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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5 16: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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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새로운 무신론자들’을 대하는 2가지 방법 (크리스천투데이)
‘새로운 무신론자들’을 대하는 2가지 방법
<유신론과 무신론이 만나다>, <기독교를 믿을 수 없는 17가지 이유> 서평 [2011-10-31 06:36]

http://www.christiantoday.co.kr/books/view_article.htm?id=250996
  
유신론과 무신론이 만나다
필립 존슨·존 마크 레이놀즈 | 복있는사람 | 156쪽 | 9,000원

기독교를 믿을 수 없는 17가지 이유
데이비드 G. 마이어스 | IVP | 176쪽 | 9,000원

2000년대 이후 ‘새로운 무신론자들(The New Atheists)’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이들은 종교인들 못지 않게, 아니 요즘 상황에서 보면 종교인들보다 더 ‘전도열’에 불타고 있다. 이들에게 ‘무신론’은 과학이 아닌 일종의 ‘신앙’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모든 종교는 거짓이고 유독하다”는 이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교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리고 이들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필립 존슨의 <유신론과 무신론이 만나다(Against All Gods·복있는사람)>와 데이비드 G. 마이어스의 <기독교를 믿을 수 없는 17가지 이유(A Friendly Letter to Skeptics and Atheists)>는 이를 고민하고 있다.

“당신의 회의주의에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필립 존슨은 미국인들 중 전통적 의미의 그리스도인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이 ‘새로운 무신론자들’이 쓴 책들이 천문학적으로 팔려 나가는 데 주목한다. 그는 “성경을 믿는 신자들조차 무신론을 옹호하는 입장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덮어놓고 무시하지 말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신론의 급격한 부상은 대학 강의실 안팎에서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므로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다.

이들은 지난 몇십년간 하나님을 ‘생각할 만한 가치도 없는 주제’로 치부해 왔던 이전의 무신론과 달리, 하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도킨스 류(類)의 특성 때문에 오히려 청중들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 발견이 얼마나 중요한지 줄곧 상기한다. 존슨은 “도킨스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경하게 주장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사람들에게 그 반대 입장을 주장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풀이했다. “원래 완전히 무시당하기보다, 위협거리로 간주되는 편이 더 나은 법”이라는 것이다.

한술 더 떠, 마이어스는 “종교에 회의주의적인 친구들이여, 당신의 회의주의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고 답한다. 예수님조차 당대의 종교를 급진적으로 비판했음을 염두에 두고, 그는 종종 우둔함이나 악과 결합했던 종교를 향한 그들의 비판을 상당수 인정한다. <십자군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가 지적했듯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라 하지 말고, “다 내 탓입니다”, “우리를 손가락질하십시오”라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어스는 교회가 과학의 발전에 역행한 점도 “지당한 말씀”이라 전제한다. 그는 교회가 갈릴레오의 지동설과 다윈의 진화론을 비난했고, 질병과 지진, 폭풍우 같은 다양한 자연현상과 인간의 행동까지도 초자연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과거는 인정하지만, 목적 없는 자연주의와 반과학적 근본주의 사이에 과학 탄생의 배경이 됐던 ‘신앙에 뿌리를 둔 합리성’이라는 대안이 있었음을 끄집어낸다. 실제로 베이컨,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파스칼, 뉴턴, 멘델 같은 과학자들은 하나님과 자연을 바라보는 이러한 기독교적 시각에서 출발했다.

대신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창조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셨다면, 우리도 이를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믿음으로 관찰하고 실험하자”고 속삭인다. 앞에서 언급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에도 불구하고 과학자가 된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자신의 신앙 때문에 과학자가 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훌륭한 과학을 하는 것은 권리가 아닌, 일종의 신앙적 책무였다.

누가 진정한 ‘회의론자’인가?

‘새로운 무신론자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생각도 두 저자의 공통된 주장이다. 존슨의 설명에 따르면 도킨스는 ‘다윈주의(Darwinism)’가 조직화된 복잡성이 어떻게 의도적 지도(指導) 없이 단순한 출발점에서 생겨날 수 있는지 설명하는 과학의 위력을 고양시킨다. 그들에게 진화가, 진화되지 않은 지성의 지도를 받는다고 상상하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다. 그러나 존슨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자가당착적’이라 비판한다. 다윈주의 방법론이 절대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다윈주의 그 자체라는 것이다.

또 다윈주의와 무신론적 세계관이 팽배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한 세기 전에 못지 않게 강력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기술적으로 비교적 뒤떨어진 지역들 뿐 아니라 가장 현대화된 명문대학들도 그러하다고 반박한다. 오늘날 교육의 모든 단계에서 자연주의 세계관을 정통 교리로 가르치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진정한 회의론자라는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일부 과학자들은 대담하게 하나님 믿기를 멈추도록 촉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존경하거나 관용하지도 말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주류인 최고의 명문대학들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기독교 신앙에 헌신해 있는 대학생 세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실제적인 증거로 들고 있다.

필립 존슨은 “논증이 지적인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지만, 인간은 논증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인생관에 따라 사는 존재”라며 “사실 우리가 완전히 합리적인지, 아니면 한때 마르크스나 프로이트를 따랐던 것처럼 그저 유행을 따라가는지 분별하기란 무척 어렵다”고 정리했다.

이성적이면서, 인간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종교도 있다

마이어스는 과학이 미심쩍어하는 세 가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마이어스의 주장은 한 마디로,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이성적이면서 인간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종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고 정리된다. 그리고 ‘새로운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증거들’은 무시한 채, 일부에서 발견되는 나쁜 점만 들춰낼 뿐이다.

‘불멸하는 영혼의 존재’에 관해서는 “과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본질은 육체와 분리될 수 없고, 육체와 별개로 움직이는 인간의 정신이나 본질의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면서도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방식은 플라톤적이지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성경은 ‘육체의 부활’을 통한 회복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박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성경적인 인간 이해와 과학적인 인간 이해는 일치한다고 마이어스는 전했다.

‘기도의 효력’에 대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우리가 기도로 불러낼 수 있는 요정이 아니라, 모든 것을 창조하고 유지하시는 분으로 이해했다.” 기도의 의미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이며, 하나님은 ‘램프의 지니’가 아니라는 것이다. ‘창조론’에 대해서는 ‘지적설계론’으로 대답한다(존슨과 마이어스 모두 지적설계론자에 가깝다).

존슨은 “다윈주의가 지금처럼 군림하게 된 것은 실험이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자신만만한 주장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베드로의 말처럼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할 필요가 있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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