D2), Common Descent and Natural Selection. Christians who embrace Darwin, however, may feel uncomfortable with (D3), which entails that, among other things, our moral and linguistic capacities are simply enhanced versions of those same capacities in other primates. Francis Collins, for instance, won’t go along with Darwin on claim (D3). And yet, that is precisely Darwin’s main thesis in his sequel to the Origin, The Descent of Man. Finally, with regard to (D4), Darwin himself was more than a methodological naturalist. Once he became convinced of evolution by natural selection, he gave no credence to God ever having acted in contravention of natural law. Methodological naturalism is a weaker claim, allowing that God may have acted miraculously (in salvation history, say), only not in areas under scientific investigation (such as biological evolution).
다윈주의의 4가지 요소와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D1(공통조상)과 D2(자연선택)에 대해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다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D3를 불편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이는 인류의 도덕적 언어적 능력이 단순히 다른 영장류에도 있는 능력이지만 단지 더 보강된 형태라는 주장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프란시스 콜린스는 D3의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윈의 종의 기원과 The Descent of Man에서의 주요 주제였다. 마지막으로 D4와 관련해서, 다윈 스스로 방법론적 자연주의자 그 이상이었다. 그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 확신을 한 이래로 그는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그 어떠한 신적 활동도 인정하지 않았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이보다는 약한 주장이며,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식으로 활동하실 수도 있다고 허용하지만 (구원 역사에 있어서), 과학적 활동에 포함되는 영역에서만큼은 (생물학적 진화와 같은) 허용하지 않는다.

We are now in a position to clarify our original question: Darwinism, let us agree, is theologically neutral if claims (D1)-(D4) in no way undercut claims (C1)-(C4), and Darwinism fails to be theologically neutral to the degree that (D1)-(D4) do undercut (C1)-(C4). Given this restatement of our original question, what do we find? Looking at these two lists of non-negotiables, we find certain tensions that are not readily resolved and that suggest (D1)-(D4) do in fact undercut (C1)-(C4). Note that I call them “tensions” rather than outright contradictions. Strict logical contradictions are difficult to find in the science-theology dialogue because the language of science and the language of theology tend to be so different. Even the clash of (C3), Human Exceptionalism, and (D3), Human Continuity, might be finessed by arguing that a sufficiently large difference in degree can appear as a difference in kind. So, [in the second half of this essay] I’ll focus on the tensions between these two lists of non-negotiables and how, in particular, (D1)-(D4) undercut (C1)-(C4).
이제 본 질문을 분명히 해야할 시점이다. 다윈주의의 4요소가 기독교의 4요소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다윈주의는 신학적으로 중립이다. 하지만 다윈주의 4요소가 기독교 4요소를 침해한다면 다윈주의가 신학적으로 중립이라는 주장은 실패하고 만다. 원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가? 각각의 4가지 요소를 살펴보면 우리는 쉽게 풀리지 않는 긴장(tensions)을 보게되며 이 긴장은 실제로는 다윈주의 4요소가 기독교 4요소를 침해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분명한 모순(contradiction)이라는 단어보다는 긴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을 주목하길 바란다. 엄밀한 논리적 모순은 과학-신학 대화에서 발견하기가 어려운데 그 이유는 과학의 언어와 신학의 언어가 매우 다른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예외적 인류 (C3)와 인류와 동물이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D3)이 충돌한다는 것 조차도 충분히 큰 차이라고 주장한다면 해소될지도 모른다. 다음 글에서 이 둘 사이의 긴장에 더 초점을 맞출 것이며 어떻게 D1-D4가 C1-C4를 침해하는지를 보고자 한다.

Let’s start with (D1), Common Descent, the claim that all organisms trace their lineage to a common ancestor. This claim seems unproblematic for (C1)-(C4). Indeed, (C1)-(C4) allow that God might have used an evolutionary process of some form or other to bring about the organisms on planet earth. To be sure, one might want to bring in further theological reasons for rejecting Common Descent (such as that large-scale evolution implied by (D1) is wasteful and unworthy of a good God), but (C1)-(C4) don’t address how God implemented his plan to create living forms. By themselves, (C1)-(C4) allow that God might have specially created living forms or brought them about via an evolutionary process. As an aside, it may be noted that a minority of intelligent design proponents, notably Michael Behe, accepts Common Descent but rejects much of the rest of Darwinism (in particular, he rejects (D2)-(D4)).
공통조상 (D1)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공통조상은 모든 개체들이 계보를 따라 하나의 공통조상으로 추적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주장은 C1-C4와 문제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C1-C4는 하나님이 진화 과정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며 다른 과정을 사용해서 생명체를 지구에 존재케할 수도 있다는 주장 역시 허용한다. 물론 신학적 이유를 근거로 공통조상을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공통조상이 의미하는 바 대진화는 소모적wasteful이며 선하신 하나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C1-C4 는 어떻게 하나님이 생명체를 창조하고자하는 계획을 심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C1-C4는 그 자체로 하나님이 특별한 방식으로 생명체를 창조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허용하며 동시에 진화적 과정을 통해 창조했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허용한다. 이와는 별개로, 지적설계론자 중 일부, 마이클 비히와 같은 경우는 공통조상을 받아들이지만 나머지 다윈주의에 대한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D2-D4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In contrast to Common Descent, Natural Selection, (D2), does raise some tensions with (C1)-(C4). Natural selection, as Darwin defined it, is non-teleological. Nature, unlike human artificial selection, is not trying to build certain structures or functions according to a design plan. Natural selection is an instant-gratification mechanism that capitalizes on any advantage accruing to the organism in the present generation, not in future generations. Moreover, any such advantage results from variations that are random. Darwin did not use the word “random,” but he did reject that God or any teleological force was somehow guiding variations with an eye to future function (cf. Darwin’s correspondence with Asa Gray, who thought God might guide the variations, a view Darwin rejected). Variations for Darwin were not correlated with any future benefit to the organism.
공통조상 개념과는 달리, 자연선택(D2)은 C1-C4와 긴장을 유발한다. 다윈이 정의한 바대로의 자연선택은 비 목적론적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선택과 달리 자연은 어떤 구조물을 지으려하지도 않고 어떤 계획에 따라 기능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즉흥적 만족 (instant-gratification)의 메커니즘으로서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 세대의 개체들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다윈은 “무작위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신 혹은 그 어떤 목적론적 힘이 향후 눈의 기능을 위한 변이를 인도한다는 따위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윈과 Asa Gray와의 대화를 참조, Gray는 하나님이 변이를 인도할 것이라 생각했고, 다윈은 이를 반대했다). 다윈에게 있어서 변이란 미래의 개체의 이익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이었다.

Natural Selection, or (D2), is therefore in tension with both (C1) and (C2). (D2) implies that biological evolution does not give, and indeed cannot give, any scientific evidence of teleology in nature. We see this denial of teleology in Darwin’s own writings and we find it among his contemporary disciples, even among theistic evolutionists. For instance, Brown University biologist Kenneth Miller, who calls himself an orthodox Catholic and an orthodox Darwinian, writes in Finding Darwin’s God that design (or teleology) in biology is “scientifically undetectable.” Now to say that something is scientifically undetectable isn’t to say that it doesn’t exist. Hence there’s no strict contradiction between (D2) and (C1)-(C2). God might, as a master of stealth, wipe away all fingerprints of his activity. He might be guiding evolution in ways that to us look like chance (e.g., random variation) and necessity (e.g., natural selection).
자연선택 (D2)는 따라서 C1과 C2와 긴장 관계에 있다. D2는 생물학적 진화는 자연에서 목적론의 그 어떠한 과학적 증거를 주지도 않으며 줄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목적론의 부정을 다윈의 글들에서 보게되며 오늘날 그를 따르는 이들과 심지어는 유신진화론자들의 글들에서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브라운 대학의 켄 밀러의 경우, 그는 스스로를 정통 천주교인이며 정통 다윈주의자라 부른다. 또한 “Finding Darwin’s God”에서 생물학에서의 설계 (혹은 목적론)는 “과학적으로 탐지 불가능하다”고 한 바 있다. 과학적으로 탐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따라서 D2와 C1-C2사이에는 모순된 지점은 없다. 하나님은 아마도 몰래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달인 (a master of stealth)인 것처럼 그의 활동에 대한 모든 흔적들을 없애버렸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진화를 인도하면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우연 (무작위적 변이)과 필연 (자연선택) 처럼 보이도록 하셨는지도 모른다.

But if so, how could we know? The most controversial claim of intelligent design is that compelling scientific evidence exists for design in biology, from which it would follow that Darwinian evolution is on its own terms a failed explanation of the complexity and diversity of life. But leaving aside intelligent design, it seems odd, given (C1), that God would create by Darwinian processes, which suggest that unguided forces can do all the work necessary for biological evolution. As Phillip Johnson noted in Darwin on Trial, Darwinism doesn’t so much say that God doesn’t exist as that God need not exist. Sure, God’s ways are higher than ours and he might have good reasons for occluding his purposeful activity in nature. But if God does occlude his purposeful activity in nature, that raises a tension with (C2), which states that the world clearly reflects God’s glory (Psalm 19) and that this fact should be evident to all humanity (Romans 1).
하지만 하나님이 위와 같이 하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지적설계론에서 가장 논란적인 주장은 생물학에서 설계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는 다윈주의 진화가 생명체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설명하는데 실패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지적설계론은 차치하고서라도, C1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하나님이 다윈주의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은 좀 이상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는 비인도된 힘(unguided forces)이 생물학적 진화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필립 존슨이 ‘심판대 위의 다윈’에서 언급했듯이, 다윈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방식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고 자연계에 그의 계획적 활동을 숨겨야만했던 더 나은 이유들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연계에 그의 계획적 활동들을 숨기셔야했다면 이는 C2와의 긴장을 유발한다. C2는 말하길 이 세계가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다고 말하며 (시편 19) 이러한 사실이 모든 인류에게 분명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로마서1).

The world, as a matter of general revelation, testifies to the divine glory, and failure by humans to acknowledge this fact results not from a dearth of evidence but from human wickedness, which willfully suppresses the truth of God’s revelation in creation (Romans 1:20). Now the theistic evolutionist might reply that creation does indeed testify to the divine glory, only this testimony looks not to scientific evidence. But in that case, how is the creation providing a general revelation of God and what exactly is it saying? Given that science is widely regarded as our most reliable universal form of knowledge, the failure of science to provide evidence of God, and in particular Darwin’s exclusion of design from biological origins, undercuts (C2).
일반계시로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인간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증거의 부족이 아니라 인류의 죄성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 죄성이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됨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1:20). 그렇다면 유신진화론자들은 창조가 진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답할지도 모른다. 단지 이것은 과학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닐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창조가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제공하며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과학이 가장 믿을만한 보편적 형태의 지식이라 생각한다면 과학이 신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C2를 침해함을 의미하며 특히 생물학적 기원에서 설계를 배제하는 다윈의 견해가 C2를 침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The most difficult tension to resolve in our present discussion is the one between Human Exceptionalism, (C3), and Human Continuity, (D3). In The Descent of Man, Darwin drew out the implications for the human species that followed from his general account of evolution as presented in his Origin of Species. As he wrote in the Descent,
“The difference in mind between man and the higher animals, great as it is, certainly is one of degree and not of kind. We have seen that the senses and intuitions, the various emotions and faculties, such as love, memory, attention, curiosity, imitation, reason, etc., of which man boasts, may be found in an incipient, or even sometimes in a well-developed condition, in the lower animals.”
현재의 논의에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긴장점은 인간의 예외성 (C3)와 인간의 연속성 (D3)이다. The Descent of Man에서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진화의 일반적 설명이 인류에게 있어서 함의하는 바를 기술했다. 그는 기록하기를,
“인간과 고등 동물에 있어서 정신의 차이는 매우 대단하지만 이것은 정도의 차이이지 다른 종류의 무엇은 아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감각, 직관 다양한 감정들, 예를 들면 사랑,기억,관심,호기심,모방,이성 등은 다른 동물에서도 초기의 형태로나 가끔은 잘 개발된 형태의 것으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Years earlier, in his notebooks, Darwin explicitly distanced human exceptionalism from God’s care and concern: “Man in his arrogance thinks himself a great work, worthy the interposition of a deity.” The implication is clear: if this is what man thinks of himself in his arrogance, a more sober assessment regards man as a mediocre work, not worthy of special divine attention, and with no prerogatives above the rest of the animal world.
이러한 기록 몇년전에 다윈은 이미 하나님의 보호와 관심으로부터 인류의 예외성에 대해 분명히 거리를 둔 바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거만하게 대단한 작품인양 생각하고 가치있는 신적 작품으로 생각한다”. 함의하는 바는 매우 분명하다. 만약 인간이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거만한 것이라면, 보다 제대로된 평가를 하게 된다면 인간은 단지 형편없는 작품이며 특별한 신적 관심의 가치도 없으며 다른 동물들보다 더 나은 무언가도 없는 셈이다.

Some theistic evolutionists are ready to follow Darwin here, such as Karl Giberson (see his Saving Darwin), and abandon Human Exceptionalism as conceived within orthodox theology. Others, desiring to stay within orthodoxy, punt. Take Francis Collins, who denies that our moral capacities represent the natural development of the same essential capacities in other primates. Yet to say that our moral or cognitive or linguistic capacities are unprecedented in the rest of the animal world flies in the face of Darwinian evolution, certainly as Darwin conceived it. Darwinism’s logic is inexorable. Evolution works by borrowing, taking existing capacities and reworking them. But if our moral or cognitive or linguistic capacities are unprecedented, then they are, for all intents and purposes, miracles.
칼 가이버슨 (Saving Darwin을 읽어보라)과 같은 일부 유신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점에 있어서 기꺼이 다윈을 따르며 정통 신학내에서 생각되는 인류의 예외성을 포기한다. 정통 교리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은 도박을 한다 (punt *엉뚱한데 베팅을 하는 행위). 프란시스 콜린스를 생각해보라. 그는 인류의 도덕적 능력이 다른 영장류와 같은 능력이 자연적으로 개발된 것이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하지만 우리의 도덕적, 인지적, 언어적 능력이 다른 동물들에게 있어서 전례없는 무언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윈주의 진화론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며, 이는 다윈이 분명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윈의 논리는 멈출수가 없다. 진화는 존재하던 능력들을 빌려오고, 가져오고 다시 작동하게 함으로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의 도덕적, 인지적, 언어적 능력은 전례 없던 것이라하면 그 순간 이러한 능력들은 모두 어떤 의도, 계획, 기적들이 되고 만다.

And this brings us to the last non-negotiable on our list, Methodological Naturalism, or (D4). According to this claim, science treats the world as autonomous, regulated by natural laws that allow no exceptions. Accordingly, Darwinism, in embracing (D4), rules out miracles and, more generally, any teleology external to the material world. Now granted, Darwinism so characterized limits this prohibition against miracles/teleology to the study of nature. But the problem for Christians is that salvation history occurs against the backdrop of nature. In particular, Christ’s Resurrection, or (C4), occurs against this backdrop. To tie God’s hands by saying that God can act only one way in natural history (i.e., in accord with natural law) but has a freer rein in salvation history (i.e., can there perform miracles) seems arbitrary.
이러한 논의는 마지막 요소, 방법론적 자연주의 (D4)를 고려하게 만든다. 이 주장대로라면, 과학은 이 세상을 자율적이며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법칙에 의해 조절되는 세상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D4를 수용하는 다윈주의는 기적을 배제하며 더 일반적으로 물질 세계로의 그 어떠한 외부의 목적론을 배제한다. 당연히 이렇게 특징지어지는 다윈주의는 자연을 탐구함에 있어서 기적/목적론을 반대하도록 제한한다. 하지만 크리스천에게 문제되는 것은 구원역사가 자연계에 반대해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 (C4)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활동을 단지 자연 역사 (자연법칙에 따라)에만 한정하고, 구원 역사에서는 자유롭도록 놔두는 것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는)은 임의적으로 보인다.

Christians who embrace Darwin therefore find themselves pulled in two directions. On the one hand, if committed to miracles such as the Resurrection, they have to confront why God doesn’t likewise do miracles in natural history. On the other hand, if committed to Methodological Naturalism, or (D4), they have to confront why this naturalism shouldn’t extend to salvation history as well (compare Michael Ruse above, who explains away the Resurrection as a trance or wish fulfillment of Jesus’ disciples). Trying to maintain (C4) and (D4) together constitutes an unstable equilibrium. People tend to jettison one or the other. For instance, Howard Van Till gave up on (C4) whereas Michael Behe gave up on (D4).
따라서 다윈을 받아들이는 크리스천은 그들 스스로를 두가지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활과 같은 기적을 받아들일 경우 왜 하나님이 자연 역사에서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해야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방법론적 자연주의 (D4)를 받아들일 경우 그들은 이 자연주의가 왜 구원 역사에 적용되어서는 안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해야한다. (앞서 언급한 마이클 루스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제자들의 기쁨에 찬 것을 설명한 것을 비교해보라) C4와 D4를 함께 수용하려는 것은 균형을 잡기에는 불안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하워드 반 틸은 C4를 포기했고, 마이클 비히는 D4를 포기했다.

To sum up, Darwinism and Christianity, even when generously construed, exhibit significant tensions. Are these tensions so serious that Darwinism may rightly be regarded as not theologically neutral? I would say the tensions are indeed that serious. Such a conclusion, however, ultimately becomes a matter of personal judgment. Just as marriages can exist with serious tensions, some Christians are willing to tolerate the wedding of Darwinism and Christianity despite the tensions. That said, it’s worth asking why anyone would want this wedding in the first place. If Darwinism were incredibly well established – if the evidence for it were indeed as “overwhelming” as its advocates endlessly proclaim – then Christians might feel some compulsion for maintaining their union. But the evidence for common descent is mixed and the evidence for the creative power of natural selection to build complex biological forms is nil (see, for instance, my book The Design of Life, co-authored with Jonathan Wells). So the theological neutrality of Darwinism aside, there’s a prior question that needs to be asked, namely, is the evidence for Darwinism sufficient that one should even be concerned whether it is theologically neutral?
요약하자면, 다윈주의와 기독교는 매우 대략 평가해도 주요한 긴장지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긴장점은 다윈주의가 신학적으로 중립이라고 간주할수 없을만큼 심각한 것인가? 나는 이 긴장이 매우 심각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은 개인적인 평가의 문제가 되곤 한다. 부부간 심각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일부 크리스천들은 심각한 긴장(tension)에도 불구하고 다윈주의와 기독교의 결혼을 기꺼이 참아낼 것이다. 왜 누구나 이러한 결혼을 처음부터 원하려 했을까라는 질문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다윈주의가 정말 잘 정립된 이론이라면 – 다윈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이 주장하듯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압도적이라면 – 크리스찬들은 이들의 결합을 유지해야할 어떤 강한 충동을 느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윈주의 진화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아니라, 역자 첨부) 공통 조상에 대한 근거들이 혼합되어있고, 복잡한 생물학적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자연선택의 창조적 능력에 대한 근거들은 거의 없다 (조나단 웰즈와 공저한 The Design of Life를 보라). 다윈주의의 신학적 중립성은 둘째 치더라도 그 전에 물어봐야할 중요한 질문이 있다. 즉, 다윈주의가 신학적으로 중립인지 아닌지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다윈주의에 대한 근거가 충분한가?



   유신진화론자들 어떻게 젊은 지구론자들과 유사한가? by Barry Arr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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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2

    [서평] 신의 언어 (Language of God): 유신 진화론에 대한 비판 (이승엽) - Worldview 201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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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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